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낮다는 것은 일반 서민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지만 실제 경제에서는 달가운 것이 아니다. 소비 위축으로 상품 가격이 떨어지면서 생산과 투자·소비 등 경제 전반이 지속적으로 침체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소비자물가 상승률 저하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0.038%로 낮아졌다. 1965년 통계작성 이후 역대 최저 상승폭이다. 올해 들어 7월까지 0% 성장률에 머물렀던 소비자물가는 8월 들어 마이너스까지 기록한 것이다.
소비자물가 하락을 이끈 가장 큰 요인은 석유류와 농산물 가격 하락이다. 농산물 가격은 1년 사이 11.4% 하락했고, 축산물 2.4%, 수산물은 0.9% 떨어졌다. 국제 유가 하락과 유류세 인하로 석유류 가격도 6.6% 내렸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최근 국제유가 하락과 유류세 감면, 교육복지 등의 영향으로 물가 흐름이 상당히 낮아진 상황에서 8월 농축수산물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며 "특히 농산물은 양호한 기상여건에 따라 생산량이 증가해 가격이 하락했고 작년에 폭염 등으로 높은 가격 상승률을 보인 기저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농산물과 국제유가에 따른 일시적인 효과 때문에 소비자물가가 낮아졌다는 입장이다. 이어 하반기, 내년에는 물가가 회복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과장은 "기저효과가 당분간 2∼3개월 정도는 더 유지될 것 같다"며 "연말에 기저효과가 해소될 것 같고 다시 원래 물가(상승률) 수준인 0%대 후반이 나타나지 않을까 한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이 같은 디플레이션 상황이 되면 경제 성장률도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성장이 멈춘 상황에서 저물가가 더해질 경우 소비 감소로 이어져 경제 전반이 가라앉을 수 있어서다.
실제 한국은행은 이날 발표한 2분기 국민소득'에서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당초 1.1%에서 1.0%로 낮아졌다고 발표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으로 3분기, 4분기 경제성장률은 더욱 떨어질 것이고,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는 것까지 감안하면 디플레이션 상황까지 볼 수 있다"며 "정부는 일시적이라고 해도 수요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의 수출 규제에 따른 실질적인 파장이 4분기부터 나타날 것이고, 이 기간까지 소비도 함께 떨어지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일반 상품 가격이 떨어지는 것도 이 같은 저물가·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된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물가 상승을 상품이 아닌 공공부문이 이끌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위험도가 높아지는 상황이 맞고 정부가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며 "유가나 농산물의 영향은 분명히 있지만 정부의 예측보다 물가가 낮아질 것이며,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실제 물가와 물가지수 사이에 괴리가 있다. 소비증가율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어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가가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고, 부동산 등의 가격을 억지로 끌어 내렸지만 소비 증가율이 낮은 것은 아니다"며 "경제 성장이 안 된다는 측면이 있지만 소비가 침체됐다고 보긴 어렵고,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홍우형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고용도 안 되고 성장도 안 되고 반도체마저 무너질 수 있는 상황으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은 분명하다"며 "하지만 실제 장바구니 물가와 소비자물가지수가 어느 정도 괴리가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개선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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