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지소미아 종료로 흔들린 안보 '발등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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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교수/국제정치
입력 2019-08-2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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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교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수출 우대국(화이트 리스트) 제외에도 대화를 강조했던 한국 정부가 결국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라는 칼을 빼들었다. 일본이 억지 주장으로 경제보복을 계속하고, 대화 제의도 거부하는 등 철저한 무시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는 일본이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경제보복을 하는 상황에서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 목적의 협정 지속은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지소미아의 효용성과 향후 한·일 관계의 주도권, 특히 대한민국의 자존감 확보라는 국민정서를 고려해 종료를 결정했다고 한다.

한국의 ‘안보 비협조’를 이유로 내건 일본과의 안보협력은 사실 어불성설이기는 하다. 이번 결정은 일본의 군사대국화 견제나 미·일, 중·러의 군사 경쟁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한국의 노력, 국민 역량의 결집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럼에도 과거 한국 안보를 지탱해 온 한·미·일 안보 협력구도의 변화를 꾀하는 아베 정권의 ‘계산된 의도’에 말려든 건 아닌지 우려된다. 또 전통 동맹관계도 경제적으로 환산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북한·러시아 견제를 위해 미·일 동맹을 중심에 둔 동북아 안보체제로의 재편을 추진하는 빌미를 준 건 아닌지도 걱정된다.

지소미아 종료가 당연히 ‘감성적인’ 결정은 아니겠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지소미아 종료를 일본은 ‘파괴’로 표현하면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의 군사행동과 관련한 정보교환 수단을 잃었다는 점에서는 안보적 손실임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번 결정이 자칫 일본의 주장을 재확인하는 결과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소미아 종료는 한·일 갈등 해결에 미국 정부의 중재를 유도하고 일본을 압박하는 일종의 카드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이 카드를 써버림으로써 ‘한국이 대북제재에 비협조적이라는 안보상의 이유’를 확인해준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게다가 한·일 지소미아는 한·미·일 3국 정보 공유를 위한 매개체로 미국의 의중이 깊게 반영된 협정이다. 일본은 ‘한·미·일 안보 협력에 협조하지 않는 한국’에 책임을 돌려 미·일 동맹 강화를 추구할 것이다. 이에 따른 주일 미군 강화와 일본의 방위력 증강은 ‘강한 일본’을 추구하는 아베 정권에는 나쁠 게 없기 때문이다.

또, 지소미아는 미국과의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과의 소통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미국과 실시간 소통하면서 지소미아 종료의 불가피성을 설명했고 미국의 동의를 얻은 것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미국에게 한·미·일 3각 협력은 북한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를 3국 공조로 견제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지소미아를 단순한 정보 교류 협정이나 군사 교류 차원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그 상징성과 정치적 함의에 주목해야 한다. 한·미 동맹을 린치핀(linchpin)으로, 미·일 동맹을 코너스톤(cornerstone)으로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미 국방부는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명해 한·미 간에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음을 밝혔다. 특히 지소미아 종료는 결국 북한과 중국에 미국 중심의 동맹 기능이 약화됐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것이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대한 동맹국의 도전이자 미국의 힘이 감소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인식되게 한다. 우리는 미국의 한국 안보에 대한 청구서를 걱정하면서 미래 한·미 동맹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여기에 북한의 태도도 문제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단거리 미사일 실험은 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말을 면죄부 삼아 한·일 갈등을 틈타 연일 신형 방사포라면서 미사일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한·일 경제 갈등을 남북협력으로 극복하겠다는 평화경제론을 주창하고 나서자 더욱 기고만장이다. 안타깝게도 북한은 한국 정부의 선의를 무시하고 평화경제론의 전제인 무력 도발을 하지 않는다는 9·19 군사합의서도 철저히 유린하고 있다. 일본과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한·미·일 안보 공조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단호한 메시지 전달이 더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언제까지 북한의 불장난을 받아줄 것인지 심히 걱정이다.

중국의 의중도 잘 파악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한·일 갈등은 배후에 있는 미국을 생각해보면 중국에는 분명히 호재다. 북한의 최대 후견국으로서 중·러 합동군사훈련 등을 통해 동북아 안보지형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중국은 한·일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대외적으로 군사안보 협력을 개시하거나 중지하는 것은 주권 국가의 자주적 권리’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행태가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났다면서 종국적으로 미국의 아시아판 나토(NATO) 구상에 차질을 가져올 한·미·일 3각 협력구도의 와해를 내심 기대한다. 물론 미국이 한·일 간 경제 마찰까지는 지켜보겠지만 군사안보 분야로 확산되면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있으므로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는 경계론도 있다. 미국이 한·일 간 균열을 메우기 위해 이전보다 공세적으로 나오게 되면, 중국으로서는 미국과의 무역전쟁, 홍콩·대만 문제에 이어 동북아 안보대결에서도 힘겨운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속내 파악에 지속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소미아 종료라는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기존의 협력자산이 없어졌다는 아쉬움도 있고, 일본이 한국기업이 차입한 엔화 상환을 요구하는 금융제재까지 생각한다니 더욱 걱정이다. 정부는 2014년 체결한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을 활용해 지소미아를 대체하겠다는 복안을 밝혔지만, 미국 주도의 동북아 지역안보 균열은 이제 불가피해졌다. 정부 예측과 달리 한·미 연합훈련이 끝났음에도 북한은 미사일 전력 완성에 혈안이다. 대선 정국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직접 위협이 되지 않으면 북한을 제대로 압박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지소미아 협정 종료의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칠지는 불확실하다. 이상적 기대에 의존하는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협력 가능한 현실에 주목하는 것이 불확실성을 대비하는 출발점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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