이 체제 하에서 미국은 달러를 공짜로 제공하지 않는다. 반드시 대가를 받고 달러를 제공한다. 제품과 서비스를 수입하면서 달러를 지급하고 반대로 수출하면서 달러를 수취한다. 그리고 이렇게 미국으로 유입된 달러보다 유출된 달러가 많아서 미국이 경상수지적자를 기록하면 세계 경제로의 달러 공급이 늘어난다. 미국의 적자가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 미국의 적자는 궁극적으로 전 세계에 달러를 공급하는 메커니즘이다.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은 이를 ‘가혹한 수준의 특권’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다른 나라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내면 매우 힘들어지는데, 미국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신흥패권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달러 중심 체제에 대해 반기를 들고 위안화를 국제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달러 중심 체제에 대한 흔들기가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제시된 비트코인이라는 암호화폐가 등장하면서 화폐 제도 전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분산원장을 통해 네티즌들이 거래기록을 공유하면서 사이버 상에서 비트코인이라는 화폐를 채굴 내지 발행함으로써 중앙은행이나 은행제도가 사실상 필요 없는 체제를 구축하자는 발칙한(?) 어젠다가 제시되었고 많은 호응이 이어졌다. 아직 현실화되기는 힘들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는 꾸준하게 추진이 되어 왔다. 문제는 암호화폐의 가치가 너무 변동성이 심해서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소위 ‘스테이블 코인’이다. 코인의 가치를 기초자산에 연동시킴으로써 암호화폐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테더’라는 암호화폐가 이 사례이다.
상황이 너무 엄청나다 보니 미국은 고민 중이다. 달러를 기반으로 한 리브라 같은 디지털화폐를 허용해야 중국을 따돌릴 수 있다는 페이스북의 주장을 반박하기 힘들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이를 허용하지 않으면 중국에 뒤처질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중앙은행과의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중국의 움직임을 잠재우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은 이미 1000위안 규모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민·관 합동으로 만들어 유통시키겠다고 나섰다. 비트코인과 함께 시작된 이 흐름이 이제는 국가 간의 디지털 화폐전쟁으로 이어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어’하는 사이에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디지털 화폐가 일반화되면 달러 중심체제의 운영방식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나아가 결제를 포함한 은행업 전반과 금융업 자체의 미래도 매우 불확실해진다. 우리도 이 흐름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비록 기축통화 발행국은 아니지만 그럴수록 이러한 움직임을 면밀하게 주시하면서 현명한 대응전략을 구상하고 실행해야 한다. 흐름에서 뒤처지면 우리의 미래는 밝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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