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이번 입장문에는 그룹 전반의 노사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쇄신안'도 담았다. 과거 '정경유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강력한 내부 쇄신으로 경영 전반에서의 변화를 꾀하려는 이 부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비노조 경영 사실상 폐기··· 新 노사문화 구축
삼성은 18일 노동조합이 없어도 최고의 사원 복지를 통해 회사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비(非)노조 경영' 원칙을 사실상 폐기했다.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전·현직 임원이 노동조합 와해공작 혐의로 구속된 지 하루 만에 이 같은 방침을 내놓은 것이다. 삼성이 노사 문제와 관련해 공식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오전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입장문을 통해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어 "노사 문제로 인해 많은 분께 걱정과 실망을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도 덧붙였다.
전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공작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 이상훈 의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그동안 이사회가 전문 경영인을 견제하고, 핵심 투자를 결정하는 삼성의 최고 의사결정기구 역할을 해왔던 만큼 이사회 의장의 공백은 뼈아프다.
이 의장 외에도 삼성 전·현직 임직원 32명 중 26명에게 유죄가 선고됐고, 이 가운데 7명이 무더기로 법정구속되며 삼성은 충격에 휩싸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7명이 무더기로 집단 구속되는 것은 헌정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삼성이 이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법리적 차원을 떠나 대응책 마련에 선제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8월 29일 열린 이 부회장의 '원심파기 환송 선고' 직후에도 삼성전자는 최종 법리판단과는 별개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한 뒤 "앞으로 저희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리더십 공백 등 불확실성 파고 넘어야
하지만 재계에서는 삼성전자에 닥친 현실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고, 여기에 총수와 핵심 경영진의 부재로 리더십 위기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은 장기화되는 모양새다. 당초 연내 최종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추가 증인 채택과 법리 다툼 등으로 내년 4~5월이 돼서야 최종 선고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파기환송심이 길어질 경우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내년 경영일정을 보수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다.
이미 삼성전자는 잇단 사법 리스크로 매년 12월 초 실시해 오던 사장단 인사도 연기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사장단 인사가 내년은 되어야 실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상법상 주식회사의 최고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 의장이 구속되면서 대외 신인도 하락 우려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각 계열사별 이사회 중심의 투명 경영체제 확립에 힘썼던 이 부회장의 '의사결정 구조 전환'에도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더욱이 현재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가 던진 '숙제'에 대한 해답도 당장 다음 공판(내년 1월 17일) 전까지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6일 열린 3회 공판기일에서 정준영 판사는 "또 다른 정치권력이 뇌물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삼성그룹 차원에서의 답을 제시하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보다 앞선 지난 10월 열린 첫 공판기일에서는 삼성전자가 준법경영 감시제도를 보다 체계적으로 확립하라는 주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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