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지원에 적극적인 대기업 중 네이버, 카카오에 이어 3위 차지’. 다름 아닌 롯데그룹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상위 3개 기업 중 롯데는 객관식 보기 없이 응답자가 바로 써내는 비보조 인지도 조사에서 네이버에 이은 2위로 꼽혔다. ‘스타트업 지원활동이 활발한 대기업?’ 하면 롯데가 즉각 떠오른다는 뜻이다.
이는 실제 스타트업을 이끌어가는 창업자를 대상으로 한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18’ 결과란 점에서 재계는 적잖이 놀라워했다. IT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를 제외하면 사실상 대기업 중 삼성을 제치고 롯데가 스타트업 지원에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다는 뜻이기 때문.
이런 성과를 내기까지 스타트업 지원과 투자에 핵심 역할을 해온 곳이 있다. 바로 2016년 신동빈 회장의 아이디어로 설립된 ‘롯데액셀러레이터(Lotte Accelerator)’다. 신 회장이 법인 설립 자본금 150억원 중 50억원을 사재 출연할 정도로 애정이 남다르다.
이곳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김영덕 롯데액셀러레이터 사업총괄 상무는 8일 서울 테헤란로 사옥에서 아주경제와 만나 “스타트업 지원을 통해 롯데가 배우고 얻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말문을 열었다.
“많은 분들이 롯데가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것은 결국 그룹 계열사의 여러 사업과 연결지어 시너지를 내기 위한 사전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결코 그런 이유로 스타트업을 선발하고 지원하지 않아요. 향후 얼마나 ‘좋은 회사로 성장할 것인가’를 가장 최우선으로 따집니다. 향후에 롯데와 시너지를 낼지 안 낼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나중에 연계가 되면 좋겠지만, 스타트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저희는 새로운 서비스와 트렌드를 그 누구보다 빨리 파악하는 장점이 더 많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롯데는 투자 대비 큰 과실을 얻고 있는 셈입니다.”
김영덕 상무 역시 벤처 1세대 기업인 출신이라 그 누구보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1999년 인터파크에 합류해 사내 최연소 최고기술경영자(CTO)를 지냈고 이후 최고마케팅경영자(CMO) 등을 역임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2000년 인터파크의 사내 벤처로 출발한 G마켓(구 구스닥) 설립을 기획한 창립멤버로 향후 G마켓 이사도 지냈다. 이후에는 한국을 떠나 세계 벤처기업인들의 꿈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사업도 하며 글로벌 트렌드를 두루 익혔다. 한국으로 돌아와선 대기업의 현황이 궁금했다. 그러다 2015년 롯데정보통신 CTO로 합류하면서 롯데와 인연이 닿았다. 이듬해 신동빈 회장이 ‘스타트업 부스터’ 역할을 할 액셀러레이터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하면서 롯데액셀러레이터의 실무를 책임지게 됐다.
당시 신 회장이 액셀러레이터의 표본으로 제시한 곳은 미국 실리콘 밸리의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다. 현재 시장가치 30조에 달하는 에어비엔비(Airbnb)와 기업가치 10조를 넘는 드롭박스(Dropbox) 등이 이곳에서 배출됐다.
롯데액셀러레이터도 설립 3년 만에 제법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롯데액셀러레이터의 대표 사업은 초기 벤처기업을 선발해 종합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엘캠프(L-Camp)‘인데, 벌써 5기까지 진행했고 올해는 특히 부산에서 ‘엘캠프 부산 1기’도 진행하고 있다.
엘캠프에 선발된 기업은 6개월간 2000만~5000만원의 창업지원금과 사무공간, 전문가 자문 등을 제공받는다. 지금까지 엘캠프 1~5기, 엘캠프 부산 1기 등 82개사를 비롯해 롯데액셀러레이터가 지원한 스타트업이 100개사가 넘는다. 지난 7월초부터는 엘캠프 6기를 모집하고 있다.
비단 스타트업 보육에만 그치지않고 보다 적극적인 스타트업 투자를 위해 지난해 6월 총 272억원 규모로 ‘롯데스타트업펀드 1호’도 조성했다. 벤처캐피털(VC) 등 여러 투자자에게 직접 사업을 소개하고 후속투자를 유인하는 데모데이도 열고 있다.
