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나 분자 크기 단위 이하의 세계를 다루는 역학, '양자물리학'은 극 중 클럽 사장 찬우의 신념이 된다. 원자핵과 원자 사이 파동이 일어난다며 "생각이 곧 현실이 된다"고 주장하는 그는 간절함이 의지를 만들고 그 의자가 꿈을, 현실을 이뤄낸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찬우의 믿음은 마약 사건에 연루돼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자신과 클럽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양자물리학'을 되새긴다. 그의 긍정적인 마음과 간절함은 우주의 기운을 뒤바꾸고 반전의 찬스를 쥐게 된다.
영화 '양자물리학'(감독 이성태)은 배우 박해수(38)와 일정 부문 닮은 데가 있다.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는 찬우의 주장은 곧 박해수의 연기철학과도 닿아있기 때문이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더니. 연기에 관한 애정과 간절함은 그를 무명 배우에서 스크린 주연배우로 바꾸어놓았다.
지난 25일 개봉한 영화 '양자물리학'은 박해수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준 작품이다. 그의 첫 스크린 데뷔작이자 오래 연극계에서 활약했던 이들과 빛나는 케미스트리를 끌어낼 수 있었으니까.
다음은 아주경제와 만나 인터뷰를 가진 박해수의 일문일답이다
스크린 첫 주연작, '양자물리학'을 세상에 내놓았다. 기분이 어떤가?
- 첫 스크린 주연작이라 긴장 100배다. 부담감도 컸다. 그러나 개봉한 이상 제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은 적어졌다. 진정성으로 만드는 게 중요했고 이제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날씨 같다고 할까? 이미 저의 손을 떠났고 제가 어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
완성작을 보니 어땠나?
- 큰 화면으로 저를 보니 객관적으로 볼 수 없더라. 다만 인지도는 떨어지더라도 진정성을 가진 배우들이 시너지를 만드는 게 좋았다. 아마 이 에너지 파동이 객석에도 전달될 거라 믿는다. 그 믿음으로 (영화를) 찍었고 그게 보였다.
영화 '양자물리학'은 박해수의 마음을 어떻게 흔들었나?
- 시나리오를 읽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도 없이 직진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달리더라. 감독님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고 찬우와 교류하고 살을 붙이며 작품에 대한 매력이 커졌다.
"생각이 곧 현실이 된다"는 건 배우 박해수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인 거 같다. 경험을 반추해봤을 때 어떤가. 같은 경험이 있나?
- '양자물리학'이 그런 거 같다. '주연이 되고 싶다'고 강하게 바랐다기보다는 함께 공연한 배우들과 무대 인사를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철수 배우가 대표적인 예일 거 같은데. 오래 연극/뮤지컬을 함께 한 거로 안다. 극 중 상수와 나누는 대화들이 실제 두 사람과 겹쳐 보였다
- (임)철수와 저는 십년지기 소울메이트다. 극 중 우리가 나누는 대사는 다 진심이었다. 상수와 찬우의 관계는 실제 철수와 저의 관계기도 하다. 연극 팬들은 저와 철수의 관계를 다 안다. 어떤 분은 스크린에서 보고 울컥해 눈물을 흘렸다고도 하더라. 우리 둘이 만든 에너지가 영화 속에서도 보일 거라 믿었다.
극 중 상수와 찬우는 남달리 돈독하지 않나. 오래 쌓아온 서사가 있으니 실제 배우 캐스팅도 중요할 수밖에 없었는데
- 감독님께 임철수 배우를 추천하긴 했지만 저의 입김이 작용할 만큼 영향력이 있지는 않다. 마침 이 영화에 (임)철수가 오디션을 봤고, 좋은 기량을 발휘했다고 들었다. 감독님도 저와 철수가 이렇게까지 친한 건 모르셨을 거다.
찬우는 유흥계 화타다. 박해수는 찬우를 어떻게 연구하고 접근했나?
- 찬우는 유흥계 화타지만 직업적인 것보다 인물 중심으로 연구했다. 그는 말발 하나로 이 자리까지 왔다. 능수능한하면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내고 싶었고, 사기꾼처럼 보이지 않아야 했다. 감독님과 계속해서 대화를 주고받으며 찬우의 이미지를 쌓아갔다.
