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일이었던 1일 홍콩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중 시위에서 한 미성년자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중상을 입은 사건이 홍콩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모습이다. 홍콩 경찰은 시위 진압에 실탄을 사용한 게 정당방위였다고 해명했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홍콩 경찰의 총격 사건을 계기로 시위가 다시 격해지면서 오는 11월 지방선거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일 밤 늦게까지 홍콩 시위대는 거리 곳곳서 과격행위를 서슴지 않으며 홍콩 경찰의 폭력 행위에 물러서지 않겠다며 강력히 맞섰다고 홍콩 현지 언론인 명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3일 보도했다.
이날 저녁 취안완, 사틴, 코즈웨이베이, 삼수이포, 웡타이신, 층콴오, 툰먼, 타이포 등 홍콩 시내 최소 8개 지역에서 시위대는 집회를 열었다. 홍콩 경찰이 실탄으로 시위자를 쐈던 현장 인근의 취안완 지역의 한 유원지는 오후 8시경 이미 시위대로 가득 찼다. "우리 아이들을 쏘지마세요", "피로 빚을 갚겠다" 등의 구호를 외친 시위대는 홍콩 경찰의 폭력행위를 규탄했다.
성 난 시위대는 곳곳의 지하철 역사 회전 개찰구를 훼손하고, 벽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렸다. 소화전을 열고 호스로 물을 뿌려 일부 지하철역은 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이에 홍콩 지하철 당국은 승객과 직원의 안전을 위해 밤 11시30분 일부 지하철역을 폐쇄했다.
이날 오후에도 홍콩 시내 곳곳에선 경찰의 폭력행위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대 수백명이 홍콩 중심가인 센트럴 차터가든 인근 도로를 점거해 홍콩 경찰과 격렬한 대치를 벌였다. 수업거부에 참여한 학생 수백명과 교직원들도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미성년자에게 실탄을 사용한 홍콩 경찰의 폭력행위를 규탄했다. 직장인들도 점심식사 시간을 이용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에 동참했을 정도다.
홍콩인들을 분노케 한 건 1일 중국 국경절에 맞서 벌인 반중 시위에서 경찰의 총에 맞은 18세 고교생 쩡즈젠이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다행히 쩡즈젠은 네 시간여에 걸친 총탄 적출 수술 끝에 생명은 위독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경찰은 경찰이 안전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지만 홍콩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개한 한 홍콩 고등학생은 "경찰이 고무탄이나 후추가루를 쏠 수는 있다. 하지만 어째서 실탄을 사용했는지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홍콩 경찰의 시위대 진압강도가 세지며 과격 진압 우려가 확산된 게 사실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1일 하루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만 1400여발이다. 6월 초 홍콩 시위가 본격적으로 발발한 이후 발사된 최루탄의 절반 이상에 달하는 숫자다.
홍콩 야당 소속인 앨빈 융 의원은 블룸버그 통신에서 "당국은 국경절(10월 1일)을 계기로 시위가 가라앉길 바랐을 테지만 실패했다"며 "학생이 총상을 당한 게 시위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홍콩 시위대는 오는 11월 홍콩 구의회 선거 때까지 시위를 계속해서 추진해 나갈 동력을 얻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나날이 격해지는 시위에 홍콩 경제는 수렁에 빠졌다. 1일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올해 홍콩 지역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2%까지 낮췄다. 앞서 7월 2.2%에서 2% 포인트를 낮춘 것이다.
정치적 불안에 홍콩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국경절 연휴에도 홍콩을 찾는 관광객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홍콩 소매업계는 연일 신음을 앓고 있다.
2일 홍콩 통계처에 따르면 지난 8월 홍콩 소매판매액이 294억 홍콩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7월 감소폭인 11.5%에서 더 확대된 것으로, 시장이 예상했던 14% 감소보다 훨씬 더 악화한 것이다. 특히 액세서리, 시계, 고가선물 등 소비 낙폭이 47.4%에 달했다. 홍콩 명보는 199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소비침체 상황은 앞으로 더 악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소비 특수인 10월 국경절 연휴 홍콩을 찾는 관광객 발길이 뚝 끊기면서다. 실제로 국경절 연휴에도 이어진 시위에 대다수 상가들은 문을 꽁꽁 닫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홍콩 여행산업협회는 국경절 연휴기간 홍콩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86%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홍콩에서 자금 이탈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홍콩 사태에 따른 불안으로 부자들이 홍콩내 은행계좌에 예치했던 자금을 싱가포르로 옮기고 있다며 지난 6~8월 홍콩에서 약 40억 달러 예금이 싱가포르로 유출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홍콩 금융관리국에 따르면 8월 홍콩 금융권에 예치된 예금이 전달보다 1110억 홍콩달러어치가 줄었다. 약 1.6% 줄어든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싱가포르 은행 외환예금은 14% 늘었다. 특히 외국인의 싱가포르 은행 예금액이 2개월 연속 5% 남짓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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