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3무 디지털 성범죄] ①“예쁜데 친구도 많아서”…친구의 질투에 희생된 서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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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진·류선우 기자
입력 2019-12-0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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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 사이 3차례 피해... 공권력 손놓고 있는 사이 스스로 범인잡아


‘디지털 성범죄’라는 말로 미처 다 담을 수 없는 추악하고 역겨운 사진들이 인터넷 공간을 떠돌고 있다.

단순히 음란한 사진이 아니다. 골방에 모여 키득거리며 훔쳐보던 포르노 비디오 수준은 일찌감치 벗어났다. 성적 수치심이 아니라 증오로 가득한 혐오 표현물에 더 가깝다. 개인의 존엄을 파괴하는 기괴한 사진들이 매일 수도 없이 쏟아지고 있다.

누구든 대상이 될 수 있다. 헤어진 연인이거나, 오늘 아침 신경을 긁어놓은 옆집 여자, 평소 꼴 보기 싫은 동급생 등 사진 몇 개만 있으면 희대의 ‘음란마녀’로 만들 수 있다.

그런 사진 만드는 건 누워서 떡 먹기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누구든 ‘능욕’할 수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지인능욕’이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무료로 합성해드립니다’라는 게시글이 수두룩하다.

AI(인공지능)를 응용해 개발된 딥 페이크(Deep fake) 기술은 클릭 몇 번으로 자연스러운 합성사진을 만들어 준다. 그렇게 어느 누구의 딸, 어떤 아이의 엄마, 누군가의 동생은 난잡한 ‘섹스 중독자’로 난도질당해 사이버 공간에 내팽개쳐지게 된다.

원래 미국 등에서는 연예인들이 ‘Deep fake’ 기술의 희생자가 되지만 국내에서는 일반인들이 주로 피해를 입고 있다.

만드는 게 쉽다 보니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의 연령도 자꾸 내려가고 있다. 직업과 성별의 차이도 없다. 교사가 교사를, 교사가 학생을 ‘능욕’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중학생이 옆 반 친구를 능욕하는 일도 생겨났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SNS 텔레그램 등에는 “교사 신상 제보받습니다. 사진 보내주시면 합성도 해드립니다”라는 게시글이 버젓이 올라와 있을 정도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8년~2019년 8월 학교 내 디지털 성범죄 현황’ 자료에 따르면, 그 기간(1년8개월) 동안 학교 내 디지털 성범죄는 792건에 달했다. 과정별로는 중학교가 359건으로 가장 많았고, 고등학교 248건, 초등학교는 112건이었다.

가해자-피해자 유형으로는 학생 간 사건이 630건으로 가장 많았지만 외부인(가해)-학생(피해) 이 91건, 학생-교원 26건, 교원-학생 간도 15건에 달했다.

하지만 이를 단속해야 할 공권력은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법의 허점이 지적되는 것은 물론, 있는 법도 지켜지지 않는다. 신고해도 ‘해외 서버’ 탓을 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서류만 쌓아놓는 경우까지 있다.

가뭄에 콩 나듯 잡혀 오는 범인들도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을 받는다. 절반은 벌금형, 나머지도 대부분은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실정이다.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죄 처리현황’에 따르면, 매년 4000건에 가까운 음란물유포 사건이 신고되지만 절반 정도가 가해자를 찾지 못해 기소중지·참고인중지 등으로 처리된다. 나머지 절반도 무혐의 또는 벌금형 처리되고 있었다.

소라넷 사건 등 실형이 선고된 사건도 있지만 그것도 기껏해야 3~4년. 그것도 중형이라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그런데도 국회나 정부 그 누구도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 때문에 한 번 울고, 공권력 부재와 국가의 무관심에 또다시 울게 된다. 오히려 누가 알까 소리 내 울지도 못하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아주경제가 들어봤다.

 


“서진아, 네 SNS 해킹당한 것 같아. 그런데, 어떡해... ”

경기도 외곽의 모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서진양(가명, 16)은 올해 초 친구의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자신의 계정 SNS에 온통 이상한 사진들이 올라가 있으니 얼른 지우라는 것. 서진이가 ‘무슨 사진이냐’라고 물었지만 친구는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서진이는 그날의 기억을 거기서 멈추고 싶다. 가능하다면 그다음 부분부터는 도려내 버리고 싶다. SNS를 더럽히고 있던 그 역겨운 사진들이 남긴 기억은 한 톨도 남기고 싶지 않다.

