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EVZ재단 인터뷰] 獨 강제동원 6조원 배상…"日, 과거잘못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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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부국장·윤은숙 기자·한지혜 인턴
입력 2019-08-2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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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은 사회적 인식, 공감대 형성한 다음 사죄를 위한 제도 만들어"

  • 2000년 설립 이후 나치 강제동원 동유럽국 국민, 유대인 개인 160만여명에 6조 원 지급

  • "日 사회 전체가 함께 과거의 잘못에 대해 되짚어볼 기회 없었던 듯"

[안드레아스 에베르하르트 EVZ재단 이사장]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지른 과오에 대한 참회와 책임에 대한 토론 등이 없었던 것 같다"

일제시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한·일 갈등이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일본과 같은 2차대전 전범(戰犯)국가인 독일이 과거 폴란드 등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한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재단((Erinnerung, Verantwortung und Zukunft·EVZ)' 안드레아스 에베르하르트(Andreas Eberhardt) 이사장이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정확히 지적했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일부 정치인들이 독일의 EVZ재단 설립을 본받아 일본도 유사한 재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하는 상황에서 EVZ 최고책임자가 한국 언론과 처음으로 단독 인터뷰를 하고, 나아가 일본을 향해 이같이 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에베르하르트 이사장은 최근 <아주경제>와 가진 다섯 번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EVZ재단이 피해자들에게 전달한 배상금은 독일이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고 반성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독일이 EVZ재단을 설립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사회가 수십년간 논쟁과 토론을 통해 과거의 범죄를 돌아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일본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지른 과오에 대한 참회와 책임에 대한 토론과 자체적인 검토 등이 전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피해자 개인에게 배상금을 지급한) 독일의 배상 사례는 한국과 일본의 논쟁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에베르하르트 이사장은 2016년 4월부터 재단 대표를 맡아왔다. 이전에는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독일-이스라엘 미래 포럼의 총괄 이사를 맡으면서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1998년부터 나치 치하 강제 노동자들을 보상하는 활동을 했으며, EVZ 재단 설립 당시에도 시민 사회 대표로 참여했다. 그는 독일의 과거 사죄 운동을 이끄는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다음은 일문일답.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서독 독일 총리는 나치 정권에 의해 희생된 폴란드의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어 2009년 9월 1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열린 2차 대전 발발 70주년 행사에서 독일 정상으로서 무릎을 꿇었다. 독일을 대표해 용서를 구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뒤 일본과 독일의 외교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은 듯 보인다. 과거에 대한 인식에서 독일과 일본은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또 한국과 일본은 현재의 갈등 상황을 어떻게 풀 수 있을 것으로 보나?

브란트 총리가 무릎을 꿇은 것은 독일의 역사적 부채와 죄를 인정하는 중요한 신호였다. 독일 의회(하원)는 2차세계대전 발발의 시작점인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범죄적인 공격 전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난 2009년 9월 1일 메르켈 총리는 다시 한번 600만 유대인을 비롯해 독일 나치 정권 하에서 살해된 희생자들에게 사죄의 뜻을 표하면서 독일이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는 뜻을 나타냈다.

이처럼 독일 정상들이 사과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과거에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 독일 내에서 충분한 논쟁과 검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는 과거 전쟁 당시에 저지른 범죄와 부채, 책임 등을 둘러싼 논쟁이 시작되었다.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쳐 광범위하게 논의가 되었다.

이러한 논쟁과 검토는 역사적 잘못과 부채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 과거의 책임에 대한 계속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일본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지른 과오에 대한 참회와 책임에 대한 토론, 혹은 자체적 검토 등이 사회 전반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설사 이뤄졌다고 하더라고 일부에서만 이러한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독일의 배상은 언제나 희생자 (국가 간이 아닌) 개인들을 대상으로 행해졌다는 것이다. 첫 번째 배상 대상은 학살 희생자들이었던 유럽 유대인들이었다. 강제징용 희생자들, 정치적·인종적 차별로 희생을 당한 이들도 피해자 그룹에 포함됐다.

이런 독일의 배상 사례는 두 나라 간의 합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한국과 일본의 논쟁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상호 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양국 문화 간의 이해를 높이도록 하는 청소년 단체 혹은 다른 공동 단체들을 만들었다. 이런 상호 이해를 높이기 위한 공동 단체를 만드는 것이 현재 한국과 일본의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도 본다.

- 전쟁을 일으킨 독일이 세운 EVZ와 달리 한국의 '일본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2014년 한국 정부에 의해 설립됐다. 한국 정부는 한국 정부와 한국,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들을 함께 지원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한국에서 스스로 설립한 '일본강제동원피해자지원 재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일본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대해서는 자세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논평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개별 피해자를 상대하는 방식은 옳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정부 및 기업 활동은 사회, 정치 분야 및 기업 등을 망라한 광범위한 합의 혹은 공감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EVZ 재단의 설립과 배상금 지급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도 독일 내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 덕분에 가능했다.

- EVZ 재단은 지금까지 몇 명에게 배상금을 주었나? 피해자들은 배상에 만족하고 있나?

2007년 배상 지급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160만 명 이상의 강제노동자에게 44억 유로(약 5조 9420억원)를 지급했다. EVZ 재단의 초기 투입 자본은 총 100억 독일 마르크로 유로화로 따지면 52억 유로(약 7조원)에 달하는 돈이었다.

