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광객과 미국 스타벅스의 '빅오사카'
일본 오사카의 12월은 전례없이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행사, 그리고 붐비는 중국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친다. 웅대하게 정비된 오사카역 건너편에 세워진 우메다 스카이 빌딩은 오사카의 마스코트로 자리 잡았다. 늘어선 줄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40층 전망대에 오르려면 1시간 이상이 걸린다. 여기저기서 중국어만 들린다. 서민들의 번화가 도돈보리는 발 디딜틈 없이 중국인들로 만원이다. 도돈보리 입구에 서있는 ‘2025 오사카 엑스포’ 상징물은 오사카 방문객의 최고 핫스폿이다. 그 옆에서는 서점의 미래라 부르는 복합서점 츠다야가 미국의 스타벅스와 제휴해 공동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올림픽이 열리는 도쿄는 도시정비사업을 거의 끝내고 ‘그랜드 도쿄’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오사카는 2025년 세계박람회(엑스포)를 앞두고 ‘빅 오사카’를 향한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열차로 1시간이 채 안되는 교토와 고베도 합류하는 ‘그레이트 간사이(關西)’도 착실히 진척 중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과 1970년 오사카 엑스포의 레거시(유산)를 되살리면서 100년을 내다본 세계 최고의 스마트 시티를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이 깔려있다.
1979년 미중 국교정상화로부터 40년이 흐른 지금 최악이 된 양국관계,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로부터 47년이 흐른 지금 최상의 관계를 모색하는 양국관계 반대 방향의 벡터를 일본에서 융합(컨버징)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의 문화와 중국의 고객을 조화시킨 일본적 상술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싶다.
이러한 일본의 책략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우선 미·중 관계다. 미국은 2020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지지파와 반대파로 여론이 갈리는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 양극화는 지구적 규모에서도 심화되고 있다. 미·중의 디커플링(분리)이다. 미·중 대립은 통상 분야에서 첨예하게 나타났으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미국 의회를 비롯한 미국 내의 반(反)중국 움직임은 군사·기술·외교·사상·인권·인재 등의 분야에서 광범위한 중국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다. 외자계 투자를 제한하는 ‘외국투자 리스크 심사 근대화법’,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수출관리개혁법’, 정부조달을 제한하는 ‘국방수권법 889조’, 무역상대로서 적합하지 않은 조직을 등재하는 ‘엔티티 리스트’를 확대해 산업스파이를 막는다는 사법부의 시스템인 ‘중국 이니셔티브’ 등을 펼쳐놓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에도 공동보조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중의 디커플링 '냉전 아닌 패권전쟁'
이에 더해 미국 의회는 초당파로 중국에 시장개혁을 촉구하며 ‘자본시장의 분단(디커플링)’을 시야에 넣고 중국대항책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중국기업을 상장폐지하거나 중국 종목에 자금이 유입되는 증권투자를 제한하는 방안을 의원 그룹이 법안화했다. 이는 미국 의회 초당파 자문기관 ‘미·중 경제안전보장조사위원회’가 지난달 발표한 연차보고서에서 밝혀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대립하는 양국관계에 새로운 불씨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주요국에선 처음으로 디지털 통화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한정된 지역에서 시험발행을 한 뒤 본격적으로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로 현금을 갖고 나가 자본이 유출되는 것을 막고, 장래는 인민폐(위안화)의 국제화로 기축통화 달러의 패권에 대항한다는 전략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정부와 여당은 디지털 인민폐 발행구상이 미·중 간의 중장기적인 패권경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연구회를 가동시켰다.
중국이 ‘일대일로’ 구상으로 세계 패권을 꿈꾼다면 미국은 지구적 규모의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의 미·중 관계를 신 냉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 전문가인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달 말 일본을 방문한 그는 강연에서 미국이 옛 소련과는 교역과 인적관계도 없었지만 지금 미·중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미국에는 중국인 학생 35만명이 있고, 졸업하면 미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대표적인 징표의 하나다. 그는 적어도 2, 3년은 대립이 계속될 것이나 군끼리의 대화도 이어지고 있어 군사충돌 가능성은 대단히 적다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중국정부는 무역마찰이 해소된다 해도 양국이 정치와 안전보장에서 세게 맞서고 있어 20년 정도를 내다보고 각본을 짜고 있다고 쿵쉬안유 주일 중국대사는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미·중 무역협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끝내고 국회동의까지 받았다. 일본이 미국의 쇠고기·돼지고기와 파인애플에 대해 관세인하를 해주었으나 미국은 일본이 요구한 대미 자동차 수출관세 인하를 유보했다. 이 문제는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논의만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오피니언 리더들은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 봐주기로 미·일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 접근의 공간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본, 이참에 중국과 전방위 밀월관계
일본의 관심은 중국으로 재빨리 이동하고 있다. 고노 타로 방위상이 이달 중순에 중국을 방문한다. 방위상의 방문은 10년 만이다. 12월 하순의 아베 총리 방중도 예정되어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일본방문은 내년 4월경으로 조정되는 듯하다. 양국은 시진핑 주석의 방일에 맞춰 중·일 공동성명 등에 이어 ‘제5의 정치문서’ 발표를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1972년의 중·일 공동성명과 78년의 평화우호조약 이후, 1998년의 중·일 공동선언, 2008년의 전략적 호혜관계의 포괄적 추진에 관한 공동성명에 합의했다. 이 4개의 기본 문서에는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4개 문서는 양국관계의 기초로서 중시되어 왔다. 시진핑 주석의 방일을 계기로 양국은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새로운 페이지를 연다는 기대를 키우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주 일본 파나소닉이 16년 만에 중국에서 가전공장을 신설키로 한 것과 중국 스마트폰 제조회사 샤오미가 이달 중에 일본시장에 진출키로 한 것은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
파나소닉과 중국관계는 40년을 넘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1978년에 일본에 온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은 오사카로 발을 옮겨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을 만났다. “중국의 근대화를 도와달라”는 등의 요청을 받아들여 마쓰시타는 중국에 진출키로 결정했다. 1987년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외자계 공장이 되는 브라운관 합작회사를 베이징에 설립했다. 파나소닉의 중국에서의 가전 매출은 연간 2조원 규모에 달해 외자 메이커로서는 지금도 최고 수준이다. 파나소닉은 수익성이 낮은 일반가전은 포기하고 2021년부터 조리(調理) 가전을 생산할 계획이다. 파나소닉은 세계시장에서 선택과 집중을 할 타깃으로 중국 시장을 잡으려는 심산이다. 미·중 무역마찰이 심화되면서 생산거점을 옮기려는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중국 사업을 강화하는 파나소닉의 이례적인 전략이 주목된다. 반면 중국의 샤오미는 도쿄도 내에 자사 점포를 열어 스마트폰 외에 IoT(사물인터넷)를 활용한 건강관련기구와 가전 등의 제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샤오미는 당초 2020년 일본진출을 표명해왔으나 이달로 앞당긴 것이다. 중·일 우호무드를 타고 시장을 선점하려는 의도로 비춰진다.
보겔 교수는 “관세의 응수를 반복하고 있는 두 나라가 사이가 더 나빠지기 전에 양국을 이해하고 있는 일본이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 정부도 미·중 사이를 오가며 의회외교, 민간경제외교를 바쁘게 펼치고 있다.
수요가 폭증해 수입 가격이 두배나 뛴 미국 오레곤 산(産) 전나무로 장식한 우메다 스카이 빌딩의 크리스마스 트리와 그 아래서 연말을 즐기는 중국 관광객들의 모습에서 미·중·일의 새로운 삼국지를 읽는다.
오사카= 곽재원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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