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계에 ‘3저(低) 현상’의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올 시즌이 끝난 한국 프로야구에도 ‘3저 현상’이 나타나 관심을 끌고 있다. 먼저 경제계.
“중앙은행이 원하면 통화정책을 통해 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 이제는 어려워졌다. ‘블랙홀 통화경제학’이라 부르든, ‘일본화(Japanification)’라 부르든 중앙은행은 이런 현상을 걱정해야 한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최근 트위터에 ‘유동성 함정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며 이렇게 말했다. 미 재무장관을 역임한 그는 올 초 “세계적 차원의 경기 침체가 도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머스가 말한 ‘블랙홀 통화 경제학’은 금리가 제로 수준에 머무르며 출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는 “일본과 유럽에서 한 세대 이상 채권 수익률이 제로 또는 마이너스 수준에서 머물 것이란 전망이 확고한 인식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를 살리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며 돈줄을 풀어도 돈은 돌지 않는다. 불확실한 경기 전망에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꺼린 채 돈을 쌓아두기 때문이다. 경제의 활력은 떨어지고 성장도 둔화되는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것. 경기 둔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격적인 통화 정책을 펼쳤지만 국채 금리는 더욱 하락하는 악순환으로 ‘저성장·저금리·저물가’의 3저 현상에 빠진 일본이 대표적인 예다.
곳곳에서 경고음이 켜지는 한국 경제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올 1분기 한국 경제는 역성장(-0.4%)했다. 기저효과 등으로 2분기 성장률은 1%를 기록했지만 저성장이란 꼬리표를 떼기는 어렵다.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는 금리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기준금리를 연 1.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연내 추가 인하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린다. 지난 9월 -0.4%를 기록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동기 대비)은 두달 연속 마이너스에 머물고 있다. 일본을 닮아가는 3저 현상에 경제 전문가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출범 37년째를 맞이하는 프로야구에도 3저 현상이 처음 나타났다. 야구판의 3저는 ‘저관중-저재미-저홈런’이다. 먼저 관중. 올시즌 관중은 729만명으로 지난해보다 약 10% 떨어졌다. 감소의 원인은, 전반기 막판인 7월초경 일찌감치 5강 윤곽이 드러나 관전 재미가 없어진 탓이다. 거기에다 관중을 몰고 다니는 롯데, 기아, 한화의 하위권 추락으로 ‘엎친데 덮친격’이 됐다.
성적 못지않게 관중 감소에 직격탄을 날린 건 경기 수준의 하락이다. 1994년 이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ML) 관전은 야구 마니아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한양대 2년을 마친 박찬호(46)가 1994년초 LA다저스에 입단하면서 ‘ML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올 시즌은 LA다저스 류현진(32)과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37)의 맹활약으로 ML 경기를 보는 팬들이 큰폭으로 증가했다. ML팬들은 20~60대까지 폭넓게 분포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파워넘치고 정교한 투타와 수비를 갖춘 ML 경기를 자주 보면서 국내 경기를 서서히 외면하고 있다.
4구와 실책의 남발, 에이스급 등판이 아닌데도 1회부터 시도하는 번트, 외야수가 다이렉트 홈송구는 커녕 커트맨(내야수)에게 조차 부정확하게 던지는 중계 플레이, 어이없는 주루사 등은 ‘관전 재미’를 갉아먹기에 충분했다. 최근 만난 7명의 30대는 야구가 재미없어 야구장에 가본지 오래되며 TV 중계조차 잘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홈런이 줄어든 것도 관중 감소를 부채질했다. 2016년 10개 구단 팀타율이 0.290으로 치솟고 지난해는 ‘꿈의 타율’이라는 3할을 쳐야 타격 랭킹 30위에 턱걸이할 정도로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이 심했다.
이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공인구 반발계수를 낮췄는데 이로인해 경기당 홈런 개수는 지난해 2.44개에서 올시즌 1.41개로 크게 낮아졌다. 하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홈런수가 적어진 게 불만이다. 홈런은 ‘야구의 꽃’인데 홈런수가 적어 승부를 일시에 뒤집는 ‘반전(反轉)의 재미’가 사라진 탓이다. 관중이 원하는 야구를 할것이냐, 정통야구를 고수할것이냐. 프로야구의 중앙은행격인 KBO가 올 겨울 스토브리그때 크게 고민해야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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