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교과서 같은 사례가 바로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 주변에 조성된 항공정비(MRO) 단지다. 단순히 연 매출 8조원에 달하는 효자 산업이라는 점 외에도 부품·소프트웨어 개발과 성능 개량, 안전 진단의 첨단 기술을 축적하는 싱가포르의 거대한 심장이다.
작년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 한국 대사관의 한 직원은 공항 주변에 조성된 번영의 생태계를 보며 “우리는 왜 이렇게 스마트한 기술 축적 전략을 구사하지 못하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MRO는 독자적으로 항공기를 만들지 못하는 나라가 채택할 수 있는 중간급 규모의 산업 전략이다.
싱가포르는 미국과 같이 공군의 주력기로 F-16과 F-15를 채택해 운용하면서 재빠르게 미국 항공사의 기술을 수입했다. 군에서 육성된 전문 인력이 민간 MRO로 그 영역을 확대하면서 오늘날 동아시아 최대의 정비 허브 기지로 진화해왔다. 지금은 로봇과 음파탐지를 통해 MRO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기술 선도자로 도약하는 중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2023년이 되면 우리 군은 정비비로 매년 2조5000억원을 해외로 유출시키게 된다. 최근 도입되는 F-35의 경우 대당 도입가가 1200억원인데 20년간 유지비는 2500억원이다. 40대에 해당되는 정비비로 미국에 유출되는 돈이 사오는 돈보다 많다.
반면 일본은 같은 기종을 수입하면서 북태평양권의 F-35 정비기지를 나고야 미쓰비시 공장에 만들어 막대한 수입을 올릴 기반을 조성해 놓았다. 한국 전투기도 일본이 정비할 가능성이 높다.
민간 여객기는 더 한심하다.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은 자체 시설부족으로 10~30%의 항공기를 싱가포르, 몽골에 가서 정비를 하고 있고 저가 항공사는 거의 전부를 해외에 위탁하고 있다. 이로 인한 국부 유출이 매년 20% 상승해 2023년경이면 그 규모가 2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그런데도 주무부서인 국토교통부와 국방부는 MRO 육성을 위한 정책도 수립한 바 없으며, 올해 양 부처 간에 국장급 회의를 한 번 개최한 것이 전부다. 군용 항공기와 민간 여객기는 정비 시설과 인력, 치·공구가 호환될 수 있기 때문에 민군이 협력해 산업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에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MRO 육성 의사를 밝혀왔으나 정작 중앙정부가 응답하지 않음으로써 산업과 기술의 축적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국정 과제로 MRO 육성을 표방하고도 실행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결과 우리는 싱가포르, 일본, 중국이 기술을 축적하는 동안 낙오자가 된다.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나서서 부처 간 협력을 촉진하고 산학연이 뛰어들면 될 일이다. 무슨 핑계가 그리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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