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날 기획] ​‘키오스크 포비아’ 무인기계가 두려운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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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류혜경·조아라·홍승완 기자
입력 2019-09-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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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병원·식당 나날이 확산하지만 노년층에겐 어려워

  • 도와주는 사람 없으면 혼란 가중…"기계보단 사람 편해

  • "작은 글씨에 복잡한 조작법…노인도 배려 좀 해줬으면"

"카드없고, 기계 못만지면 못먹는거 아녀? 먹고싶어도 못먹겠구만"

올해 초 유튜브 스타로 유명한 '박막례 할머니(Korean Grandma)' 채널에는 '막례는 가고싶어도 못가는 식당'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1947년생인 박막례씨가 한 패스트푸드점에 설치된 키오스크(무인주문기계)를 사용하는 과정을 담았다. 사용 전부터 박막례 할머니는 무인 주문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했다. 매장에서도 작은 글씨와 복잡한 사용법 탓에 주문과 사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박 할머니는 "이제는 정말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세상이 온 건 아닌가"라고 한탄했다. 

최근 은행 ATM부터 병원비 수납, 음식 주문 등 생활 전반에 무인시스템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빠르고 편리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키오스크(무인주문기계)가 늘어날 수록 더욱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계층이 있다. 대표적인 이들이 노년층이다. 아주경제는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최근 보편화된 키오스크를 중심으로 노인층의 디지털 소외 현실을 짚어보았다. 

 

지난 9월 20일 낮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탑골공원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한 노인이 키오스크 주문을 포기하고 카운터에서 직원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홍승완 기자 ]


◇키오스크에는 눈길도 안줘···"카드사용도 어려운 판에…"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한 버거킹 매장. '키오스크로 주문하면 빠르게 주문할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가 기계 화면에 크게 적혀있다. 그러나 매장을 찾은 대부분의 노년층은 키오스크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버거킹 종로점에서 주문을 기다리던 김순목씨(75·남)는 왜 키오스크를 이용하지 않는냐는 질문에 "노인들은 카드도 잘 사용하지 않는데 기계로 주문하는 게 쉬울 리 있겠냐"고 되물었다. 김씨는 "음식점에 무인 주문기가 있어도 우리는 곧바로 직원에게 가 주문하는 게 오히려 더 편하다"고 말했다.

탑골공원을 찾은 노인들도 한목소리였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조우창씨(77·남)는 "화면 하나 잘못 누르면 전혀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며 "사람에게 주문하면 바로 물어볼 수 있지만 기계는 그게 안 되니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최근 일부 병원에서는 진료 시스템 간소화를 위해 무인 접수기계를 크게 늘렸다. 기계를 통해 원무과 번호표도 뽑을 수 있고, 진료 접수하기 위해서 수납 먼저 하고 진료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무인기계에 다양한 기능이 들어있다. 그러나 노년층에게 오히려 혼란만 커졌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강남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이덕제씨(69·남·서울 용산구)는 “번호표 출력을 하고 싶지만, 작은 화면 속에서 번호표 뽑는 부분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때문에 병원을 찾은 노인들은 무인 접수기를 건너뛰고 직원이 있는 창구로 직접 접수하러 가는 경우가 여전히 많이 있었다.

무인 접수기 사용을 도와줄 직원이 적은 이른 오전 시간대는 상황이 더 안 좋았다. 일부 노인들은 어떻게 접수를 할지 몰라 무인접수기 앞에서 입력과 취소 버튼만 반복해 누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복례씨(70·여·충북 제천)는 “기계에서 어떤 걸 눌러야 할지 몰라 걱정된다”며 번호표 출력 방법을 묻기도 했다.

무인기계를 사용하지지 않고 창구로 가는 사람들 때문에 번호표를 뽑아 기다리는 사람들은 오히려 대기 시간이 길어지기도 했다. 만난 최민지씨(31·여·서울 중랑구)는 “번호표를 기계로 뽑아야 하는데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창구로 바로 가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어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우체국 은행 단골인 김종태(80대·남·가명)씨는 간단한 업무를 볼 때조차 ATM 기기를 이용하지 않는다. 그는 "기계 화면보다는 종이로 된 통장이, 기계보다는 사람이 편하다"며 "공과금을 내거나 돈을 찾을 때도 반드시 창구 직원을 찾아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카드보다 현금을 직접 내는 것이 좋다"며 휴대폰에 붙은 손자들의 휴대폰 번호를 보여줬다. 현금영수증을 신청하기 위한 번호다.

은행을 찾은 노년층 중에는 한참 ATM을 이리저리 눌러보다 도로 은행창구 직원을 찾아들어가는 이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은행 창구에서 근무하는 행원 이재원(30대·남·가명)씨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경우 ATM기로 할 수 있는 이체, 송금 등 간단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창구를 찾는 경우도 많다"며 "은행 앱(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더 편리하다고 안내해드려도 직접 창구를 찾는 게 더 편하다고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키오스크를 생산하는 정보기술 업계도 무인주문기계가 노년층에게는 유난히 불친절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IT 기업 관계자는 “키오스크나 안내 로봇과 같은 시스템은 대상이 누구든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모든 이들의 눈높이를 맞추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화면 전환 속도를 조절하거나 글씨를 키우는 인터페이스를 고치긴 쉽지만 비용이 추가로 발생해 아마 당장 교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우체국 은행을 찾은 노인들이 창구 접수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사진=류혜경]

◇디지털 정보 격차 여전···"노인들도 배려 좀 해달라" 

디지털정보 격차는 나날이 빨라지는 정보화와 함께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도 매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2018년 디지털정보격차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교통정보 및 지도, 제품구매 및 예약·예매, 금융거래, 행정서비스 등을 포함한 생활 서비스 분야에서 디지털 서비스 이용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인터넷 이용자 기준, 장노년층(만 55세 이상)의 ‘생활 서비스 이용률’은 69.8%로 일반국민 84.2%보다 14.4%포인트 낮았다. 일반국민의 ‘생활 서비스 이용률’을 100으로 가정할 때, 일반국민 대비 장노년의 ‘생활 서비스 이용률’은 일반국민의 82.9% 수준인 것이다.  

특히 정부 교통정보 및 지도의 이용률은 63.8%로 비교적 높았지만,  금융거래’(38.4%), 제품구매(쇼핑) 및 예약·예매’(34.6%), 행정(전자정부)서비스(16.4%), 생활 복지서비스(12.5%) 등 분야에서 장노년층의 디지털 서비스 이용률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자료에서는 키오스크의 사용률이 따로 조사되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노년층들에게 무인기계는 디지털 소외를 부추기는 또하나의 장벽으로 자리잡은 듯 보였다.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김연실(81·여)씨는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들한테는 이런 무인기계가 너무 낯설고 어렵다. 주변에는 얼씬도 안한다. 글을 잘 못 읽는 사람도 있고 읽어도 속도가 느린데 겁나서 그런 걸 어떻게 하나. 노인들도 배려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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