친구가 알려준 SNS 계정은 누군가 서진이를 사칭한 것이었다. 올려진 사진은 모두 인터넷에 떠도는 음란물이었는데 하나같이 서진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구인지 음란물에 서진이의 얼굴을 합성한 것이 분명했다. 모르는 사람이, 또 자세히 보지 않으면 합성이나 조작인지 모를 정도로 감쪽같았다.

더욱 충격인 것은 서진이가 잘 가는 장소와 휴대전화 번호가 해시태그(#)로 붙여져 있었다는 점. 범인은 서진이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며칠을 끙끙 앓다 용기를 낸 서진이는 경찰서를 찾았지만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경찰관으로부터 같은 종류의 피해를 본 사람들이 같은 동네에 또 있고 최소한 10여 명은 넘는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피해자 중에는 자매가 시차를 두고 나란히 피해를 본 경우도 있었다.

알고 보니 피해자들 모두가 서진이와 같은 학교 학생이거나 졸업생이었다. 피해자 중에는 피해가 사이버 공간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로 넘어온 사례도 있었다.

고3인 강은수양(가명·18)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트위터에서 시작된 디지털 성폭력은 페이스북 등 여러 SNS를 옮겨 다니며 계속됐다. 사이버 공간의 디지털 성범죄가 현실로 고스란히 넘어온 거다.

고1 때부터 떠돌기 시작한 ‘이상한 사진’은 어느새 음란 메시지와 전화로 이어졌고 급기야 동네 도서관 화장실의 낙서가 됐다. 툭하면 걸려오는 음란 전화 때문에 아예 휴대전화를 없앴던 적도 있다.

극심한 충격으로 한동안 학교에도 나가지 못했던 은수.

하지만 경찰은 아직 범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신고한 지 1년여가 다 돼가지만 감감소식이다. 그러는 사이 피해는 점점 늘어났다. 서진이도, 은수도 SNS 종류를 바꿔가며 사진을 올리는 범인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아주경제 취재기자의 전화를 받은 관할 경찰서 수사과장은 사건이 접수된 사실부터 부인했다.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냐”며 펄쩍 뛰던 수사과장은 “그런 사건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런데 그의 말은 통화가 계속될수록 조금씩 변했다. 처음에는 그런 사건 접수한 적이 없다더니 잠시 후에는“비슷한 사건이 작년에 한 건 접수된 적이 있긴 했는데 SNS 종류가 다르다”고 바뀌었다. 나중에는 “접수가 됐더라도 수사하기 어렵다”라는 말로 이어졌다.

가해자도 같은 동네 사람일 텐데 이곳처럼 작은 동네에서는 금세 알게 된다며 “동네 분위기가 나빠지지 않겠느냐”는 것. SNS 서버가 대부분 해외에 있어 현실적으로 수사가 쉽지 않다는 상투적인 변명은 당연한 것처럼 곁들여졌다.

서진이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의 미온적인 태도에 더 분노하고 있었다. 한 동네에서 10명이 넘는 피해자가 생겼는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는 것이었다. 관할 경찰서에 신고도 했고 지방경찰청에도 찾아갔지만 연락은 없다.

피해자 중에는 스스로 범인을 찾아내 경찰에 넘긴 경우도 있다. 친구들을 동원해 ‘지인능욕’ 사이트를 검색하고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범인 중 한 명을 찾아냈다.

“친구가 의뢰할 것처럼 접근해서 ‘능욕’을 부탁한 사람의 SNS 계정을 찾아냈는데요, 포털사이트를 뒤져보니까 같은 아이디를 쓰는 계정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어떤 친구가 그 이메일 계정을 딱 알아본 거예요. (범인은)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 여자였어요”

경찰에서 범인은 “나보다 예쁘고 친구도 많아 질투 났다”라고 범행 동기를 털어놓았다. 해외 사이트 탓을 하고 있지만 범인을 찾아낼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경찰이 일을 안 한다고 생각해요. 검찰청에 신고할까 생각해 봤는데, 경찰서로 서류를 돌려보낸다고 해서 포기했어요. 나머지 놈들도 제가 잡을 수 있으면 잡을 거예요”

아직 고등학생인 피해자들은 이미 무능한 공권력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렸다.
 

지난 7일 피해자들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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