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현대 정치사 산증인' 나카소네 전 총리 별세…향년 101세(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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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기자
입력 2019-11-2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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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직 총리로 야스쿠니 신사 첫 참배…한국 등 주변국 반발 초래

일본 현대 정치사의 산증인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가 별세했다. 

29일 교도통신, NHK 등 일본 언론들은 나카소네 전 총리가 이날 오전 7시쯤 도쿄의 한 병원에서 향년 10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고 보도했다. 

1918년 5월 27일 군마현에서 태어난 고인은 도쿄대를 졸업했다. 옛 내무성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한 나카소네 전 총리는 종전 직후인 1947년 28세 때 중의원에 처음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고인은 1947년부터 20회 연속으로 중의원 의원에 당선했다.

이후 방위청 장관과 통산상 등을 거쳐 1982년 11월 제71대 총리에 올라 5년에 걸쳐 73대까지 연속으로 재임했다. 전후 일본 총리로는 5번째로 오랜 기간 집권한 '장수 총리' 중 한 명이다.

그는 1960년대 초반 한·일 양국의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3년에는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경제협력자금 지원을 결정하는 등 한·일 우호증진에도 기여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198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을 이끈 A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 총리로는 최초로 공식 참배했다. 이는 일본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아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이후로 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했다.

고인은 50여 년간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전후 정치 총결산을 내걸고 지론인 평화헌법 개정 등 일본의 우경화를 앞장서 주창해 왔다. 특히 1994년 일본이 전후 50주년을 맞아 전쟁범죄에 관한 사죄 결의를 하는 것에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등 평생을 우익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걸었다. 고인은 일본 우파세력의 우두머리로 통했다.

또한 나카소네 전 총리는 재임 기간 행정개혁 등에 정진했고 국철과 전매공사 등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밀어붙였다. 외교 면에서는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구축해 일본의 위상을 높였다.

총리에서 물러난 후, 1989년 5월 '리쿠르트 스캔들'에 연루돼 중의원 예산위에 증인으로 소환될 위기에 처하자 자민당을 탈당했다가 2년 만인 1991년 복당했다.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시절에는 지역구를 내놓으면서 종신 비례대표 1번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2003년 11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중의원 비례대표 73세 정년제'를 앞세워 사실상의 퇴진을 요구하자 85세였던 고인은 결국 중의원 선거 출마를 포기하고 은퇴의 길을 선택했다.

퇴임 후에도 나카소네 전 총리는 정계의 막후 중진으로 활약했다. 2003년 의원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정치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100세를 맞이한 작년 5월에 헌법개정의 실현을 기대하는 발언을 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저서로는 '21세기 일본의 국가전략' 등이 있다. 이 책은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해 헌법을 개정하고 교육법을 바꿔 일본의 정체성을 강화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현대 정치사의 산증인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가 29일 별세했다. 향년 101세.[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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