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양자 인공지능 연구팀과 존 마르티니스 미국 UC샌타바버라 대학 교수가 지난 23일(현지시간) 53 큐비트(양자비트)를 십자가 모양으로 연결해 만든 양자컴퓨터 칩셋 '시커모어'로 '양자우위(Quantum supremacy)'를 달성했다는 논문을 공개한 이후 양자컴퓨터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구글은 "기존 슈퍼컴퓨터로 1만년이 걸려야 풀 수 있는 문제를 시커모어를 활용하면 3분20초(200초) 만에 풀 수 있다"며 "양자컴퓨터의 성능이 기존 슈퍼컴퓨터를 뛰어넘는 양자우위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양자컴퓨터는 0과 1이라는 분명한 데이터를 보유한 기존 컴퓨터와 달리 관측 전까지 양자가 지닌 정보를 특정할 수 없는 양자역학의 특성을 이용한 차세대 컴퓨터다. 기존 컴퓨터는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가 많고 문제가 복잡할수록 더 높은 성능과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큐비트를 많이 연결할수록 막대한 정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기존 컴퓨터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복잡한 계산이나 기상·사회 현상 등을 분석할 수 있다. 진정한 인공지능(AI) 구현, 난치병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암호해독 등에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큐비트는 여러 개의 양자가 관련성을 지니도록 묶은 후 이를 재편성한 정보단위다.
양자우위는 양자컴퓨터의 성능이 기존 슈퍼컴퓨터를 압도하는 시기를 뜻한다. 양자우위란 용어를 제창한 존 프레스킬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 물리학부 교수는 지난 2011년 50 큐비트 양자컴퓨터가 구현되면 양자우위가 달성될 것이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한 바 있다.
미국 과학계는 이번 구글의 양자우위 달성을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에 비유한다. 상용화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양자컴퓨터가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개념임을 입증했다는 평가다. 스콧 애런슨 미국 텍사스대학 교수는 "라이트 형제의 첫 번째 비행기는 실제로 사용가능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했다. 구글의 양자컴퓨터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 과학계를 바라보는 한국 연구자들의 반응은 착잡할 뿐이다.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굴지의 IT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 정부 등의 지원을 받아 양자컴퓨터를 개발해 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연구자들과 달리 한국 양자컴퓨터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과학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 양자컴퓨터 기술 수준은 미국과 비교해 7~8년 정도 뒤처져 있다. 연구 인력도, 지원 예산 규모도 많이 부족하다. 일례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양자기술연구단 양자광학연구실에서 개발 중인 양자컴퓨터는 아직 5 큐비트 이하에 머무르고 있다. 2023년까지 5 큐비트 양자컴퓨터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양자의 불확실성 때문에 연결해야 하는 큐비트 수가 늘어날수록 더 높은 기술 수준을 요구한다. 미국 IBM과 캐나다 디웨이브가 상용화한 기존 컴퓨터 하드웨어를 활용한 소프트웨어 형태의 양자컴퓨터 환경도 아직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ETRI 실험실에서 테스트 중이다.
양자컴퓨터를 연구하는 인력의 경우 연구책임자급 인력은 40명(하드웨어 30명, 소프트웨어 10명), 석박사급 연구원은 200명 정도다. 대부분의 박사급 인력은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몰려있고, 일부는 민간 대학에서 연구 중이다. 민간 기업의 경우 삼성종합기술원, 삼성SDS 양자컴퓨터랩에서 관련 기술을 연구 중이다. 내년에는 LG전자, LG화학, 현대자동차에 관련 연구팀이 신설될 예정이다.
현재 양자컴퓨터용 알고리즘을 연구 중인 이준구 카이스트(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양자정보 및 통신연구실 교수는 "한국은 연구에 대한 투자가 매우 보수적이다. 때문에 양자컴퓨터와 같은 새로운 분야의 기술을 개발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양자컴퓨터와 같은 미래 기술은 향후 20~30년을 내다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부와 기업의 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2~3년 내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연구 환경이 척박하다 보니 양자컴퓨터 개발에 뜻을 두고 연구에 매진할 인력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자컴퓨터 개발에 따르는 실무적 어려움도 많다. 이 교수는 양자컴퓨터 알고리즘 개발에 필요한 양자컴퓨터 하드웨어 수급에 애를 먹고 있다. 국내에 상용화된 양자컴퓨터가 없기 때문이다. IBM이 학계에 5~14 큐비트 양자컴퓨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지만, 신청자가 많아서 연구에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해외 공동연구자를 통해 간신히 해외 양자컴퓨터를 수급해 개발을 진행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하다.
이 교수는 "학계에서 막힘 없이 양자컴퓨터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연구개발 비용이 해외로 유출된다는 시각이 있어 양자컴퓨터 구매나 이용을 논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정부와 기업이 양자컴퓨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올해부터 관련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양자컴퓨팅 기술개발사업 추진계획'을 확정하고 5년 동안 양자컴퓨터 기술 개발을 위해 445억을 투자한다. 2019년에만 60억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관련 비용은 지난 5월부터 프로젝트 단위로 연구진에게 전달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KT, SK텔레콤 등 국내 대기업도 양자컴퓨터 기술에 투자를 진행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 22일 무바달라캐피털과 함께 미국의 양자컴퓨터 스타트업인 '아이온큐'에 5500만달러 투자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아이온큐는 구글이 활용한 '초전도소자' 방식과 함께 양자컴퓨터의 양대 구현 기술로 꼽히는 '이온트랩(덫)'을 연구하는 회사다.
ETRI 역시 개발 중인 양자컴퓨터를 완성하면 민간에 공개해 국내 양자컴퓨터 연구를 활성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소프트웨어 형태의 양자컴퓨터 환경도 테스트가 끝나는 대로 외부에 기술을 공개한다.
하지만 업계에선 좀 더 적극적인 정부 지원과 투자를 주문했다. 미국의 양자컴퓨터 시장 주도권을 따라잡기 위해 중국은 2018년 이후 5년 동안 17조원을 투자한다. 영국은 34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혔고, 일본도 연 225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국내 기업들이 국내 연구진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 기업들의 무관심 속에서 정작 국내 양자컴퓨터 연구진의 기술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곳은 IBM의 한국지사인 한국IBM이었다는 후문이다.
이 교수는 미국의 양자컴퓨터 패권을 따라잡으려면 결국은 인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자컴퓨터 하드웨어는 물리학, 전기공학, 전자공학을 전공한 인재가, 소프트웨어는 수학, 컴퓨터공학, 전기공학, 전자공학 인재가 필요하다. 민관이 협력해 관련 인재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술 격차가 큰 하드웨어와 달리 소프트웨어는 이제 시작 단계다. 컴퓨터 산업은 하드웨어 못지않게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것이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양자컴퓨터 알고리즘은 선진국과 격차가 2~3년 수준에 불과해 충분히 따라잡을 가능성이 있고, 정부가 양자컴퓨터 알고리즘 기술 개발을 위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타국의 양자컴퓨터 패권에 대응하는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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