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임박한 가운데 미국이 북한 비핵화 해법으로 '단계적 방법론'을 들고 나와 대화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오는 26일 유엔총회 일정이 종료되면 북·미 대화가 시작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양측 모두 '하노이 회담'의 전철을 밟지 않을 '새 계산법'을 들고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제74회 유엔총회와 9차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얘기하고 있는 안전보장 문제나 제재 해제 문제 등 모든 것에 열린 자세로 협상에 임한다는 것이 미국 측 기본 입장"이라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북·미 간 비핵화 실무협상이 재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최근 북한이 대화 테이블 복귀를 선언하면서 미국을 향해 '새 계산법'을 들고나오라고 밝힌 데 대해서도 "북한이 하노이 회담 이후 강조하고 있는 '안전보장'에 대한 구상이 무엇인지 한·미 간 공조를 통해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선 핵폐기-후 보상)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방법'을 언급한 것이 이번 실무회담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회담 결과는 끝나봐야 알 수 있지만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긍정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며 낙관했다.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상당부분 북한이 요구해온 단계적·동시적 접근법에 다가서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유는 미국의 영변+알파를 골자로 한 '빅딜론'과 북한의 영변 폐기를 시작으로 한 '단계적 방법론'이 충돌하면서 마땅한 타협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와 시설에 대해 '동결' 조치를 취한 뒤 비핵화 로드맵에 따라 단계별로 목표를 밟아가는 방식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 역시 하노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가 한 차례 무산된 만큼 그 이상의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비핵화 조치에 대한 상응카드로는 경제제재 해제보다는 체제안전보장 조치가 유력하다.
한 외교소식통은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연내에 북핵 문제에서 진전을 이뤄 성과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이번 대화에서는 양측이 합의 도출을 위해 보다 유연해진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다만 북·미가 진전된 방안을 내놓더라고 북한 비핵화 정의와 범위, 정치·경제·군사적 상응조치를 둘러싼 진통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강 장관 역시 '하노이 노딜의 원인이 북·미 간 비핵화 정의 차이 때문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비핵화의 정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정의한 비핵화, 우리가 얘기하는 완전한 비핵화, 미국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등이 있다"며 "실무협상에서 어떻게 로드맵을 만들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23일(현지시간·한국시간 24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과 그 다음날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까지 확인한 뒤 실무협상 일정을 미국 측에 통보할 가능성이 크다.
북·미 실무협상은 이달 말에 시작될 가능성이 우세하다. 장소는 앞서 유력하게 거론된 평양이나 판문점보다는 유럽이나 동남아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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