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주택시장과 자기실현적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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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범 기자
입력 2019-12-1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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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이상호 건설산업연구원장. [사진=아주경제 DB]

문재인 정부의 18번째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대출규제 강화, 보유세 강화, 분양가상한제 확대를 비롯한 초고강도 대책이 망라됐다.

그런데 정작 이처럼 강력한 대책이 서울 집값을 안정화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정부의 규제강화는 주택 공급의 위축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공급 부족으로 인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10여년간 서울의 아파트 공급 실적과 가격 간 관계는 정반대 모습이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2008년 4월부터 2013년 초까지 약 4년 반가량 하락했다. 2008년의 아파트 입주 물량은 5만7000가구로 2004년의 6만6000가구 이후 가장 많았다. 그런데 2009년에는 입주 물량이 3만2000가구로 급감했다. 이후 2010년에는 3만6000가구, 2011년에는 3만7000가구를 기록했고, 집값이 가장 낮았던 2012년에는 2만 가구 수준으로 더 급감했다.

이처럼 입주 물량이 감소하던 시기에 주택가격도 함께 하락했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바닥을 치고 올라오기 시작한 2013년에는 입주 물량이 2만4000가구였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에는 3만1000가구, 2018년에는 3만8000가구, 올해는 4만3000가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3년간은 입주 물량이 증가하는데도 가격이 급상승했던 것이다.

사실 주택가격의 상승 원인은 공급 물량 한 가지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경제 성장이나 실업, 금리 같은 거시경제 변수와 세제 및 금융에 대한 정부 규제를 비롯해 수많은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입주 물량 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택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은 과거 10년간의 자료만 봐도 근거가 부족하다. 다만 주택사업자나 공인중개사들이 아파트 구매를 유도하는 세일즈 포인트로 활용할 수는 있다. 주택수요자 관점에서는 입주 물량보다 공인중개사에 나오는 매물의 확대가 실제적인 공급 물량으로 더 중요하다.

주택시장에서는 공급 물량과 같은 실물 변수 외에 심리적 변수도 크게 작용한다.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자기실현적 예언은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과 같다.

내년에 경기 침체가 예상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되면 기업인들은 선제적으로 투자를 줄이고, 고용을 줄일 수 있다. 모두가 그런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실제로 내년에는 경기 침체가 불가피해진다.

강남 불패, 서울 불패, 부동산 불패와 같은 믿음도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에 해당한다. 서울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고 해서 주택 구매가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서울 집값이 비싸도 장기적으로 더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살 수 있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를 가해도 앞으로 공급 부족 때문에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믿는 사람이 많다면 정부 규제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계속 오를 수 있다. 17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서울 집값이 오른 것도 이 같은 자기실현적 예언이 작동한 결과라고 본다.

자기실현적 예언은 집값 상승기에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하락기에도 작동한다. 2008년 4월 이후 서울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4년 반 동안이 그런 시기였다. 인구감소, 공급과잉을 비롯한 이런저런 이유로 집값이 떨어지는데도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으면 실제로 집값은 더 떨어지게 된다.

서울과 달리 올해 들어 뉴욕, 런던, 시드니, 밴쿠버와 같은 글로벌 대도시의 주택 가격은 모두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영국의 부동산 투자자들은 올해 들어서 빠른 속도로 부동산 펀드에 투자했던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12월 총선 이전에 보수당의 압승이 예견되다 보니 브렉시트를 대비해 부동산 투자자들이 선제적으로 움직인 결과다. 이렇게 부동산 펀드에서 유출되는 투자금이 많아질수록 실제로 런던의 부동산 가격이 하향 조정될 수 있다. 이런 경우도 자기실현적 예언이 작동한 결과로 평가될 것이다.

정부는 이번 부동산 대책도 효과가 없으면 내년 상반기에 더 강력한 대책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악순환적인 자기실현적 예언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장은 단순히 심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꾸준한 공급 확대 시그널을 주고, 다주택자가 매물을 내놓을 수 있는 여건도 함께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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