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레 눈길은 떨고 있는 그의 다리로 향했다. 지문은 읽히지 않았고 A의 심장은 계속 급하게 뛰었다. A씨의 머릿속에는 저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감독관을 불러볼까 생각도 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자신을 불러 해코지를 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길었던 언어영역 지문은 '달달달' 소리와 얽혀 더욱 뜻을 해독하기 힘들었고, 결국 그해 A씨의 수능 언어영역 점수는 모의고사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다리 떨었던 그 녀석만 아니었다면···" 11년이 지났지만, A씨는 당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인생에서 가장 예민한 시기에 일어났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당시 집중력을 100% 발휘할 수 있었다면 본인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A씨는 말한다.
◆두 번이나 만난 ‘코골이’
수험생 유 씨는(22세) 수능을 두 번 치르는 동안 코 고는 사람을 두 번이나 봤다. 유 씨는 “첫 수능을 볼 때 뒤에 모교의 하키선수가 앉았는데 수시를 붙어, 수능 응시만 하면 되는 사람이었다”며 “영어시간에 시간이 모자라 집중이 필요했는데 뒤에서 코를 골고 다리를 떨며 자서 집중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 수능을 볼 때는 모르는 사람이 뒤에서 코를 골며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냈다”며 “정시를 준비해온 입장에서 1교시부터 방해를 받는 것이 너무 기분 나빴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관에게 코골이를 제재해달라고 못한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유 씨는 “이런 상황이 부정행위는 아니라서 감독관에게 말하기 좀 부담됐다”며 “말한다고 해결될 것 같지도 않고 얘기하는 게 오히려 주위 사람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독관에게 문제 제기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특히 앞서 유 씨의 경우처럼 수시에 합격한 학생들이 수능에 응시하면서 시험 분위기를 흐리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에 시험관리본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주기도 한다.
지난해 시험을 본 김아무개(20) 씨는 "우리 고사실에 계속 헛기침을 하고, 몇 분 남았냐는 질문을 시도 때도 없이 하는 응시자가 있었다. 정작 본인은 수시에 합격을 해 수능을 볼 필요가 없는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필기구 가지고도 시비를 걸어서 결국 몇몇 학생들이 시험본부에 가서 문제제기를 했고, 해당 학생은 점심시간에 결국 쫓겨나서 시험을 못보게 됐다"고 밝혔다.
일부 수시 합격생들은 수능을 본 뒤 받는 시험 응시표를 받기 위해서 시험을 보는 경우도 있다. 수험생이라는 증거가 있으면 큰 폭의 할인 이벤트를 해주는 업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무조건 참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면서 "정당한 사유일 경우에는 시험을 관리하는 측에서도 최대한 정시 응시 수험생들을 배려해 준다"고 지적했다.
시험을 같이 보는 응시생들만 수능빌런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감독관 선생님들의 구두 소리도 예민한 수험생들에게는 커다란 자극이 될 수 있다. 지난 2013년 수능을 봤던 한 수험생은 영어시험 시간에 선생님의 ‘또각또각’ 소리 때문에 집중을 할 수 없었던 일을 기억한다. 게다가 해당 감독관은 계속 교실을 돌아다녀 더욱더 신경이 쓰였다. 옷에 달린 장식품이 움직일 때마다 작은 소리를 내는 경우도 있다.
이어 “감독관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났는데 큰 소리는 아니어서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며 “앞에서 두 번째 자리였는데 수차례나 앞을 지나다녀 힘들었다”고 말했다.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을 괴롭히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쉬는 시간엔 “시험 너무 쉽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 주위에서 삼삼오오 떠들며 답을 서로 맞추는 사람, 점심시간 뒤 교실에 밴 음식냄새까지 예민해질 때까지 예민해진 수험생들을 자극하는 요소는 여러가지다.
다만 전문가들은 힘들겠지만, 의연한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느긋하게 마음을 먹는 것이다"라며 "상황을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여유로운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윤곤 메가스터디교육 입시전략연구소 소장은 "사실 이런 경우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며 ”신경 쓰이는 상황이라도 직접 얘기하는 것보다는 해당 시험이 끝난 후 감독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말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직접적으로 말할 경우) 혹시 모를 시비가 붙거나 하면 시험 자체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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