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대기오염지수 세계 1위…초미세먼지는 기준치의 5배
도심 대형화재에 수은 다량 누출...폐유 무단 투기사건도 이어져
지난 1일 하노이의 대기오염지수(WORLD AQI)는 전 세계 주요 도시 가운데 가장 나쁜 수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대기오염 조사분석 데이터 업체 '에어비주얼'(AirVisual)에 따르면 이날 하노이의 AQI는 평균 245를 기록했으며 오전 5시30분께 AQI는 317까지 치솟았다. 초미세먼지(PM 2.5) 수치도 258.6㎍/㎥로, 안전기준을 5배 이상 초과했다.
에어비주얼은 90개 주요 도시의 초미세먼지, 미세먼지, 일산화탄소, 아황산가스, 이산화질소, 오존 등 6개 대기오염물질을 기준으로 산출한 대기오염 순위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AQI는 '좋음'(0∼50), '보통'(51∼100), '민감한 사람한테 건강에 해로움'(101∼150), '건강에 해로움'(151∼200), '매우 건강에 해로움'(201∼300), '위험'(301∼500) 등 6단계로 나뉜다.
이날 하노이는 도시 전체가 뿌연 스모그로 뒤덮였다. 하노이 한 교민은 공기청정기를 여러 대 가동하는 집안에서도 숨이 턱턱 막혀 기침이 나거나 목이 따갑고 눈이 뻑뻑하게 느껴질 정도라고 상황을 전했다.
앞서 8월에는 하노이 타인 쑤언구에서 한 형광등 업체 공장에서도 대형화재가 발생해 수은과 중금속이 다량으로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후폭풍은 여전히 거세다. 두 달여가 지났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화재 현장과 인근 지역으로의 외출을 자제하고 인근에서 제조, 판매되는 음식과 식재료를 가능한 한 피한다.
화재 발생 지역 근처로 한인 주재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로열시티 아파트 단지에서는 수은 중독을 우려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한 가구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은 지난 5일 "베트남 환경부는 화재 현장에서 반경 500m 이내를 수은 노출 영향권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베트남 내에서도 수은 누출량과 위험 지역 범위에 대해 이견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당분간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불가피하게 인근 지역으로 외출할 경우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권고했다.
식수원에 대한 비양심적 행위도 적발됐다. 하노이시 당국의 조사 결과 지난 8일 하노이 북서쪽 호아빈성에서 2.5t 트럭 한 대가 폐유를 하천에 몰래 버리는 장면이 목격됐고 당국은 폐유를 무단 투기한 트럭 기사와 관련 기업을 추적하고 있다.
폐유가 무단 투기된 후부터 하노이 시민들은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민원을 제기했고, 악취의 원인은 불법 투기된 폐유에 함유되어 있던 방향족 탄화수소인 ‘스티렌’의 냄새인 것으로 밝혀졌다.
베트남 관계당국은 하노이 수돗물에 대한 초기 검사 결과, 발암 물질인 스티렌 농도가 평소의 1.3∼3.6배 높았다며 수돗물을 식수나 요리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베트남 정부, 도심 공장이전·오토바이 운행금지법 발표
“규제 강화보다는 근본적인 인프라부터 변화시켜야”
베트남 정부는 상황이 심각해지자 총리가 직접 대기오염 문제와 연이은 환경 사고의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베트남통신사에 따르면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국가 총리는 지난 3일 각료 회의를 마치면서 베트남 양대 도시인 하노이와 호찌민시가 환경 문제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지속 가능하며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특히 총리는 도심 지역에 있는 공장을 외곽으로 이전하거나 개인 소유 차량 수를 제한하고 노후 차량 및 오토바이들을 점검해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지 등의 조치가 빨리 취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호앙즈엉뚱 베트남 자원환경부 부총국장은 하노이의 지속적인 대기오염 악화는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건물철거공사가 이어졌기 때문이라며 "하노이시는 이를 최우선 주요과제로 상정하고 근본적인 해결에 초점을 맞춰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베트남 언론도 이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정부 또한 공기를 오염시키는 주요한 원인으로 오토바이 매연을 지목하고 하노이와 호찌민 도심에 2030년까지 오토바이 통행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베트남 환경 커뮤니티는 정부가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강구해야 한다는 비판의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베트남의 한 커뮤니티에서는 하노이는 8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주변 13개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며 이러한 조건에서는 계속해서 환경사고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커뮤니티에서 정부는 매번 환경이슈가 촉발할 때마다 국민들의 오토바이를 문제 삼지만 오토바이 판매는 되레 늘었다며 당국은 도심 유해시설을 철저히 단속하는 등 새로운 규제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노이의 한 주재원은 “하노이가 공해지수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환경 당국이 9∼10월에 공기 질이 좋지 않았다는 계절적인 요인 외에 뚜렷한 원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문제가 오토바이 때문인지 아니면 중국에서 불어오면 서남풍의 영향인지 보다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기오염의 한축...베트남서 급증하는 ‘석탄화력발전소’
늘어나는 전력수요 감당 못해...2025년 전체발전량 중 55%
대기오염 문제가 부각되면서 화력발전소 현황도 주목받고 있다. 사실 화력발전소 문제는 공해 문제가 발생될 때마다 주요 이슈에서 비켜온 느낌이 있다.
베트남의 한 네티즌은 발전소 건설에는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데 베트남 정부가 중국, 한국, 일본 등 외국 자본의 눈치를 보고 있어 이를 이슈화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베트남 정부가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발전소 건립을 통한 전기 공급이 필요한데 이를 굳이 노출시켜서 쟁점으로 부각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설명이다.
베트남 전력공사에 따르면 베트남의 전력설비에서 석탄화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37%를 넘는다. 베트남의 전통적 발전원인 수력과 합치면 70%가 넘는 수준이다.
문제는 베트남 정부가 전력생산을 위해 오염물질 배출이 많은 석탄화력발전을 줄이지 않고 오히려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유는 기후에 영향을 받는 수력보다는 화력발전이 안정적인 발전원이기 때문이다.
2016년 3월 발표된 제7차 전력개발계획 개정안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생산전력 3분의 1(34.4%)이 석탄발전을 통한 것이었는데, 2020년까지 총 전력생산의 절반 수준인 49.3%로 끌어올린 뒤 2025년에는 55%로 올린다는 방침이다.
환경오염의 주범인 석탄화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베트남은 아직 원자력발전소가 예정단계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도 이제 막 태동 단계 수준이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환경오염 문제가 있지만 단기에 대규모로 전력공급을 늘리거나 수요를 따라가려면 석탄화력발전이 가장 손쉽고 매력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는 2030년부터 원자력 발전을 대대적으로 늘려나간다는 계획이지만, 그 경우에도 전력생산의 부족을 메꾸기 위해서는 연간 1억2900만t의 석탄을 태워야 한다는 분석이다.
베트남은 현재 경제성장과 맞물려 전력 판매량 증가율은 2015~2018년 연 평균 10.7% 이상을 기록 중이다. 이는 산업화와 도시화에 힘입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해와 미세먼지는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지만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기반으로 하는 베트남의 산업발전 또한 포기할 수 없는 현실인 셈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모든 개도국이 그렇지만 향후 수십년간은 적어도 베트남이 화력발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것”이라며 “경제발전과 환경 두 가지 모두 잡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공해문제는 베트남 산업화가 안고 가야할 숙명 같은 상황”이라고 현실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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