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를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본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된다. 입간판부터 자동차, 오토바이,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그대로 체감하기 때문이다.
미국, 러시아(소련) 등과 달리 일본은 초창기 아세안과 경제 관계를 맺는 데 집중했다. 일본은 공업 발전에 필요한 원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아세안 지역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부터 일본은 아세안의 수입대체 정책을 우회하기 위해 소비재 부문에 집중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이때부터 일본의 대 아세안 경제 영향력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절대적인 비교우위를 확보했다.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는 1977년 이 같은 자신감에 기초해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해 '후쿠다 독트린'으로 불리는 마닐라 선언을 발표한다. 후쿠다 독트린은 평화 약속, 군사적 역할 부정, 상호신뢰관계 구축 등 일본의 대 동남아 정책기조를 구체화했다. 아세안을 포함해 당시에는 미가입국이던 인도차이나 국가들과도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교역 면에서 일본의 대 아세안 수출입 비중은 1990년대 정점을 찍는다. 1993년 아세안이 일본의 수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25%였고 수입 비중은 15%나 됐다.
당시 아세안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례로도 엿볼 수 있다. 태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IMF 주도로 166억 달러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는데, 이 중 IMF는 39억 달러, 세계은행 15억 달러, 아시아개발은행(ADB) 12억 달러, 일본 40억 달러, 중국이 10억 달러를 댔다. ADB를 주도하는 게 사실상 일본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5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 일본을 통해 지원된 셈이다.
일본은 한국의 경제발전과 중국의 굴기(우뚝섬) 이전부터 아세안을 중점적으로 관리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 아세안 공적개발원조(ODA)다.
2018년 기준, 일본의 대 아세안 ODA 규모는 한국의 9배 수준인 35억 달러, 누계로는 1100억 달러가 넘어 독보적인 수준이다. 일본의 ODA 자금은 일본 기업이 현지 사회에서 확고한 지지세력을 형성하고 아세안인들의 교육연수, 기술지원 확대 등을 통해 일본의 인프라 프로젝트 사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하는 동력이다.
군사안보 차원의 영향력도 작지 않다. 일본은 2012년부터 동남아 8개국 ‘군 능력 지원사업’을 본격 시행 중이다. 이를 통해 일본은 중국과의 영토분쟁에 노출된 아세안 국가들에 방위장비품, 해도(海圖) 작성, 항공 분야를 지원해오고 있다.
일본은 사회·문화 부문에서도 아세안에 입김이 세다. 태국의 타이니치(泰日)공업대, 말레이시아 현지 인력 육성과 영주권 부여, 스포츠 교류사(交流使) 파견,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국가대표팀이 우승을 차지해 화제가 된 AFF 스즈키컵 축구대회 등이 모두 아세안에 뿌리내린 일본의 소프트파워다.
최근엔 한국과 중국 등이 아세안 각국에 깊숙이 자리하면서 아세안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아세안과 일본은 반세기 걸쳐 쌓아올린 두텁고 깊숙한 관계가 형성돼 있다. 일본 기업의 아세안에 대한 해외직접투자액(FDI)은 여전히 각국에서 수위권을 기록하고 있고 기존에 투자한 일본기업들이 내구 소비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태국,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자동차·기계산업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영향력은 아직도 한국, 중국 등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막강한 산업가치사슬이 구축돼 있다는 평가다.
미국, 러시아(소련) 등과 달리 일본은 초창기 아세안과 경제 관계를 맺는 데 집중했다. 일본은 공업 발전에 필요한 원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아세안 지역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부터 일본은 아세안의 수입대체 정책을 우회하기 위해 소비재 부문에 집중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이때부터 일본의 대 아세안 경제 영향력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절대적인 비교우위를 확보했다.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는 1977년 이 같은 자신감에 기초해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해 '후쿠다 독트린'으로 불리는 마닐라 선언을 발표한다. 후쿠다 독트린은 평화 약속, 군사적 역할 부정, 상호신뢰관계 구축 등 일본의 대 동남아 정책기조를 구체화했다. 아세안을 포함해 당시에는 미가입국이던 인도차이나 국가들과도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교역 면에서 일본의 대 아세안 수출입 비중은 1990년대 정점을 찍는다. 1993년 아세안이 일본의 수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25%였고 수입 비중은 15%나 됐다.
당시 아세안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례로도 엿볼 수 있다. 태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IMF 주도로 166억 달러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는데, 이 중 IMF는 39억 달러, 세계은행 15억 달러, 아시아개발은행(ADB) 12억 달러, 일본 40억 달러, 중국이 10억 달러를 댔다. ADB를 주도하는 게 사실상 일본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5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 일본을 통해 지원된 셈이다.
일본은 한국의 경제발전과 중국의 굴기(우뚝섬) 이전부터 아세안을 중점적으로 관리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 아세안 공적개발원조(ODA)다.
2018년 기준, 일본의 대 아세안 ODA 규모는 한국의 9배 수준인 35억 달러, 누계로는 1100억 달러가 넘어 독보적인 수준이다. 일본의 ODA 자금은 일본 기업이 현지 사회에서 확고한 지지세력을 형성하고 아세안인들의 교육연수, 기술지원 확대 등을 통해 일본의 인프라 프로젝트 사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하는 동력이다.
군사안보 차원의 영향력도 작지 않다. 일본은 2012년부터 동남아 8개국 ‘군 능력 지원사업’을 본격 시행 중이다. 이를 통해 일본은 중국과의 영토분쟁에 노출된 아세안 국가들에 방위장비품, 해도(海圖) 작성, 항공 분야를 지원해오고 있다.
일본은 사회·문화 부문에서도 아세안에 입김이 세다. 태국의 타이니치(泰日)공업대, 말레이시아 현지 인력 육성과 영주권 부여, 스포츠 교류사(交流使) 파견,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국가대표팀이 우승을 차지해 화제가 된 AFF 스즈키컵 축구대회 등이 모두 아세안에 뿌리내린 일본의 소프트파워다.
최근엔 한국과 중국 등이 아세안 각국에 깊숙이 자리하면서 아세안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아세안과 일본은 반세기 걸쳐 쌓아올린 두텁고 깊숙한 관계가 형성돼 있다. 일본 기업의 아세안에 대한 해외직접투자액(FDI)은 여전히 각국에서 수위권을 기록하고 있고 기존에 투자한 일본기업들이 내구 소비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태국,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자동차·기계산업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영향력은 아직도 한국, 중국 등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막강한 산업가치사슬이 구축돼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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