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국민들은 ‘국회의원 숫자놀음’에 관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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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철 정치부 차장
입력 2019-12-0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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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석이라는 국회의원 숫자에 대한 지역구, 비례대표 비율을 놓고 정치권이 주판알 튀기기에 열중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보이고 있는 행태다.

요약하자면 당초 민주당과 야 3당(평화당·대안신당 분당 전)이 합의한 선거제 원안은 의원정수를 300석 그대로 두되, 지역구를 253석에서 225석으로 줄이고 대신 비례대표를 기존 47석에서 75석으로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합의를 해놓고선 지금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놓고 얘기가 달라지고 있다.

현재는 합의한 원안 말고 ‘240석(지역)·60석(비례)’, ‘250석·50석’ 등 다양한 안들이 제기되는 중이다. 여기에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과 관련한 연동률까지 더하면 함수는 복잡해진다.

원안의 연동률 50%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데 공감대가 있지만 각론에서는 여전히 쟁점이 남아 있다.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안 협상을 ‘보이콧’하고 있는 한국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으로 비례대표 의석 중 절반에 대해서만 연동률 50%를 적용하고 나머지는 현행대로 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집권여당 입장에서는 선거제 강행 처리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군소정당에 유리한 연동률을 낮추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해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이런 복잡한 움직임에 대한 배경 설명은 간단하다. 원안은 수도권, 영남, 호남 등 권역별로 지역구 의원 28석이나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호남 지역 의석의 감소 비율이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부랴부랴 합의는 해놓았는데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나오는 모든 시나리오들의 지역구 감소는 모두 28석보다 적다.

지난 10월에는 의원정수를 늘리자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기도 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 4월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의석수 300석을 넘지 않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을 마련해 패스트트랙에 올린 바 있다. 그러다 돌연 세비 축소를 전제로 의석수 10% 증원 카드를 제시했다. 이를 두고 당연히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정치권은 300명의 ‘정원’을 놓고 지역구 의원들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리저리 ‘숫자 퍼즐’을 짜맞추고 있는 셈이다. 비례대표는 한번 이상 할 수 없고, 어차피 21대 총선에는 국회에 누가 입성할지 미정인 상태다.

그동안 여야는 선거구 조정 때마다 지역구를 늘리는 대신 비례대표를 줄여 정원 300석을 유지해 왔다. 표심 왜곡이 심각한 현행 선거제 개혁이 오랫동안 성사되지 않은 것도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유지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군소정당도 ‘건전한 다당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취지는 이해한다. 다만, 정치적·정책적 차별화로 거대정당에 맞서 표심을 얻어야지, ‘선거 룰’을 통한 ‘어드밴티지’만을 원한다면 곤란하다.

국민들이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데 부정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정치인들도 이에 대한 답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회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어서다. 정쟁에 몰두하지 않고 행정부 견제와 법안 통과 등 입법부 본연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면 국민들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 수가 부족해 국회가 파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국회의원이 많아지면 협치와 합의가 어렵다고 본다. 300명이 보여주는 갈등과 대립으로도 충분하다.

정치권은 매번 선거 후 각종 특권 축소 및 폐지안을 마련했다가 ‘없던 일’로 만든다. 기득권과 특권을 내놓지 않으면서 국회의원 ‘자리’만 원한다면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신뢰는 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여야는 예산안과 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검·경수사권 조정법안 등 패스트트랙 법안의 단일안을 하루빨리 마련해 처리해야 한다.

예산안은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된 첫해인 2014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예산안 처리시한이 늦어지고 있다. 일일이 다 거론하기에 버거울 정도로 민생·경제 법안도 수북이 쌓여 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들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대 국회의 경제분야 입법은 4점 만점에 1.66점, 사회통합 및 갈등해소는 1.56점 등으로 전 분야에 걸쳐 ‘C학점’을 밑돌았다.

‘일 안 하는 국회’라는 비판을 받아온 20대 국회가 마지막까지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의 ‘숫자놀음’에 관심이 없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정용기 정책위의장 등 의원들이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과 국회의장 민생외면 국회파탄 규탄대회'를 열고 '필리버스터 보장, 민생법안 처리, 국회 본회의 개의'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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