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사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들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원본과 다르다는 주장을 법정에서 제기했다. “원본의 글씨체는 ‘함초롬바탕체’인데 검찰이 제출한 것은 아니다”거나 “페이지 수가 틀리다”는 것이 변호인들의 주장이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믿을 수 없다. 원본과 다른 점이 없는 지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사실상 검찰이 증거를 조작했다는 주장인 셈.
처음에는 변호인의 주장을 마뜩치 않아하던 재판부도 양 전 대법원장 측이 주장을 굽하지 않자 결국 검증요구를 받아들였다.
검증 대상은 무려 40만 페이지. 하지만 변호인 측은 한 장 한 장을 모두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검증이 진행되고 있다.
변호인들이 문제로 삼았던 것은 이른바 ‘임종헌 USB’ 였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자신의 업무와 관련한 자료들을 모아 저장해 둔 것이었는데, 검찰은 이것을 유력한 증거로 보고 있었다.
검증은 두달이 넘게 이어졌고 아직도 미쳐 끝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사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보석으로 석방됐다.
이처럼 '검찰이 증거를 조작한다'는 의심을 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측은 여전히 ‘테블릿PC’가 조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검과 검찰의 증거 대부분이 조작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영포빌딩 지하에서 나왔다는 압수물 중 일부와 검찰이 제출한 녹취록 등에 대해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원래 ‘검찰의 증거 조작’의혹은 이른바 진보진영을 대상으로 한 ‘시국사건’에서 주로 불거졌다. 2012년 ‘왕재산 간첩사건’을 비롯해 2014년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등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이들 사건에서 피고인들은 “내가 작성한 적이 없는 자료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면서 “검찰 혹은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변호인 입회없이 하드디스크를 압수해간 다음에 자신들 마음대로 파일을 끼워 넣는 등 증거를 조작했다는 주장인 셈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뿐만이 아니다. 지난 해 2월에는 ‘압수한 하드디스크의 해시함수 값이 다르다’는 이유로 대법원이 검찰의 증거를 배척하는 판결을 내린 적도 있다.
해시함수 값이란,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사용한 날짜와 시간, 사용된 컴퓨터의 맥주소, 메모리 사용량 등을 기초로 산출된 값으로 컴퓨터를 사용할 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디저털 지문’이라고도 불린다.
해시값이 달라진 증거물이 법정에 제출됐다는 것은 사실상 증거가 조작된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그런 사례가 최근까지도 버젓이 진행됐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다.
의혹이 아니라 실제로 ‘조작’ 드러난 사례도 있다. ‘유호성 간첩 조작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과정에서는 국정원에 파견된 검사가 검찰 수사팀을 엉뚱한 사무실로 안내해 압수수색을 하게 유도하는 사례가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 유시민 작가의 최근 유튜브 방송 발언으로 ‘검찰의 증거조작’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유 작가는 유튜브를 통해 “정경심 교수가 하드디스크를 분리해 복사한 것은 검찰의 증거조작에 대비한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사고 있다.
검찰은 유 작가의 이 발언에 대해 “궤변”이라거나 “막나가자는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 이 같은 의심이 아주 오래된 것이며,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이어져온 것이라는 것이다. 검찰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증거’가 제출된 거의 대부분의 사건에서 이른바 ‘무결성’ ‘동일성’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실제 가능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현재의 논란이 검찰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는데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된다. 적어도 ‘막 나가자는 이야기’가 아라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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