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궁지로 몰아간 '문제의 논문'은 어떤 내용일까? 세간에 알려진 데로 SCIE급의 전문적이고 난이도가 높은 내용을 담고 있을까?
조 후보자의 딸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2주간의 인턴 기간을 하면서 쓴 SCIE급 병리학 논문에 제1저자로 등재됐고 이를 바탕으로 고려대 생명공학부(구 농대)에 입학하는 등 입시부정을 저지른 의혹을 사고 있다.
하지만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등 일부 진보진영 인사들은 “SCIE급 논문이 아니라 에세이”라면서 “얼마든지 고등학생이 쓸 수 있는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조 후보자의 딸이 논문을 영어로 집필하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실험과 데이터 분석, 통계프로그램 입력 등에도 참가한 만큼 1저자라고 해도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의 논문을 놓고 전혀 다른 주장이 나오는 상황. 사실과는 상관없이 정파에 따라 논문의 수준과 내용이 다르게 인식되는 형국이 됐다.
에 아주경제는 조 후보자의 논문을 직접 확인해 진위를 가려보기로 했다. 논문은 구글링을 통해 확보한 뒤 법무부의 확인을 거쳤고 아주경제에서 해석한 번역본과 인터넷에 게제된 번역본(2종)을 참조해 기사를 작성했다.
조 후보자의 딸이 제1 저자로 등재된 논문은 여섯 페이지 짜리 영어 논문이다.
2002~2004년 사이 단국대 부속 병원에서 출생한 신생아 가운데 다른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데도 ‘출산 전후 허혈성 저산소 뇌병증(HIE)’을 가지고 태어난 37명의 아기들을 연구대상으로 했다.
총 분량이 6페이지라고 하지만 맨 마지막 페이지는 4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5페이지라고 해도 무방하다. 게다가 첫 번째 페이지의 절반이 간단한 논문의 요약, 저자, 제목 등으로 채워져 있고맨 마지막 두 쪽은 참고문헌 목록이다.
결국 외형상 여섯 페이지이지만 실제 내용은 세 페이지 반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본론에 들어가서도 상당한 분량을 분석방법과 조사대상을 기술하는데 할애돼 있다. 어떤 분석방법을 사용했는지 통계프로그램은 뭘 사용했는지 등이다.
여기에 논문의 주제인 eNOS(산화질소효소)와 관련해 이미 알려진 내용을 인용하고 사진과 도표, 통계분석 결과표가 차지하는 분량까지 포함하면 논문의 ‘실체’는 더욱 줄어든다.
▲SCIE급 논문치고는 부실한...
논문의 주제인 허혈성 저산소 뇌병증(HIE, Hypoxic Ischemic Encephalopathy)이란, 뇌에 피가 잘 공급되지 않아서 생긴 질병이나 이상증상를 말한다. 논문에서는 출생 후 5분 뒤의 혈색 등을 말하는 ‘5분 아프가 점수’가 ‘7점 미만’인 신생아들이 대상으로 설정돼 있다.
이 아기들의 백혈구에서 산화질소효소(eNOS)와 관련된 유전자(Glu298Asp, T786C, VNTR)를 추출한 뒤 유전자의 세부 단백질 구성이나 크기를 측정(논문에서는 ‘시각화 했다’고 표현)했더니 정상아와 비교할 때 상당한 격차가 있었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다.
보통아기가 갖고 있는 GG형 유전자가 45라면 허혈성 질환을 갖고 태어난 신생아는 36, AA형은 정상아가 2인데 허혈성 질환을 가진 신생아는 0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식이다.
하지만 논문의 주제인 산화질소효소와 허혈성 뇌병증의 연관성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오히려 ‘eNOS 유전자에 대한 여러 연구에서 강한 상관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라며 기존 연구결과와 같은 결론이 나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교생은 불가?
학계 의견을 종합해 보면 문제의 논문은 이른바 ‘SCIE급’ 논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논문을 게제한 ‘대한병리학회지’가 SCIE급 승격된 것은 2012년으로 논문이 게제된 2009년에는 SCIE급이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이 논문이 고등학생 수준의 논문이냐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한 과학전문매체 기자는 문제의 논문을 보고 “딱 고등학생 수준의 논문”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이런 논문을 받아준 학술지가 있다는 것이 당황스럽다면서 “내가 연구자라면 이런 논문에는 내 이름 넣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생을 제1저자로 내세운 것은 고등학생이 똘똘해서가 아니라 논문의 내용이 부끄러워서 그런 것 아니냐”고 혹평하기도 했다.
또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를 연구책임자의 요구에 따라 분석하고 저술했다면 당연히 1저자로 인정할 수 있다”면서 조 후보자 딸의 제1저자 등재에 문제가 없다고 SNS를 통해 주장한 학계 인사도 있다.
반면 서울대 전기공학부 성원용 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고2가 2주간 인턴을 해서 쓸 수 있는 성질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의대를 다녔다면 말도 안되는 짓이라는 것을 안다”라고 말한 의료계 인사의 주장을 보도한 언론도 있었다.
한편 논문의 책임저자인 장영표 교수는 “난이도가 있는 업무라 다른 인턴들은 모두 도중 하차했지만 조양은 끝까지 성실하게 분석했고 영문으로 논문을 작성했다”면서 “다른 사람을 제1저자로 했다면 그것이 진짜 문제였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 논문으로 대학 갔다?
조국 후보자의 딸이 고려대 생명공학부(구 고려대 농대)에 입학한 것은 지난 2010년 세계선도인재전형이었다. 2009학년도 이전에는 ‘글로벌 인재 전형’이라 불리기도 했다.
선발인원은 총 200명으로 TOEFL(IBT 110, CBT 270, PBT 637점), 또는 TEPS 857점 이상이거나 혹은 AP(College Board) 3과목 성적 제출자 등 어학특기자만 지원이 가능했다.
1단계에서는 어학 성적이 40%, 학교생활기록부 60%가 반영됐고, 2단계는 성적 70%, 면접이 30% 반영였다. 논문실적이 입시에 반영되지 않았다.
조 후보자 딸의 ‘화려한’ 논문실적은 그저 자기소개서에 한 줄로 기록됐을 뿐이었다.
입시전문가 이승철씨는 26일 한 SNS를 통해 “세계선도인재전형은 사실상 외고생을 위한 전형”이라면서 “내용이 뭐든, 어떻게 썼든 논문이 전형에 반영되지는 않았다”라고 잘라말했다.
그는 “학교(외고)나 내신성적(1등급)을 고려했을 때 논문을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면서 “내가 지도했더라면 그렇게 헛힘 쓰게 놔두지 않았을 것”인 만큼 ‘전문가의 지도를 받은 것 같지는 않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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