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4일 예비접촉에 이어 5일 본격적인 비핵화 실무협상에 돌입한다. 북·미간 실무협상 의제가 완전히 조율되지 않은데다 양측 모두 군사적 긴장을 최고로 끌어올린 상황에서 열리는 협상인 만큼 이번 만남의 결과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북·미 모두 이번 실무협상이 3차 북·미정상회담으로 가기 위한 길목에 서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은 만큼 협상에 대한 의지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 북·미 협상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북·미 모두 비핵화 성과에 대한 갈증이 강한 만큼 이번 실무협상을 제대로 치르겠다는 뜻이 확고하다"며 "온도차는 있지만 어느 쪽도 협상을 쉽사리 깨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3일 외교가에 따르면 북한 실무협상 대표단을 이끄는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이날 오후 1시50분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을 출발해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향하는 중국항공(CA911) 탑승자 명단에 올랐다.
이날 중국에서 목격된 북측 협상단은 김 대사와 함께 미국 담당 국장이었던 권정근, 지난 2일 이 직책에 새로 임명된 조철수 등을 포함해 4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미국 협상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도 조만간 스톡홀름으로 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 실무협상의 관건은 양측이 지난 2월 '하노이 회담' 때보다 비핵화 접근방식과 상응조치에서 얼마나 진전된 방안을 가져오느냐다.
북한은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주요 안보리 제재 해제를 맞바꾸려 했지만, 미국이 '영변+α'를 요구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아울러 미국은 비핵화의 정의와 최종상태, 비핵화 로드맵 등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핵 프로그램을 동결할 것을 요구해 북한과 뚜렷한 입장차를 보였다.
앞서 북한은 실무협상 임박 직전에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 나오지 않으면 협상이 파국으로 끝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 9월 "조미(북미) 쌍방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으며 실현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며 "우리의 제도안전을 불안하게 하고 발전을 방해하는 위협과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 없이 제거될 때 비핵화 논의도 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종합할 때 북측이 주장하는 새로운 계산법이란 '단계적 합의'와 '안전보장'을 의미한다.
미국은 단계적 합의와 제재 해제에 있어선 아직까지 상당히 엄격하다. 그러나 연락사무소 개설, 종전선언 등 대북안전보장 조치에 대해선 적극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지난달 인터뷰를 통해 "모든 나라는 스스로 방어할 주권적 권리를 가진다"면서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경우 적극적인 안전보장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지난 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번 북·미 실무협상에서는 북한이 원하는 안전보장 문제도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미국 내에서는 비핵화 조치에 따라 일정 기간 제재를 유예하되 북한이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제재를 원상복구 하는 '스냅백'(snapback·제재 원상복구) 방식도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는 2일(현지시간) "미국이 '영변+α'를 대가로 북한의 핵심 수출품목인 석탄·섬유 수출 제재를 36개월간 보류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지 않는 대신 금강산 관광 등을 재개하는 방안도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관계자는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스스로 설정한 연말이라는 시한이,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평화협정을 중단시킴으로써 이제 남은 것은 북한뿐이라는 외교정책의 딜레마에 봉착했다"면서 "시간적인 제약이 협상 타결에 긍정적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이번 실무협상이 장기화되면서 이달 말까지도 정상회담 날짜를 잡지 못하면 김정은과 트럼프의 시계는 내년 미 대선 이후에 맞춰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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