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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보기술(IT)산업의 중심 실리콘밸리는 태평양과 맞닿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간쯤에 있다. 실리콘밸리는 행정구역 지명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남쪽 팰러앨토, 마운틴뷰, 쿠퍼티노, 새너제이 일대 80㎢를 말한다. 대략 제주도 2배 크기다.
2006~2007년 실리콘밸리의 산파(産婆)이자 요람인 스탠퍼드 대학 연수 기간 동안 이 지역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애플, 인텔, 구글, 오라클, 시스코, 휴렛팩커드 등 ‘IT공룡’, 실리콘밸리 터줏대감들이 세계 IT시장을 지배할 때였다. 페이스북, 테슬라, 우버, 에어비앤비 등 ‘잠룡’들이 잉태됐거나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창의적인 사고, 혁신의 행동이 지배하는 실리콘밸리에는 인종·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서로 환한 미소로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다양성이 어우러졌다.
잠시 들렀던 출장을 제외하고 12년 만인 이달 초 다시 찾은 실리콘밸리는 그 다양성이 더욱 진화한 가운데, 미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를 체감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공유경제, 자율주행차, 가상·증강현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클라우드, 바이오 등 혁신산업이 한창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실리콘밸리에 유입된 벤처캐피털 투자액은 249억 달러(약 30조원)로 미국 전체의 38.9%다. 최근 10년간 인구는 20만명 늘어났다.
실리콘밸리 1인당 소득은 8만 달러, 거의 1억원에 육박하고 가구당 실질 평균소득은 2억원가량 된다. 벤처투자 자본과 함께 사람도 물밀듯 밀려와 이 지역 남북을 잇는 101, 280 고속도로는 새벽 5시, 오후 2시부터 각각 출·퇴근 교통정체가 시작된다. 고(故)스티브 잡스가 살았던 팰러앨토 주택가 허름한 방 3개짜리 주택이 50억~70억원, 방 1개짜리 아파트 월세가 월 300만~400만원인데도 부동산 가격은 계속 치솟는다.
지난 2일 오후 5시 30분 평일 문을 닫기 직전임에도 쿠퍼티노 애플 캠퍼스(본사) 입구 매장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수십년째 활활 불타고 있는 실리콘밸리 경제 호황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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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시 애플 캠퍼스 입구 애플 매장을 가득 메운 소비자들. 사진=이승재 기자
A씨는 “실리콘밸리는 IT에서 ICT(정보통신기술) 융합산업으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진보하는 인류를 위한 새로운 기술혁명·서비스혁신을 꿈꾸는 착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미국 각지는 물론 전 세계에서 이곳으로 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름, 차이를 인정한다. 내가 어릴 때 학교 도시락에 김치를 싸가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이 학교에 김치를 가져가면 다들 좋아한다. 초등학교 점심시간에는 세계 각국의 음식들이 서로 경쟁한다. 이곳 학교들은 한국으로 따지면 모두 다 국제학교다. 이렇게 다양성을 당연히 여기는 게 실리콘밸리 경제의 힘”이라고 말했다.
스탠퍼드 대학 교환교수로 2년째 일하는 있는 박모 연세대 교수(49) 는 “실리콘밸리는 학교든, 회사든 어디를 가도 한국인·중국인·인도인이 미국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일한다. 인종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듯하다. 그저 동료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 민족, 같은 국민인데도 진영에 따라 이렇게 갈가리 찢어져 있는지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10월 초 ‘조국 사태’가 한창일 때 들은 말이다.
10월 15일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사퇴한 다음 날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가 제11차 한·중고위언론인포럼에 참석했다. <중국이 이긴다>의 저자인 정유신 서강대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중국은 법, 문화는 물론 언어까지 잘 통하지 않던 서로 다른 31개의 성(省)을 인터넷·모바일로 하나로 묶어 31배의 시장으로 키웠다”고 밝혔다. 다름을 엮어 경제 번영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다양성의 인정이 가져오는 경제, 실리콘밸리는 베이징으로 이어졌다.
정 교수의 말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확인한 건 바로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매일 동틀 무렵 열리는 국기(오성홍기) 게양식에서였다. 16일 오전 6시 30분 정각, 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톈안먼 광장에 설치한 붉은 파도 모양의 대형 조형물 사이에 중국인민해방군이 성대하고 장중한 국기게양식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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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6시30분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열린 국기(오성홍기)게양식을 보러온 인파. 사진=이승재 기자]
이날 열린 언론인포럼의 화두는 구동존이(求同存異·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였다. 양국 언론인들은 공히 “중국과 한국은 오랜 역사 문명교류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와 구동존이를 통해 상호 발전해왔다. 앞으로도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은 2022년 동계올림픽을 개최(동계·하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하는 도시는 베이징이 최초)하는데, 그 조직위원회가 위치한 곳 역시 구동존이의 사례였다. 오래된 철강공장(수도철강단지)을 최첨단 사무실로 재탄생시킨 곳이었다. 대형 사일로를 허물지 않고 그 안에 건물을 지어 조직위 사무실과 관련 기업들을 유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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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철강공장 사일로를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등이 입주한 최첨단 친환경 사무실로 개조한 빌딩. 사진=이승재 기자]
실리콘밸리와 베이징, 2019년 10월 잇따라 방문한 두 도시에서 다양성의 인정, 다름과 차이를 서로 껴안고 함께 잘 사는 경제, 사회를 봤다. '조국 사태' 전후 두 도시에서 뼈저리게 실감한 구동존이, 이제 다시 힘을 모아 펄펄 뛰는 대한민국 경제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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