극 중 찬우가 정의로운 인물, 영웅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그렇게 비칠 거로 생각지 못했다. 선하거나 정의로운 인물은 아니다. 순간순간 살아남으려고 발악하는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그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마냥 정의로웠으리라 생각지 않았으니까. 따지고 들면 사채업자 정갑택(김응수 분)의 투자를 받아 꿈을 이루고 욕망을 이루지 않았나. 결론적으로는 선하고 정의로운 모습이 보였지만 그 안에 있는 핵심은 생존 본능이다.
곰살맞고 활기차지만 문득문득 찬우의 외로움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 오프닝에서 홀로 노래하는 장면이라거나, 아무도 없는 바에서 '혼술' 한다거나
- 찬우의 과거를 반영했다. 그는 늘 '살려고' 노력했다. 찬우는 말이 매우 많은데 왜 그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모두 과거에 드러나 있다고 생각했다.
인물의 과거, 전사 등은 따로 구상한 건가?
- 찬우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혼자 묻고, 혼자 답하는 식이다. 찬우의 입장에서 일기를 쓰기도 했다. 재혁이(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보다 재미있었다. 찬우는 말이 많으니까. 하하하.
'슬기로운 감빵생활' 이후 박해수의 행보에 모든 이목이 집중됐었다. 고민도 많았을 거로 생각한다
- 방향성을 따로 정하진 않았다. 늘 하던 것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는 좋은 작품, 좋은 캐릭터에 관해 생각한다. 누군가는 제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데 어디에 있느냐'고 했다. 제가 연극계로 돌아간 줄 아시는 분들도 있었다. 반대로 연극 팬들은 '도대체 어디 갔느냐'며 '돌아오라'고 했다. 저를 필요로 하는 작품에 몰두하고 있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 이후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기회가 많아졌을 뿐이다.
마음이 급해지거나 흔들리지는 않았나?
- 흔들린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다. 그런데 한편으로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라고 하는데 노는 어떻게 저어야 하나 싶다. 계속해서 노는 젓고 있는데. '잘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제가 가는 속도가 느린 건 아니다. 보여지지 않았을 뿐이다.
흔들릴 때 박해수를 다잡을 수 있도록 돕는 건 무엇인가?
- 주변 지인들이다. 저의 멘토들이 있다. 철수를 비롯해 이희준 형, 진선규 형, 이석준 선배님 등 좋은 분들이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혼자 있으면 비틀거리고 흔들리는데 주변에서 잘 잡아주시는 거 같다.
'배우를 해야겠다'라는 확신을 가진 때는 언제인가?
- 배우로서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겠다'라는 믿음이다. 뮤지컬 '사춘기'에 출연하고 있을 때, 한 고등학생이 공연을 보며 엉엉 우는 걸 보았다. 너무 울기에 무대서 내려가 위로해주었는데 그 친구가 "삶을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공연을 보니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더라. 그 말이 제가 연극을 하는 이유가 됐다.
배우에게 그보다 깊은 감동이 있을까 싶다
- 그랬다. 이후 7년 뒤 그 친구를 한 번 더 만났다. 연극 '유도소년'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객석에 낯익은 이를 보았는데 '사춘기' 때 만났던 그 친구였다. 직장생활하고 있다며 '공연도 안 보고 지냈는데 사회생활이 힘들어 다시 공연장을 찾았다'더라. 제게 '고맙다'라고 하는데 7년 동안 잘 만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경험이 작품 선택으로 이어질 거 같다. 소비되는 작품보다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에 마음이 쓰일 거 같은데
- 그럴 수 있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작품마다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
- 내년 계획은 아직 잘 모른다. 회사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들리지만 결정한 건 없다. '양자물리학' 홍보 활동과 드라마 '키마이라' 촬영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 작품으로 얻고 싶은 평이 있나?
- '저 배우 궁금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지켜보고 싶다는 이야기만큼 배우에게 매력적인 말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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