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에는 20세기 제국의 망령이 다시 배회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몽, 인류운명공동체, 대동아공영권 등 구시대적 '제국몽'이 꿈틀거리고 있다. 민족주의에 매몰된 자국 중심의 우월주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아니다.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가 비난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군사, 경제력 같은 하드파워형 제국은 지식과 문화가 사회구성원들의 자발적 공감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형 제국을 뛰어넘지 못한다. 네트워크형 제국은 개방된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담론을 이끌어내고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유주의적 공동체를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지구촌 네트워크 사회 구축의 장애물이다. 미·중 무역전쟁도 결국은 하드파워형 제국 구축 싸움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의 충돌은 궁극적으로 주변국가들에 힘든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이와 관련, 우리에게는 미국과 중국에 종속화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하드파워형 군사 제국이 아니라 소프트파워와 네트워크형 제국이 다가오는 날을 기대해 본다.
중국몽은 중화민족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세계인이 바라는 호혜적 제국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비판의 자유’가 보장되는 개방된 중국사회가 전제되어야 한다. 비판의 자유가 가져오는 사회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오랜 기간 축적해야 중국사회가 건강해지고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감의 네트워크도 확대될 것이다. 섣부른 판단인지는 모르겠지만 근래에 중국 내부에서 전개되는 문화보수주의적 제국화 담론을 곰곰이 관찰 해보면 중화주의에 매몰된 정제되지 못한 사유가 지배적이다. 현재 중국은 오로지 미국의 패권주의에 저항하는 동아시아 지역 강대국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오히려 문화적인 측면보다 정치적인 제국을 형성하려는 욕망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국의 꿈에 젖은 중국 민족은 세계사의 흐름이 탈제국-다중심 네트워크 형성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깊이 성찰해야 하며, 하드파워의 부상과 거대한 제국이념의 건설보다는 지식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감형 네트워크를 확산시키는 개혁을 해야 한다. 즉, 무한한 소통과 비판의 자유로써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촉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팍스 시니카 시대가 팍스 아메리카 시대보다 업그레이드된, 세계인의 보편적 희망에 부응하는 중국만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단지 과거 냉전시대 군사력에 바탕을 둔 러시아 수준의 강대국으로 전락하여 그 찬란한 중국 문화의 빛을 상실할 것이다.
중국이 추구하는 제국몽은 세계의 보편성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새롭고 유익한 공공재를 제공할 수 있는 실천적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중국이 점점 국제사회에서 규칙제정자로서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굴기하는 중국이 자국의 권리만을 주장하고 그에 따른 의무를 등한시하는 한 중국몽의 실현은 요원할 것이다. 운명공동체는 변화의 장기축적과정을 거쳐 순리적으로 형성되는 것이지, 단순히 거대한 제국이념과 건설프로젝트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주변국들이 제국의 탄생을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지도국가의 역량을 배양해야 하며, 더 나아가 세계인들이 경제력과 군사력 이외의 사상과 문화에서도 모범이 되고, 중국의 품격에 공감하고 박수를 보낼 때 중국은 명실상부하게 세계 제국의 위상을 확립할 수 있다. 중국의 꿈이 현실이 된다면 한반도의 문제도 순리적으로 풀릴 것이다. 중국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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