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경찰이 국경절을 앞두고 무력 사용의 강도를 높인 시위 진압 매뉴얼을 급조했다.
최근 시위에 참가한 고등학생이 가슴에 총상을 입는 등의 유혈 사태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3일 홍콩 명보 등에 따르면 홍콩 경무처는 경찰 업무 수칙을 개정하고 관련 매뉴얼을 일선 경찰관들에게 배포했다.
지난 2016년 이후 3년 만에 개정된 매뉴얼이다.
매뉴얼 29조의 무력 사용 단계 수정안을 살펴보면 경찰이 무력을 사용할 수 상황이 6단계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이자 총기 사용이 가능한 '치명적 무력 공격'에 대한 정의가 '의도적으로 타인의 사망 및 심각한 부상을 야기하는 구타 행위'에서 '타인의 사망 및 심각한 부상을 야기하거나 상당한 정도로 야기할 수 있는 구타 행위'로 변경됐다.
의도적인 구타가 아니더라도 경찰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총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2016년 매뉴얼에는 총기 사용이 '권고 사항'으로 명시돼 있지만 이번에는 '선택 사항'으로 바뀌었다.
실제 중국의 건국 70주년 기념일이었던 지난 1일 국경절 때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한 18세 고등학생이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았는데 별다른 경고 조치 없이 사격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스테판 로(盧偉聰) 홍콩 경무처장은 "시위대가 쇠파이프와 벽돌, 화염병을 들고 폭력적으로 공격해 경찰관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강변했다.
새 매뉴얼은 경찰의 무력 사용 수단도 확대했다.
치명적 공격보다 한 단계 낮은 2단계 '폭력 공격' 상황의 경우 경찰봉 정도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개정된 매뉴얼은 경찰봉은 물론 고무탄과 빈백건(bean bag gun·알갱이가 든 주머니탄), 물대포 등을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이들을 저살상력 무기로 분류해 과잉 진압 도중 사고가 발생해도 해당 경찰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문을 열어놨다. 또 최루탄과 후추탄 등 최루제(催淚劑)도 사용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이번 매뉴얼이 배포된 시점도 지난달 30일로 공교롭다.
홍콩 시위대가 국경절을 앞두고 대규모 '애도 시위'를 예고한 상황에서 매뉴얼 배포가 급작스럽게 이뤄진 셈이다.
국경절 기간 중 벌어질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되는데, 중국 중앙정부가 입김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경찰이 총기 등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지면서 향후 홍콩 시위 사태는 더욱 격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위대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한층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의 인권보호 민간단체인 '민권관찰(民權觀察)' 측은 "무력 등급이 너무 포괄적이라 과잉 사용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졌다"며 "폭력 사태가 벌어지면 모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오판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중 성향의 린줘팅(林卓廷) 홍콩 입법회 의원은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해석의 폭이 너무 넓어졌다"며 "고무탄과 물대포 등을 저살상력 무기로 분류한 것도 경찰관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전달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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