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라니'가 도로의 시한폭탄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동킥보드와 야생동물 고라니를 합친 단어인 '킥라니'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전동킥보드 사용자를 일컫는 말이다. 최근 전동킥보드 사용자가 늘면서 사고도 증가하자 생겨난 신조어다.
최고 시속 25㎞인 전동킥보드는 자동차에 비해서는 훨씬 느리다. 그러나 작은 차체 탓에 자동차 운전자의 시야에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다. 차량들 사이로 지나가면서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해 사고의 위험이 높다. 자가운전자인 윤아무개씨(53)는 야간운전 당시 갑자기 튀어나온 전동킥보드 때문에 급정지를 하다 사고를 당할 뻔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윤씨는 "(전동킥보드의) 불빛도 희미한데다가 신호가 바뀌는 순간 갑자기 앞질러간 킥보드에 놀라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면서 "다행히 뒤에 자동차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고 밝혔다.
아주경제 기획취재팀은 이에 실제로 전동킥보드를 빌려 1시간 동안 주행해보면서, 도로 위 시한폭탄 '킥라니' 논란을 들여다보았다.
취재를 위해 찾은 곳은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주변에 있는 전동킥보드 대여소. 1시간 대여금액은 1만2000원이었다. 대여는 간단했다. 심지어 면허증 검사 절차도 생략됐다. 도로교통법상 전동킥보드는 원동기장치 자전거, 125cc 이하 중소형 이륜차로 분류된다. 때문에 원동기 운전면허나 1·2종 운전면허가 필요하고 운전자는 보호장구를 착용해야 한다.
전동킥보드를 빌리면서 면허증 검사를 왜 하지 않냐고 묻자 대여소 점주는 "경찰들이 따로 (면허증 검사 여부를) 점검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점주는 "만약에 사고가 나면 그때야 경찰이 나와서 조사를 한다"고 밝혔다. 평소에 정기적인 점검과 같은 감시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불법대여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대여점뿐만 아니라 사용자들에 대한 점검도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취재기자는 헬멧과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전동킥보드를 탔지만, 1시간 주행 동안 필수적인 보호장구를 사용하지 않고 전동킥보드를 타는 시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면허증을 점검하지 않으면서도 대여소에서는 전동킥보드 작동법을 아주 단순하게만 알려줬다. 앞으로 나가고 멈추는 법 정도만 익히고 탑승하게 된 것이다. 만약 아무런 면허증도 없는 청소년들이 대여할 경우 제대로 작동법을 익히지 못해 사고가 날 위험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에서만 탈 수 있다는데···최대 시속 25㎞ '킥라니'될까 두려워
전동킥보드를 빌려 도로 주행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취재기자는 2종보통운전면허증 소지자였다. 그러나 전동킥보드를 타본 적이 없다. 막상 맨몸으로 도로에서 주행을 하려니 두려움이 몰려왔다. 일단 도로 위로 올라 주행을 시작했지만, 공포심은 줄지 않았다.
일단 전동킥보드는 자동차보다 속도가 느렸지만 맨몸으로 공기를 느끼며 타는 것이라 체감 속도는 훨씬 빨랐다. 게다가 여의도 시내 도로였음에도 전동킥보드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휙휙 지나가는 차량의 바람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차량들이 주행하는 기자를 앞질러 빠른 속도로 추월할 때는 뭔가 기자가 도로 위의 방해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방향 전환이었다. 차도에서는 다른 차량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최대속도로 달리다보니 방향을 바꾸기가 힘들었다. 높은 속도에서 핸들을 꺾으려고 시도했으나, 몸체가 불안정하고 넘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속도를 갑자기 낮추면 도로의 흐름을 막으면서 사고가 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만약 뒤에 오던 차량의 속도가 빠를 경우, 갑자기 속도를 낮춘 기자의 차체를 들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향을 제때 바꾸지 못하면 눈 깜짝할 사이 '킥라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러나 위험한 자동차들을 벗어나 인도로 갈 수도 없었다. 현행법상 전동킥보드는 인도와 자전거 도로에서는 주행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주행자들은 차도 주행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인도나 자전거 도로에서 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기자가 전동킥보드를 대여한 대여소에서도 한강공원에서는 타다가 (경찰에) 적발될 위험이 높으니 주변의 자전거도로에 가서 타라고 안내했다. 사용자에게 불법주행을 권하는 셈이다.
1시간 동안 주행을 해본 결과 전동킥보드를 안전하게 "탈 곳이 없다"는 결론에 달했다. 사방이 트여있고 속도도 자동차는 물론 이륜자동차에 비해 훨씬 느린 전동킥보드는 도로에서 타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를 질주하는 사용자들도 있다. 때문에 최근 전동킥보드 사고는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동킥보드 운행사고는 2017년 46건, 2018년 93건이다. 이로 인한 사상자수도 크게 늘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7년 128명, 2018년 242명이 전동킥보드 사고로 부상을 입었다.
당시 조사에서는 전동킥보드 이용자 중 다수가 인도에서 주행하는 것이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위반자에 대한 경찰의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급증하는 인기···적절한 규제가 신속히 마련돼야
전동킥보드의 인기는 최근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전동킥보드 서비스인 킥고잉은 지난달 출시 1년 만에 회원수가 31만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킥고잉 운영회사인 울롤로는 지난달 14일 “연초 대비 약 18배 증가한 인원으로 누적 탑승 횟수는 148만회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전동킥보드가 개인용 이동수단으로 인기가 높아지면서 관련 규제에 대한 논의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월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은 전동킥보드, 세그웨이 등 개인형 이동수단을 자전거도로에서 탈 수 있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또한 전동킥보드는 지난 7월 정부의 규제샌드박스(일정 기간 규제 유예·면제) 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일부 지역에서는 자전거도로에 주행이 가능해졌다. 경기도는 이 실증사업을 11월 8일부터 화성시 동탄2신도시 동탄역 일원에서 시작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그러나 도로 주행이 여전히 가능하고 불법적인 인도 주행이 계속되는 만큼 경찰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더불어 민주당 김한정 의원은 “전동킥보드는 안전장치가 없어 운행사고 발생건수 대비 사망자 비율이 매우 높다”며 “시민 안전을 위해 경찰의 적극적인 계도와 단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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