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AI대학원을 이끌고 있는 정송 원장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유를 묻자 기다렸다는 듯 자료를 꺼냈다. AI 관련 세계 최대 학회인 ‘국제머신러닝학회(ICML)’와 ‘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NIPS)’에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제출된 논문 수를 분석한 것이다.
정 원장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ICML에서 카이스트의 랭킹은 2010년 30위권에서 올해 10위(구글 등 기업체 포함 시 15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아시아 대학 중에서는 1위다. 10위권에는 버클리대, 카네기멜런대, 코넬대, 스탠퍼드대, MIT 등 유수의 대학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카이스트가 이 정도의 자원으로 10위라는 성적을 보이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평균연령 만 41세인 전임교원의 실적을 살피면 더 놀랍다. NIPS와 ICML을 포함한 AI 분야 최고 학회에 최근 6년간 10명의 전임교수가 투고한 논문은 101편에 달한다. 카이스트 AI대학원의 우수한 전임교원들은 정부와 삼성전자·SK 하이닉스·한화시스템 등 기업체 22개와 협력해 AI연구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5년간 AI와 관련한 514건, 410억원 규모의 과제를 수행했다.
둘째는 ‘AI+X전공’ 과정으로 AI융합전공 과정이다. AI과목도 듣지만 로봇, 헬스, 자동차, 반도체 등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X)에 대한 지도교수를 공동교수로 해 논문을 AI 융합논문으로 쓴다. 기존의 산학협력과는 조금 다르다. 정 원장은 “예를 들어 학부를 토목공학으로 했는데, 회사에서 교량을 만들다 보니 AI로 교량 만드는 데 뭔가 혁신을 일으키고 싶은 학생은 AI+X 트랙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셋째는 ‘AI Major+Minor’로 부전공 제도다. 1·2번 트랙이 AI 몰입도가 높아 다른 과목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없는 반면, 부전공 제도에서는 윤리적·인문학적 관점에서 본 AI 등을 고민하면서 AI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전임교원들의 역량을 학생들에게 이식하기 위해 학생들은 국내외 유수 AI기업에서 필수 인턴십을 수행해야 한다. 글로벌 역량 강화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또한 교내 타 학과와 융합팀을 꾸려 경쟁하는 ‘카이스트 AI 그랜드 챌린지’에 참여하거나 AI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으로 창업을 시도하며 학생 주도적인 창의자율연구방식을 배워나간다.
카이스트 AI대학원은 매년 석사과정생 40명, 박사과정생 20명 등 총 60명을 선발한다. 1단계사업이 종료되는 2023년이면 110명의 졸업인원을 배출한다. 우리나라의 AI 투자도 늦었는데, 향후 AI인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이다. 하지만 정 원장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AI인력 피라미드’라는 걸 생각해봅시다. 지금 중국에서 AI 몇 만 명, 미국에서 수 천 명 하니 자꾸 ‘AI인력 부족’ ‘주도권 빼앗겨’ 식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AI 인력 피라미드에서 제일 아래에는 AI 툴이나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서 자기 분야에 응용하는 인력 수요군이 있고 이 레벨은 숫자가 제일 많아야죠. 그 위에는 AI 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거나 AI 플랫폼, 시스템 등 AI 운용 환경을 개발하는 인력군이 있을 거고요. 그 위에는 새로운 AI 모델과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심화시키는 연구 인력이 필요합니다. 최정점에는 AI를 보다 과학적으로 연구하며 미해결 난제를 풀어가는 인력군이 있죠. 이번 AI대학원 사업은 상위 2개층 인력군 양성을 목표로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미해결 문제를 풀어 AI 기술을 혁신하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모델과 알고리즘을 연구개발하며 국가의 AI 핵심 역량을 견인해 가는 사람 자체를 단기간에 몇 만 명 양성해 낸다는 것은 과도한 희망이자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부 주도로 AI대학원을 3개 선정하고 피라미드 아래부터 꼭대기까지 AI인재를 양성하자는 건 오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정부에서 필요한 AI인재 양성은 AI인력 피라미드에서 타깃화해서 맞는 정책들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정 원장은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진행하고 있는 2차 AI대학원 선정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미 선정한 AI 대학원들을 더 집중해 지원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무작정 AI대학원을 허가해준다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최상위 인재를 양성하는 AI대학원의 본연의 임무를 잊지 말아야죠.”
학령인구 감소의 시대를 맞아 ‘대학 무용론’이 대학가를 잠식하고 있다. ‘문송합니다’로 대변되는 인문계 학생들에게는 그래서 AI가 한 줄기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AI 과목을 문과 학부생에게까지 개방한다는 대학도 생겼다.
정 원장도 언젠가는 AI학부를 개설한다는 계획이 있다.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에 모두가 AI에 매몰되는 현재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인재가 부족하다고 어느 대학에서는 학부생에게까지 AI해야 한다고 하는데, 글쎄요. 관심 있는 학생들이 AI 관련 과목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만 강좌가 개설돼 있는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4차 산업혁명이 뭔가요? 기존의 산업분야를 혁신하는 겁니다. 제조업, 건설업이 스마트 제조, 스마트 건설이란 이름으로 자동화되죠. AI는 단순작업을 대체할 겁니다. 그러면 인간이 직업을 빼앗긴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인간은 더 창조적인 곳에 시간을 쏟고 새롭고 여유로운 걸 찾아내는 데 시간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정 원장은 현재 반도체공장에서 AI가 가장 많이 대체하는 인간의 업무는 반도체 부품의 결점 확인이라는 사례를 들었다. 이어 소품종 대량생산 시대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를 맞아 스마트 공장에서는 AI 로봇이 컨베이어벨트식 시스템을 대체할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정 원장은 오히려 인간과 AI가 협업하는 시대를 대비해 ‘전인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AI는 데이터로 학습합니다. 그 데이터는 인간이 주는 거죠. 나쁜 데이터가 입력됐을 때 AI가 정제하고 저항할 수 있는 능력도 기술적으로 키워야겠지만, 그 전에 AI에 착한 데이터를 입력하려면 사람이 먼저 착해야 합니다. 사람이 착하지 않은데 어떻게 착한 AI를 만들겠어요? 직업교육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 교육, 더 기본에 충실한 교육이 돼야 AI 세상이 밝아지지 않을까요? 그게 제가 AI를 보는 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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