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흐름이 그만큼 심상치 않다는 방증이다.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제조업 경기부진이 세계경제 성장엔진 역할을 해온 중국의 성장둔화 우려를 자극하고 있는 가운데, 급락세에 있던 국제유가마저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에 급등세로 돌아섰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경기부양을 위한 공조에 나섰다. 기준금리를 제로(0), 마이너스(-)까지 떨어뜨리는 파격과 동시에 시중 자산을 매입해 돈을 푸는 양적완화가 이어졌다. 금리를 더 낮출 수 없는 상황에서 금리인하 압력을 강화하기 위해 쓴 카드였다.
통화부양 공세에 경기회복세가 짙어지자,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 정상화를 추진했다. 연준이 앞장섰다. 2014년 10월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이듬해 12월 금리인상에 나서 지난해까지 금리를 9차례 올렸다. 그 사이 ECB도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금리인상 시기를 엿보고 있었다.
이 여파로 올 들어 금리 동결을 선언한 연준은 급기야 지난 7월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17~18일에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금리를 더 낮출 전망이다.
ECB는 한 발 더 나갔다. ECB는 지난 12일에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이미 -0.4%인 예금금리(기준금리 일종)를 -0.5%로 낮추고, 11월부터는 양적완화도 재개하기로 했다.
상황이 이러니 금융시장의 투자자들도 몸을 사리는 데 열중할 수밖에 없다. 안전자산인 채권에 투자가 몰려 채권 금리가 급락세를 띠고 있는 이유다. 급격한 투자 수요에 시장이 왜곡되면서 채권시장에서는 투자자가 만기 때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마이너스 금리'가 횡행할 정도가 됐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마이너스 금리로 거래되는 채권이 약 16조 달러어치, 전체의 30%가 넘는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한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총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마이너스 금리가 미국에 도달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6일 주요 중앙은행들의 최근 처지를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시시포스에 빗댔다. 시시포스는 제우스를 속인 죄로 지옥에 떨어져 바위를 산 위로 밀어올리는 벌을 받았다. 밀어올리는 바위가 산꼭대기에 이르면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져 영원히 같은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다.
금융위기로 인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려 놓은 기준금리를 제자리로 올려놓으려다 다시 낮춰야 하는 중앙은행들의 처지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중요한 건 시시포스의 저주가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사이에 왜곡된 시장과 비정상이 된 통화정책은 또 다른 위기가 닥쳤을 때 역풍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