롯데액셀러레이터는 현재까지 15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인슈어테크 기업 ‘보맵’(20억원), 공유주방 위쿡을 론칭한 스타트업 ‘심플프로젝트컴퍼니’(15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투자한 기업가치도 수직 상승했다. 김 상무는 “1~4기 61개사의 입주할 당시 기업가치는 총 1344억원이었는데, 현재 기업가치는 4296억원으로 약 3.2배 성장했고 절반가량이 후속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입주 기업의 고용 인원도 총 343명이었지만 올해 기준 559명으로 63% 증가한 것도 고무적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지원한 스타트업과 롯데 계열사들과의 실질적인 사업 연계도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계 최초로 360도 카메라(핏 360)를 개발한 ‘링크플로우’다. 4개의 카메라를 통해 측면, 뒷면까지 촬영할 기술은 갖췄지만, 제품 양산이 난제였다. 링크플로우는 이후 롯데캐논과 연계해 롯데가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을 받아 제품을 양산하며 그룹 시너지를 냈다. 현재 롯데물산의 대테러팀이 링크플로우의 360도 카메라를 활용, 사각지대 없이 보안을 챙기고 있기도 하다.
김 상무는 무엇보다 롯데액셀러레이터를 통해 덩치가 큰 롯데그룹이 보다 빨리 혁신의 비전을 살필 수 있는 장점이 크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의 젊은 창업자들과 함께하다 보면 미래 먹거리, 핫한 사업 트렌드가 보입니다. 2~3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AI), 로봇, O2O, 신선식품 배송을 꿈꾸는 스타트업이 주목받았는데, 요즘은 비디오 커머스와 같은 혁신적인 유통 서비스, 물류혁신 스타트업 등이 대세 같습니다. 초기 기업이 궤도에 올라가는 데 보통 3년이 걸리죠. 이는 스타트업 지원과 투자를 통해 3년 뒤의 패를 저희는 미리 볼 수 있어요. 조만간 산업의 주축이 혁신적인 유통, 물류 서비스에서 판가름 날 것이란 점에서 유통과 커머스 인프라가 많은 롯데그룹으로선 큰 소득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롯데액셀러레이터는 지역 스타트업 지원, 벤처캐피털(VC)과 협업을 강화하는 등 보폭을 한층 넓힐 계획이다. 올해 처음 부산에서 엘캠프를 시작하고, VC를 위한 데모데이를 활발히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데모데이는 생각보다 기준이 엄격하다. 상반기, 하반기 엘캠프의 마지막 단계로 이뤄지는 데모데이에서 VC로부터 구체적인 투자를 받을 팀들을 선발한다. 엘캠프 한 기수당 보통 적게는 11개 팀, 많게는 18개 팀을 선발하지만 이 가운데 데모데이에 올라올 수 있는 기업은 딱 8개 팀에 불과하다. 능력이 안 되면 데모데이에 아예 세우지 않는 것이다.
엄격한 이유는 꾸준한 후속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나름의 잣대가 충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롯데 데모데이에 가면 투자할 만한 회사가 많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VC들에게 각인시키는 작업이죠.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데모데이에 세울 수 없다면 아예 드롭(탈락) 시킵니다”라면서 롯데 데모데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다만 엘캠프에 참여한 모든 팀들에게 데모데이 전시공간 밖에서 전시할 기회는 주는 열린 장을 마련하는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또한 다음 번에라도 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든다면 향후 데모데이 스테이지에 올릴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VC 100여명을 포함해 총 200여명이 참여하는 롯데 데모데이는 이렇게 양질의 스타트업을 선별하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공유하는 동시에 투자의 큰 장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상무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지원과 투자는 급하게 이익을 보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야말로 ‘선한 투자’가 돼야 하죠. 어떤 영역에서 하루빨리 과실을 딸 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협업, 동반성장의 개념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살펴야 합니다. 함께 좋은 회사를 발굴하고 동시에 투자한다면 스타트업의 가치는 지금보다 몇배 더 올라갈 것이니 그 과실은 천천히 따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1987년 대구 달성고 졸업 ▲1992년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졸업 ▲1994년 포스텍 정보통신대학원 졸업 ▲1994~1999년 포스데이타 연구원 ▲1999~2006년 인터파크 CTO, CMO, CSO ▲2000~2007년 G마켓 공동창업자 ▲2015~2016년 롯데정보통신 정보기술연구소장 ▲2016년~현재 롯데액설러레이터 사업총괄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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