배상금은 과거의 범죄와 부채를 인식하는 상징적 징표였다. 물론 경제적 지원의 형태를 띠기는 했지만, 전쟁 당시 받았던 고통과 괴로움에 대한 배상은 상징적인 의미를 띨 뿐 피해자들에게 완전한 만족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희생자들 대부분은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로 하며 원하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동유럽과 이스라엘에서 사회적 지원뿐만 아니라 심리적 지원도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 EVZ 재단을 일본에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양심적인 일본 NGO, 지식인 및 단체가 있다. 최근 한일갈등 상황에서 일본측이 EVZ 재단에 연락한 적이 있나?

과거 토론회와 같은 자리에서 일본의 지식인 및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과 직접 만나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행위에 관련된 문제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토론을 모색하고 보상금을 포함한 다른 문제들에 대해 논의한 적은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들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없다.


◆독일이 과거를 기억하고 인정하고 책임지는 이유, 그리고 방법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및 위안부 동원과 같은 전쟁범죄에 대한 인정과 사과에 소극적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독일은 수십년간 과거를 기억하고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2000년에 설립된 EVZ재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정권 치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배상을 위해 세워졌다. 6조원 규모의 재단 기금은 동유럽 국가, 이스라엘 등 피해국가 개인들에 대한 보상은 물론 평화운동, 문화교류 등에 사용되고 있다.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Erinnerung Verantowortung und Zukunft, EVZ) 재단. 줄여서 EVZ 재단이라고 불리는 이 단체의 이름은 독일이 과거를 마주하는 자세와 맞닿아 있다. 기억하고 책임을 진 뒤 미래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EVZ재단은 '기억의 문화 4.0' 프로그램을 개발, 디지털 정보기술을 통해 과거 독일의 가해 역사를 가르친다. 사진=EVZ재단]


2000년 8월에 설립된 EVZ 재단은 독일의 국가사회주의, 즉 나치시대인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이 저질렀던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독일은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했을 뿐만 아니라 독일의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1600만명이 넘는 인원을 강제동원했다.

재단의 설립에는 독일 연방정부를 비롯해 무려 6500개가 넘는 독일기업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 중 강제동원과 같은 전쟁범죄에 직접적 책임이 없는 기업들도 40% 정도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의 출연금은 독일정부와 기업이 반반씩 맡았으며 한화 6조6000억원 규모에 달했다. 중소기업과 교회 등 사회 곳곳에서도 재단 기금 마련에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전국가적·전사회적인 참여가 이뤄진 것이다.

설립 과정에서는 벨로루시, 체코공화국, 이스라엘, 폴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 독일, 미국 정부가 함께 참여했다. 설립 뒤 2007년까지 100개국이 넘는 나라들의 160만명이 넘는 강제노동자들에게 배상했다. 전쟁포로를 비롯해 폴란드, 구소련, 프랑스 등에서 동원된 강제노동징용자들 그리고 강제수용소 수용자들이 모두 피해자에 포함됐다.

2007년 6월 12일 재단의 공식적 배상금 지급이 종료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화해를 위한 프로젝트’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배상기금과 별도로 '기억, 미래 기금’을 조성해 민족 간의 상호이해 프로그램을 비롯해 전체주의 체제 및 폭정의 위험에 대한 기억 교육, 인도적 사업의 국제적 협력 도모와 희생자에 대한 추모 등 사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강제노역자 및 기타 나치정권 피해자들과 젊은 세대의 만남을 장려하거나 청소년과 교육자들에 대한 국제적 역사 교육프로그램, 청년들을 위한 국제적 봉사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래에는 다시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반영하는 프로그램들이다.
 

[독일 이민 사회의 기억과 역사, 문화를 조사하는 EVZ재단 지원 연구 프로젝트 '움직임 속 이야기' 로고. 사진=EVZ재단]


물론 독일이 처음부터 피해자에 대한 배상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은 아니다. 이미 과거의 일이고, 할 만큼 했으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잊어야 한다는 반발이 독일에서도 나왔다. 특히 서독의 전후 배상문제를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기 위해 1953년 체결된 런던채무협약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처럼 강제노동에 대한 개인적인 피해 배상을 제약하는 근거가 됐다.

그러나 1990년 무렵부터 전쟁당시 강제노역이 불법이라는 역사연구 자료들이 나오면서 피해자들의 소송이 이어졌다. 독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윤리적 압박은 더욱 심해졌다. 1998년 강제노동자에 대한 배상 문제에 전향적 자세를 보였던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가 나서서 기업들에게 함께 해법 찾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기업들은 피해자들이 낸 소송에 패배할 경우 천문학적 배상액을 지불해야 했다. 게다가 독일 경제의 핵심이 되는 수출 주력 기업들은 ‘무책임한 전범 기업’보다는 책임지는 기업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배상 재단 설립에 참여한 것이다. 결국 역사적 책임을 짐과 동시에 경제적인 피해도 줄이기 위한 고심 끝에 나온 것이 바로 EVZ 재단이다.

다행스러운 부분은 최근 일본 내에서도 과거를 다시 직시해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유력한 차기 총리 주자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로 전 자민당 간사장은 23일 자신의 블로그에 "일본은 뉘른베르크 재판과는 별개로 전쟁의 책임을 스스로의 손으로 밝힌 독일과 달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일본이 패전 후 전쟁 책임을 정면에서 직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겨났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본의 강제동원 문제 전문가인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도 언론 인터뷰에서 “독일의 화해 사례를 배워야 한다. 아베 총리가 모든 게 해결됐다고 주장한다면 진정한 한·일 간 화해는 이뤄질 수 없게 된다"며 EVZ 설립을 예로 들기도 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 역시 한·일 갈등의 원점에 일본의 식민 지배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원점으로 돌아가 빨리 우애 정신으로 양국이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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