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분양가 상한제 반대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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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본 부국장
입력 2019-09-0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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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구동본 건설부동산부 부국장]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이 안갯속이다.
현재로선 시기도, 대상지역도 알 수 없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호기 있게 밀어붙였던 얼마 전 상황과 딴판이다.
사실 상한제가 8월 12일 공식 발표될 때까지 무려 한 달 보름이나 걸렸다.
입법예고 등 후속절차를 거치면 아무리 일러야 10월 초 공포·시행된다.
10월 초 시행을 전제로 하면 3개월간 시장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10월 초 시행도 현재 여권 기류를 보면 물 건너간 것 같다.
보수 기득권층이 지지기반인 야권은 이미 반대 전선을 형성했다.
진보 진영으로 분류되는 여권 내부에서조차 부정여론이 흘러나온다.
이낙연 총리, 홍남기 경제 부총리까지 전면에 나서 그런 연기를 피운다.
이에 정부 부처 간 불협화음도 들린다.
정부와 여당 일각에선 반발조짐도 엿보인다.
여권 내 의견이 다르고 갈팡질팡하니 시장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벌써부터 내년 총선까지 상한제 시행이 어려운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잠시 주춤하던 서울 집값 상승세도 다시 뚜렷해졌다.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자들이 상한제 반대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오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세 과시를 하겠다는 거다.
이 기회에 정부의 상한제 의지를 확실히 꺾어놓겠다는 심산이다.
정비사업자나 건설업계는 그렇다 치자.
정부는 상한제 시행에 뭐가 두려워 그리 꾸물대는가.
분양가 상한제 반대론의 핵심은 공급 감소, 경기 침체 등으로 압축된다.
우선 공급 감소론은 논리의 비약이거나 과장이다.
장기적으로 일정 부분 공급 감소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공급 감소를 상한제 반대논리로 제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상한제보다 파장이 컸으면 컸지 작지 않았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이 제도가 오랜 우여곡절, 진통 끝에 지난해 1월 시행됐다.
시행에 앞서 재건축조합들은 헌법소원을 냈다.
주택공급이 줄어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건축사업이 올스톱 될 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공급이 줄었나.
또 재건축 추진이 중단됐는가.
시끄럽던 위헌논란도 불과 2년도 안 돼 사그라들고 제도 정착 단계에 있다.
상한제는 재개발·재건축 조합, 시행사업자, 건설사 수익을 원천 차단하는 게 아니다.
일정한 수익을 보장한다.
상한제 적용 단지의 분양가는 크게 택지비와 기본형 건축비 합계에 각각의 가산비를 더해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방식으로 책정된다.
택지비는 감정평가를 통해 산출된다.
기본형 건축비는 정부가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매년 3월과 9월 두차례 상한액으로 고시하는 금액이다.
감정평가로 이뤄지는 공시지가와 기본형 건축비는 지난 3년간 각각 24.5%와 12.2% 올랐다.
이는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 4.4%의 각각 5.5배, 2.7배였다.
그런데도 상한제 반대론자들은 상한제 시행 시 건설사업 주체가 수익을 내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 건설 사업자가 사업을 포기하게 되고 이에 따라 결국 주택 공급이 줄어들게 된다고 꼬집는다.
그게 공급 감소론이다.
하지만 그런 가정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건설 사업자는 분양가 상한제가 현재 적용되고 있는 공공택지에서 사업기회를 잡으려 혈안이다.
상한제에서도 수익이 난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상한제가 건설 사업의 수익을 막는다는 논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각종 과세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와 토지보상 또는 재개발·재건축 땅값 산정 기준인 택지비는 똑같이 감정평가로 이뤄진다.
그런데도 공시지가는 높다고 하면서 택지비는 낮다고 한다.
도대체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또 지금 아파트 값 상승의 주요 원인을 공급 부족만으로 보기 어렵다.
통제할 수 없는 수요 폭발이 핵심 원인이라는 게 타당한 분석이다.
현재 분위기에선 서울 강남만 놓고 보면 집값 떨어질 가능성이 없다.
강남 부동산 시장은 투자 위험이 없는 곳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오히려 오를 게 확실하다고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돈 있는 사람, 돈 없어도 돈 끌어올 재주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강남 부동산 투자에 목을 맨다.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 공급만 늘리면 집값을 잡을 수 있는가.
그리 하려면 아마도 강남 1000개 새로 만들어 아파트 공급해도 부족할 것이다.
상한제 반대론자들은 상한제 시행이 경기 침체의 골을 깊게 할 거라고 한다.
이런 주장도 호들갑이다.
건설경기가 위축되면 경제에 일부 주름살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상한제 시행 안한다고 경기 침체를 막거나 반전시킬 수 있는가.
상한제는 건설 중 주택부문, 그것도 수도권 등 일부 지역에 국한돼 적용된다.
재개발·재건축의 기본 취지는 낡은 집을 새 집으로 바꾸는 것이다.
서울지역에선 갈수록 집 지을 땅이 없어지고 있는 집은 노후해지고 있다.
서울 재개발·재건축 활성화가 필요한 이유다.
서울에서 재개발·재건축만 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도 없다.
물론 재개발·재건축한다고 집값 잡을 정도로 공급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효과적인 공급 통로인 것만은 분명하다.
정부가 당초 서울 재개발·재건축을 장려·촉진한 배경이다.
그 인센티브로 집주인 부담을 더는 방향에서 분양수익을 얻도록 설계했다.
그런데 이 분양수익이 과도하다.
단적인 예로 서울 강남권 A아파트 재건축을 보자.
지은 지 40년 넘은 낡은 아파트 32평 한 채 가진 집주인.
이 아파트를 재건축하면 이 집주인은 32평과 25평 2채를 새 집으로 받는다. 그것도 단 한 푼의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게 말이 되는가.
재개발·재건축은 이제 괴물로 변했다.
그 순기능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 집주인들의 탐욕만 넘쳐 서로 물어뜯고 할퀴고 있다.
그 재개발·재건축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분양가 상한제라고 부작용이나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방안이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은 될 수 있다.
최근 집값 상승의 주범은 고분양가 아닌가.
상한제 반대론자도 천정을 모르는 고분양가, 고삐 풀린 집값을 그냥 놔두자는 건 아닐 것이다.
이걸 잡는 데 현재로선 상한제 말고 뭐가 있는가.
분양가 상한제는 일단 조속히 시행하는 게 맞다.
시행 과정에서 정말로 경제 악영향, 공급 위축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얼마든지 보완 수단이 있다.
적용 대상 지역 최소화나 택지비·기본형건축비 상향조정 검토가 가능하다.
정부는 도대체 언제까지 탐욕자와 투기꾼들에 끌려 다닐 건가.
투기 조장 또는 방치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인가.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경기 못 살리겠다는 무능한 정권이라면 차라리 내려오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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