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 세대와 유신 시대, 광주민주화 세대와 2019년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중략)/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중략)/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중략)/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중에서
문득, 아주 새롭게 다가오게 된 이 시에는 두 개의 시간이 기입되어 있다. 1960년 12월 어느 날과 1978년 겨울 어느 날이다. 4·19의 세밑에서 만난 때는 학창시절이었고, 1978년의 세밑은 유신체제로 종신집권을 다지던 박정희 권력 아래 실시된 12·12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했던 때이다. 이 사태는 이듬해 부마항쟁을 부른다.
이 시 속에 등장하는 화자는 해방 이전에 태어나 어린 시절 전쟁을 겪고 이승만 독재에 항거해 4·19혁명을 이뤄낸 사람이다. 이후 18년간 군부독재를 겪으며 그들은 혁명을 두려워하는 세대가 됐다. 그 비겁과 안주와 퇴행을 옛 동지와 함께 여지없이 확인한 뒤 돋아오는 부끄러움을 털며 서둘러 귀가한다. 이 시를 쓴 김광규는, 박정희 압제에 항거하지 못한 채 일상 속에 순치된 당시 혁명세대의 비극이 정확하게 되풀이될 거라는 생각은 못했을지 모른다.
# 586, 그 옛사랑은 어떻게 그림자가 되었는가
하지만 혁명의 추억이란 희미한 옛사랑은, 그때 돌멩이를 쥐고 화염병을 던지던 세대에게도 정확하게 그 모양새의 그림자가 되어 돌아왔다. 최근 조국사태 이후 들끓듯 일어난, 586세대를 향한 분노는 무엇일까. 박정희 사후 10년의 민주화 동지들이 그 희미한 옛사랑을 발판 삼아 이 사회의 양지와 노른자위를 누리면서 다른 세대에게 돌아가야 할 당연한 기회마저 빼앗은 이기주의적 세대를 기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옛사랑은 아름다웠을지 모르나, 그것을 과잉으로 우려먹으면서 당시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지금껏 사회의 핵심적인 지위와 권력을 누리는 '그림자' 세력이 되어버렸다는 고발이다. 남을 비판하고 기소하면서 자신은 그 지적에서 성역인 것처럼 동일한 비리를 기웃거렸고, 정의와 공정을 외치면서 스스로의 입신과 자녀 교육 같은 것에서는 특권과 편법과 '그들만의 노하우'로 사다리를 탔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깊이 공감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가장 부유하고 따뜻한 지역에 둥지를 틀었으며, 무엇보다 오래전 '운동'에서 엮은 네트워크를 사회적 자산으로 삼아 웬만해서는 무너지지 않는 강력한 권력과 이익의 스크럼을 짜는 '이기적인 운동' 방식으로 세상의 주류로 올라와 있다는 점이다.
조국이 까발려준 586의 부도덕하고 가식적인 민낯은 이제 일반화하여 세대 전체의 아웃을 외치는 상황을 낳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예사롭지 않은 묵시록이다. 우린 이제 희미한 옛사랑의 수완 좋은 세대가 어떻게 일그러진 그림자가 되어 왔는지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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