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의 신통력 믿었는데...연금술 붕괴 대사건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13)

[박상철 교수]

<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퓨처)’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투더퓨처'의 미래 귀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편집자주>


부귀와 불로장상의 대명사, 연금술

연금술은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중세 시대 유럽에 널리 퍼졌으며 근대에 이르기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초자연적인 힘이나 존재에 대한 광범위한 이론과 실천 체계로 발전한 연금술의 중심 단어는 변환(transmutation)이다. 질병에서 건강으로, 늙음에서 젊음으로, 지상의 존재에서 초자연적인 것으로 변환을 꾀하는 연금술은 많은 분야와 연계하여 접목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따라서 궁극적인 외적 물질의 변환과 영적 승화라는 서로 다른 목표가 병행 보완 발전하였다. 초기에는 물질적 변환이 강조되었고, 영적 승화라는 목표는 후기에 종교적 영향을 받아 신비주의로 흐르면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부귀와 불로장생을 목표로 발전해 온 연금술은 하늘의 별자리 운행의 신비를 바탕으로 하는 점성술과 더불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세 대륙 여러 곳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서양 연금술도 야금술의 발전에 기인한다. 연금술의 고전인 스톡홀름 파피루스나 라이덴 파피루스 X에는 이집트시대 금속 처리방법, 금은 조제방법 등이 기재되어 있다. 엠페도클레스가 시작하여 플라톤이 발전시킨 우주 생성의 4원소(물, 불, 흙, 공기)는 모든 물질의 본질이기 때문에 질료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만물이 생성된다는 주장은 물질 변환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4원소설에 근원물질인 제1질료(prima materia)라는 개념을 추가하였다. 모든 물질은 근원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물질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하여 이후 연금술의 물질 전환 개념의 근거를 제공하였다. 연금술사에서 중요한 인물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이다. 헤르메스의 뱀지팡이는 연금술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으며 그가 저술한 에메랄드 서판에는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과 전후, 상하, 내외의 공간을 초월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초월하는 능력에 대한 신비한 방법 등이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음으로 유명한 사람은 8세기의 자비르 이븐 하이얀이다. 이집트나 그리스 전통의 관념론적 연금술을 지양하고 직접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을 도입하여 실험실에서의 적절한 조건을 통한 실험결과를 강조, 근대 화학의 원조라고 불리기도 한다. 중세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로저 베이컨은 '위대한 작업(Magnum Opus)'이라는 책을 저술하였고 중세 대학의 교과과정을 수립하면서 연금술과 도덕, 구원, 생명연장을 포괄하는 교육을 제창하였다. 그러나 14세기 이후 일반사회에도 널리 퍼지게 된 연금술은 과장된 효과 또는 거짓된 결과들로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였다. 그에 따라 단테나 초서와 같은 유명작가들의 작품에도 연금술사는 일반인을 현혹하고 귀족을 농락하는 사기꾼이나 거짓말쟁이로 묘사되었다.

인간 개조도 연금술로 가능하다?

연금술의 배경에는 모든 물질이 간단한 원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물질을 녹여 원소로 바꾸면 얼마든지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퍼지게 되었다. 르네상스시대에 부각된 인본주의와 네오플라토니즘의 영향은 연금술사들에게 인간 개조도 연금술의 대상으로 포함하게 하였다. 원죄를 지닌 인간을 근원적으로 고치고 개선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라리 원죄가 없는 완벽한 인간을 창출해내 버리자는 기발한 시도도 착수되었다. 이러한 비법 중심의 연금술이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파라켈수스의 등장이다. 그는 화학물질의 의학적 활용에 중점을 두었으며 다음의 유명한 말을 남기며 독물학 개념을 창안하였다 “모든 것은 독이며, 독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용량만이 독이 없음을 정한다.” 약물을 다루는 데 있어서 용량과 용법에 대한 주의를 새롭게 불러일으켜 연금술에서 활용되는 약물에 대한 과학적 분석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파라켈수스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그의 사상을 계승하여 연금술이 갖고 있는 의학적 중요성을 부각하였고 여러 의과대학에서 연금술을 교과과정으로 채택하였다.

그러나 무려 천년 이상 학계와 종교계를 지배하여 왔던 연금술도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연금술의 허상이 드러나게 된 계기는 연금술의 핵심물질인 수은의 속성에 대한 기상천외의 실험적 결과가 나온 것이다. 모든 물질의 전환에서 주역을 담당하고 있는 핵심 물질인 수은이 그 자체는 결코 변환하지 않는다는 청천벽력적인 결과였다. 수은을 반복 증류하면 당연히 색과 상이 변화하여 다른 물질로 바뀐다고 믿어왔는데, 네덜란드의 부르하베(Herman Boerhaave)가 일정량의 수은을 무려 15년 동안 용기 안에서 가열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음을 밝혔다. 자그마치 500차례 이상 증류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 발표되면서 물질 변환의 허구성이 명확하게 지적되었고 연금술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떨어지게 되었다. 당시에는 돈키호테적 발상에 의한 터무니없는 실험이었지만 연금술을 궤멸하는 결정적 업적이었다.

물질 전환의 핵심 '수은'은 불변...연금술 연구자들 발칵

아울러 라부아지에는 금속을 연소하면 공기의 질량이 가벼워지는 만큼 금속의 무게가 증가함을 입증하여 연소제라는 특수 존재를 상정한 연금술사들의 주장이 허무맹랑한 거짓임을 밝혔다. 금속이 변환할 수 있다는 주장은 부조리하며, 물질의 연소나 생물의 호흡이나 결국은 공기중의 산소를 흡수한다는 점에서 동일함을 밝혔다. 이후 영국의 돌턴이 각각의 원소들이 일정한 비율로 결합할 때만 다른 물질로 변할 수 있음을 증명하여 연금술에서 주장해 왔던 물질 자체의 변환에 관한 모든 주장들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결과를 빚었다. 수천년 동안 인간 사고방식의 결정론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의 시대가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실증적 논리의 시대로 전환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이루었다.

피타고라스학파가 만물의 근원이 수(數)임을 밝히고 자연수의 존재만을 믿었지만 무리수가 발견되자 비밀로 한 사례도 결국은 학파가 붕괴되는 계기가 되었듯, 학문적 공개와 비판의 수용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연금술 시대의 기득권 체계의 독단과 도제 시스템으로 이어져온 비밀주의와 신비주의는 객관적 평가와 비판을 거부하였고, 결국 천년이 넘도록 인류의 이성을 어지럽혔고 발전을 저해한 결과를 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