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디지털 화폐 패권 전쟁' 불 댕기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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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기자
입력 2019-08-2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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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인민은행 주도 1000억 위안 규모 CBDC 발행 초읽기

  • 페이스북 달러연동 '리브라' 출시 밝히자 개발 앞당겨

  • "개발 뒤처지면, 중국에 결제방식 주도권 뺏긴다" 우려

  • 美·日·유럽 주요국도 '디지털 기축토화' 구축에 분주

“미국의 디지털 화폐 개발이 중국보다 뒤처지면 미국 등 서구 기업들은 결제 방식을 (중국의 방식으로) 바꿀 수도 있다.”

미국 블록체인 스타트업 서클의 제레미 얼레어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가상화폐(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디지털 화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이 이를 곧 시장에 정착시키고, 서구의 결제 방식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그의 발언이 단지 한 기업인의 의견일 뿐이라고 해석되지 않는 이유는 중국의 법정 디지털 화폐 발행이 머지않았다는 전망 때문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최근 업계에서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1000억 위안(약 17조원) 규모의 디지털 화폐(CBDC)를 곧 발행한다는 걸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중국 금융당국 관계자들의 법정 디지털 화폐 발행 관련 언급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규제해오던 중국이 디지털 화폐 발행을 추진하기로 한 배경에는 미국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리브라(Libra) 출시 추진이 있다. 중국 디지털 화폐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이 세계 디지털 화폐전쟁에 불을 댕기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픽=아주경제]

◆인민은행 '디지털 화폐' 발행 초읽기..."본원통화 대체"

중국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무창춘(穆長春) 인민은행 지불국 국장은 지난 10일 열린 ‘차이나 파이낸스 40 포럼’에서 “인민은행은 가상화폐 개발을 위해 지난해부터 집중 투자를 했다”며 “이제 곧 출시할 수준이 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인민은행 연구국의 왕신(王信) 국장 역시 “중앙은행이 직접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면 통화지급기능과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높일 수 있다"며 인민은행 차원의 디지털 화폐 개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같은 달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인민은행 총재는 페이스북의 리브라 출시 선언에 대해 글로벌 디지털 통화 굴기를 반영하는 것이라 평가하며 위안화의 국제화를 강조했다. 저우 전 총재는 “앞으로 더 글로벌화한 강력한 통화가 나타나 주요 통화와 태환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그것이 꼭 리브라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인민은행을 이끈 저우 총재는 재임 중에 위안화 국제화에 공을 들였다.

인민은행 전·현직 고위 관계자들이 최근 잇따라 디지털 화폐에 대해 언급한 건 중국이 디지털 화폐 발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의미다.

인민은행이 디지털 화폐 개발을 시작한 건 2014년부터다. 인민은행은 이때부터 디지털 화폐 개발을 위한 전문 조직을 꾸리고, 기술 분야뿐 아니라 유통, 관련 법률과 관련한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1월에는 선전에 디지털화폐연구소도 설립했다.

중국은 민간의 가상화폐에는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전 세계적인 가상화폐 열풍의 영향으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에 대한 투기가 중국을 강타하자 중국 정부는 곧바로 이를 규제했다. 주요 거래 플랫폼을 폐쇄하고, 가상화폐 시장의 핵심인 가상화폐 공개(ICO)도 금지했다.

인민은행이 발행하려는 디지털 화폐는 발행 주체가 중앙은행이라는 점에서 일반 가상화폐와는 성격이 다르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는 신용도 하락이나 채무 불이행 등에 따른 신용 리스크를 낮출 수 있다. 현금에 비해 거래 투명성도 높다.

무창춘 국장은 인민은행이 발행할 디지털 화폐는 현금을 의미하는 본원통화(M0)를 대체하는 것으로, M1·M2를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검토 중인 첫 발행 규모는 1000억 위안가량”이라며 “디지털 화폐가 본원통화를 대체하는 만큼 이자는 지급되지 않으며, 실물경제에 타격을 입히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원통화를 디지털 화폐로 대체하면, 추적관리가 가능해져 테러 자금세탁이나 위조를 방지할 수 있다고도 했다.

◆中이 촉발한 디지털 화폐 패권 전쟁... 승자는 어차피 중국?

중국이 디지털 화폐 개발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게 된 배경에는 페이스북의 리브라가 있다. 리브라는 미국 달러와 연동될 것으로 보이는데 상용화하면 국제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며 달러와 통화패권 경쟁을 해온 중국에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중국 인민대학교 중앙금융연구원의 저우뤄화 부원장은 “리브라가 출현하면, 중국 금융시장 개혁이 긴박해질 것”이라며 “중국이 모바일 결제 분야에서 앞서긴 하지만, 여전히 국유은행체계에 의존하고 있어 리브라와 경쟁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도 페이스북이 리브라 계획을 발표한 지 두달 만에 인민은행이 디지털 화폐 발행을 준비한 점에 주목하며 디지털 화폐의 패권을 쥐기 위한 전쟁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리브라 발표 직후 다가올 디지털 화폐의 시대를 대비하라는 국제결제은행(BIS)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조언에 중국이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섰다는 것이다.

중국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다른 주요국들도 분주히 나서고 있다. 일본은 암호화폐를 암호자산으로 명명하며 제도 마련에 뛰어들었다. 로이터 통신은 최근 “일본이 암호화폐 SWIFT(국제결제시스템) 를 구축하고 있다”며 “암호화폐를 비롯한 각종 디지털 화폐의 허브가 되어 엔화의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전한 바 있다.

유럽도 비슷한 양상이다. 마크 카니 영국 영란은행(BOE) 총재는 “디지털 기축통화로 미국 달러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며 국제 디지털 기축통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스웨덴은 소매용 디지털 화폐(e-Krona·이크로나) 발행 연구를 진행 중이며 스위스와 노르웨이 등도 디지털 화폐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세계 디지털 화폐 패권 전쟁에서의 승자는 중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친다. 중국은 공산국가라는 특성상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를 별다른 저항 없이 빠르게 보급할 수 있고, 자국 인터넷 기업에 디지털 화폐 사용을 강제할 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디지털 위안화가 위안화 국제화로 연결되려면 블록체인 기술을 채택하고, 익명성을 보장하는 개인정보보호가 담보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디지털 화폐에 불법자금 흐름을 감시하기 위한 기능을 강화하면 개인정보 보호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저우뤄화 부원장은 "개인 정보 보호와 범죄 타격을 위한 사회질서 유지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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