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 등에 따르면 ECB는 이날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예금금리를 사상 최저인 -0.4%에서 -0.5%로 0.1%포인트 더 낮추기로 했다. 예금금리는 ECB의 기준금리 가운데 하나로 시중은행들이 ECB에 예치하는 예금에 물린다.
ECB가 예금금리를 인하한 건 2016년 3월 이후 3년 반 만에 처음이다. 시장에서 예상한 대로다.
ECB는 아울러 오는 11월부터 필요할 때까지 월간 200억 유로 규모의 순자산을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재개하기로 했다. ECB는 2015년 3월 시작한 양적완화를 지난해 12월 종료하고, 금리인상 등 통화정책 정상화를 모색했지만 9개월 만에 무위에 그쳤다.
또 지난해 3월 은행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도입하기로 한 목표물 장기대출프로그램인 'TLTRO-Ⅲ'도 이율을 변경해 은행의 대출조건을 유리하게 하도록 조정하기로 했다. 'TLTRO-Ⅲ'의 만기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난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이날 회의 뒤에 열린 회견에서 일련의 조치를 "매우 강력한 패키지"라고 평가했다. ECB는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에 근접했다는 확실한 신호가 나올 때까지 예금금리를 현 수준 이하로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양적완화도 사실상 금리인상을 단행할 때까지 계속할 예정이다.
ECB가 이날 발표한 경제·물가 전망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8%에서 올해 1.2 %, 내년에는 1.0 %로 떨어질 전망이다. 실질 성장률도 올해와 내년에 각각 1.1%, 1.2%로 지난해 1.9%를 훌쩍 밑돌 것으로 예상됐다.
미·중 무역전쟁, 브렉시트 같은 악재와 맞물린 저인플레이션은 유럽 경제를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내몰 수 있다는 우려를 자극해왔다. 수출·생산 부진이 경제 전반으로 번져 물가상승률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어서다. 저인플레이션은 기업의 가격인상, 임금인상 여지를 갉아먹는다.
유로존 경제를 둘러싼 우려가 컸던 만큼 시장에서는 ECB가 이날 예상보다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유럽 주요 증시가 일제히 오르고 주요국 국채 수익률은 하락했다.
일각에서는 ECB의 통화완화 여력이 곧 한계에 이를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더욱이 독일과 네덜란드 등은 유로존 국가들의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완화가 각국의 부채를 늘리고 자산거품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부작용을 들어 양적완화 재개는 시기상조라고 반발해왔다. 이날 회의에서는 프랑스까지 가세해 즉각적인 양적완화 재개에 반대하고 나섰다.
드라기 총재는 취약한 경제전망과 지속적인 하방위험을 들어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나라 정부들이 오히려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독일,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이 적극적인 재정부양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카르스텐 브르제스키 IN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낸 투자노트에서 "모든 시장이 지금은 환호하지만, 성장세와 인플레이션을 본 궤도로 되돌리는 데 이번 조치가 충분할지 여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두 알면서도 모른 체 하는 진짜 문제는 재정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재정부양 없이는 드라기의 마지막 스턴트가 '헤피엔드'로 끝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2011년 취임한 드라기 총재는 오는 10월 말 퇴임할 예정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후임으로 본격적인 통화완화 재개를 이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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