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 못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베이브 류!”
23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콜로라도 로키스의 경기. 다저스 선발투수 류현진이 타석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7년 만에 첫 홈런을 터뜨리자 구장이 발칵 뒤집혔다.
현장 중계진은 류현진의 ‘뒤뚱뒤뚱’ 뛰는 모습을 보고는 ‘도도한 걸음’이라고 표현했고, 생중계를 맡은 캐스터 조 데이비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류현진을 “베이브 류”라고 부르며 “그가 마침내 첫 홈런을 때려냈다”고 소리쳤다. 이는 과거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성(루스)과 발음이 비슷한 류현진의 성 ‘류(Ryu)’를 섞어 만들어낸 현지 표현이다.
류현진은 다저스가 0-1로 뒤진 5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콜로라도 선발투수 안토니오 센자텔라와 맞섰다. 0볼-2스트라이크의 불리한 볼카운트. 다저스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답답하던 순간 류현진의 방망이가 시원하게 돌았다. 시속 154㎞ 속구를 받아쳤고, 타구는 우중간 펜스를 살짝 넘어갔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통산 255번째 타석 만에 그린 비거리 119m짜리 솔로 아치였다.
류현진은 7이닝 동안 볼넷 없이 6피안타(2피홈런) 8탈삼진 3실점으로 호투하며 다저스의 7-4 승리를 이끌어 6경기 만에 시즌 13승(5패)을 달성했다. 시즌 평균자책점은 2.35에서 2.41로 소폭 상승했으나 리그 전체 1위를 지키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날 경기는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경쟁을 벌이고 있는 류현진에게 매우 중요했다. 1회 첫 솔로포를 내준 뒤 눈부신 호투를 이어가던 류현진은 5회 스스로 동점 솔로포로 분위기를 바꿨고, 곧바로 코디 벨린저가 만루 홈런을 때려 센자텔라를 무너뜨렸다. 류현진은 7회 2사 1루에서 불의의 투런포를 얻어맞았다. 샘 힐리어드에게 가운데로 몰린 체인지업 실투였다.
경기를 마친 뒤 류현진은 "홈런 두 개를 빼고는 좋았던 경기였다. 첫 홈런은 어쩔 수 없었지만, 두 번째 홈런은 투구가 아쉬웠다. 실투를 조심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래도 7회까지 던져서 다행“라고 만족했다.
하지만 이날 류현진이 허용한 2개의 피홈런은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류현진이 때려 팀 승리를 견인한 홈런 한 방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기 때문. 다저스다이제스트의 채드 모리야마 기자가 “데이비스가 류현진의 홈런을 보고 마치 월드시리즈에서 끝내기 홈런이 나온 것처럼 반응했다”고 자신의 SNS에 남기자, 데이비스는 “그보다 더 나은 순간이었다”고 재치 있게 받았다.
미국 현지 취재진도 류현진과 동료들에게 가장 먼저 물은 질문이 ‘류현진의 홈런’이었다. 류현진은 “타석에 들어서며 배트에 맞히겠다는 생각만 했다. 낮 경기라서 넘어간 것 같다. 밤 경기였으면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홈런이었다”며 웃은 뒤 “내 홈런이 팀에 좋은 계기를 만들어 대량 득점했다. 내게도 첫 홈런이었고, 그 타석이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기뻐했다.
류현진에게 배트를 빌려준 벨린저도 “류현진이 그동안 홈런을 친 적이 없다는 게 더 놀랍다. 류현진은 훈련할 때 대단한 타격을 한다”며 치켜세운 뒤 “류현진보다 동료들이 더 기뻐했다”고 자신의 일처럼 반겼다. 실제로 류현진은 흥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홈런 직후 더그아웃에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고, 다저스 선수들은 마치 우승한 듯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정규리그 마지막 등판을 남기고 여전히 사이영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류현진이 올해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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