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에 모처럼 단비와 같은 좋은 소식이 있었다. 대기업으론 처음으로 현대 모비스가 해외 자동차부품 공장의 가동을 접고 울산에 친환경 부품공장을 착공한 것. 문재인 대통령은 착공식에서 국내에 복귀하는 현대모비스를 격려하며, 앞으로 아낌없는 지원과 응원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자유무역이 활성화되고 글로벌 가치사슬이 만들어지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해외투자를 크게 늘렸다. 생산비용을 낮추거나 성장이 가파른 신흥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그리고 각국의 보호주의를 피하기 위해 진출하는 등 이유도 다양했다. 기업의 해외진출은 역으로 국내에서 산업공동화와 일자리 감소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정부는 2013년 ‘해외진출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여 왔으나 그 성과는 아직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게 실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년 상반기 기준 직접투자에선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202억7000만 달러 증가한 반면, 외국인의 국내투자는 46억8000만 달러 늘어나는 데 그쳤다. 산업부 발표에서도 금년 상반기 우리나라의 외국인 투자 유치는 신고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나 감소하였다.
세계 각국이 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자국 기업들의 국내 유턴’을 원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이다. 언뜻 보기에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자국 우선의 관리형 보호무역을 강화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미국의 리쇼어링’은 역사가 꽤 오래됐다.
필자가 미국에서 근무하던 2010년에 해리 모저는 해외에 진출했던 미국기업들이 미국으로 복귀하는 ‘리쇼어링 이니셔티브(Reshoring Initiative)’를 주창하면서 리쇼어링 재단을 설립했다. 동 재단에 따르면 2010에서 2018년까지 리쇼어링 기업 및 관련된 해외직접투자(FDI) 덕분에 75만7000개의 일자리가 미국에 생겼다고 한다. 2018년 한 해에 리쇼어링 및 해외직접투자 신고기업은 1389개에 달해 최고 수치를 기록했고, 14만5000개의 추가 일자리가 생긴 것으로 추산됐다.
그럼 미국에서는 해외 투자한 기업들이 돌아오는 리쇼어링 현상이 왜 뜨거운 것일까?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이유는 제품혁신과 소비자 구매패턴의 변화에 있다. 과거에는 대량생산을 통해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기업이 성장해 왔고 최대 수혜국은 중국이었다. 세계 대기업들은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진출했고 중국이 전 세계 제조공장이 되었다. 중국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당시 468억1000만 달러에 불과했던 외국인 직접투자가 2017년에는 1조3632억 달러로 연평균 6.9%씩 성장해 왔다.
그러나 세상은 더 이상 제품이 싸고 좋다는 것으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는 시대로 변화했다. 소비자의 가치와 구매패턴의 변화에 따라 제품과 서비스의 공급 구조도 크게 변화하고 있다. 스마트 팩토리 등 제조분야의 기술혁신이 이뤄지며 인건비가 생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지고 있고, 셰일가스와 신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혁명으로 선진국의 에너지 비용이 크게 줄었다.
맥킨지컨설팅이 지난 1월 무역과 가치사슬의 변화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가치사슬이 보다 ‘지식 중심과 고도기술인력’으로 급속히 변화하면서 인건비에 의존하는 무역 비중이 20% 이하로 줄었다. 2000년 이후 연구개발, 브랜드, 지식재산권 등 무형자산에 대한 매출 대비 투자도 5.5%에서 13.1%로 두 배 이상 늘었다는 게 맥킨지 설명이다.
미국 리쇼어링 재단에 따르면 미국기업이 국내로 복귀하는 리쇼어링의 이유로 납기시간, 높은 품질, 국외인건비 상승, 세제혜택, 미국산 브랜드 이미지, 재고 감축과 높은 회전율, 고객수요의 빠른 대응, 지적재산권 및 규제 리스크 완화, 향상된 혁신과 제품차별화 등의 이점을 꼽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미국 3대 자동차 제조업체 대표들을 백악관에 불러들여 미국에 공장을 더 지으라고 압박하면서, 규제를 줄이고 세금혜택까지 준다고 약속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법인세를 기존 35%에서 20%로 대폭 삭감하고,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구호를 앞세우면서 기존 통상협정을 미국에 유리하게 개정하는 한편 셰일가스 개발 지원으로 에너지비용을 획기적으로 내리는 등 친기업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여기에 민간 기업들의 동참도 주목할 만하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는 2023년까지 2500억 달러(약 279조원)어치의 제품을 미국산으로만 구매하는 ‘월마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를 발표하였고, 그해에만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 있는 납품업체 40여개 공장이 미국으로 복귀한 바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국내 복귀기업은 소위 유턴법이 통과된 이후 지난해 말 기준으로 52개가 신청하여 31개가 조업 중이고 21개는 준비 중에 있는 실정이다. 인센티브도 법인세 감면, 토지매입 보조금, 인력 및 컨설팅지원 등에 제한되고 있어 미국의 통상 및 구매정책, 파격적인 규제 및 세제 완화 등 친 기업정책과는 온도차가 크다. 다행히 이번 현대모비스의 유턴이 도화선이 되어 미국처럼 ‘한국식 리쇼어링’이 줄을 잇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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