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많은 기대와 전망 속에 새로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 2개가 출시되었다. 11월 1일에 애플TV 플러스가, 11월 12일에는 디즈니 플러스가 론칭된 것이다. 애플TV 플러스의 경우 미국 계정으로 한국에서도 이용이 가능하지만, 디즈니 플러스는 국내에서 이용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아직까지 두 플랫폼 모두 본격적으로 국내에 진출한 상황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플랫폼이 향후 국내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애플TV 플러스와 디즈니 플러스에 관한 논의는 큰 틀에서 이 두 플랫폼이 과연 넷플릭스와 어떠한 경쟁을 펼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국내에서는 이 두 플랫폼을 포함한 글로벌 OTT 서비스가 국내 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두 플랫폼의 월정액 이용료는 얼마인지, 오리지널 콘텐츠 수급은 어떻게 이루어질지 등에 관해 무수한 보도가 쏟아졌고 향후에도 관련된 정보가 계속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앞으로의 시장 동향을 주기적으로 체크해야 하는 연구자나, 새로운 서비스가 궁금한 이용자나, 잠재적인 경쟁자가 될 수 있는 국내 사업자 입장에서나, 이러한 정보들은 유익하다. 하지만, 애플과 디즈니를 포함하여 최근 몇 년간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OTT 관련 논의에서 그 중요성에 비해 충분히 조명되지 않은 영역이 있는 것 같다. 바로, OTT 도입과 활성화가 이용자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하는 부분이다.
OTT는 기술발전의 산물이고, 사업자들은 이 기술의 진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OTT라는 영역이 흥미로운 것은 넷플릭스와 같이 온전히 OTT에 집중하는 사업자가 있는 반면, 애플과 같이 디바이스(물론, 애플이 디바이스를 중심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를 중심으로 하는 사업자, 디즈니와 같이 콘텐츠 중심의 사업자 모두 OTT라는 영역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기 위해(Direct to Consumer)’ OTT에 뛰어들었다는 디즈니의 출사표는 OTT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OTT는 어떠한 사업자라도 이용자에게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앤드루 핀버그(Andrew Feenberg)는 <기술을 의심한다: 기술에 대한 철학적 물음>(김병윤 역, 서울: 당대)에서 기술이라는 것이 진공 상태에서 가치중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기술은 기술을 통해 구현된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와 교섭하면서 발전해 나가기 때문이다. OTT 역시 마찬가지이다. 네트워크의 고도화, 스마트 디바이스의 발전, 데이터 기반 맞춤형 서비스 등 기술의 진화와 사업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탄생한 것이 OTT이긴 하지만 결국 이용자의 선택이 OTT로 인한 전체적인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과 동일한 혹은 유사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OTT 서비스를 이용하는 월정액 가입자가 증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방송시간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동영상을 이용하는 시간 자체가 과거에 비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용자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텔레비전이 등장했을 때 라디오가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체 미디어 생태계 안에서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공존하고 있다. OTT가 지금보다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이는 미래에 OTT는 미디어 생태계 내에 있는 다른 매체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을 것인가? 어떠한 관계가 이용자에게 바람직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고 그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업자에게 이용자를 이해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용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이용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고 사업자를 규제하는 목적은 정책의 수요자인 국민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서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나 이용자는 논의의 중심축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플랫폼과 콘텐츠가 넘쳐난다. 선택 자체가 어려운 미디어 환경이다. 지금의 환경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용자는 나의 주권을 내가 찾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OTT 환경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 시장은 이용자의 선택, 사업자의 혁신, 정부의 조정과 규제가 상호작용하여 변화가 이루어지는 생태계가 되었다. 여기에 정답은 없다. 사업자들은 다소 무모해 보이는 투자를 해서라도 이 시장에서 승자가 되고자 한다(가령, 넷플릭스가 이어가고 있는 콘텐츠 투자에 대해 ‘합리적’이라고 논평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객관적인 분석과 전망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발변수인 우연으로 인해 성패가 좌우될 수도 있다. 이 선택의 중심에 이용자가 있다. 중요한 변화가 있을 때마다 서비스 현황을 파악하고 전망을 하는 것도 유익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변화는 결국 이용자의 선택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