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소, 장구, 징, 꽹과리, 바라가 연주를 시작한다. 장구를 든 장구잽이와 형형색색의 옷을 갖춰 입고 흰색 천으로 만든 도구를 양손에 든 무녀가 무대로 입장한다. 태평소의 가락이 고조되자 뒤이어 무녀가 노래를 시작한다. 무녀의 노래를 반주하는 장구잽이가 장구를 친다. 무녀가 한 소절을 부르고 장구잽이가 한 소절을 받는다. 신을 인간 세계로 모시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굿이 계속 이어진다.
동해안 지역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풍요와 다산(多産), 안녕과 번창을 기원하며 벌이는 '동해안별신굿'이다. 별신굿은 동해안 일대에 전승되는 마을굿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82-1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해안 지역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풍요와 다산(多産), 안녕과 번창을 기원하며 벌이는 '동해안별신굿'이다. 별신굿은 동해안 일대에 전승되는 마을굿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82-1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해안별신굿을 전승받아 4대째 무업(巫業)을 계승해온 김정희(58)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 겸임교수이자 동해안별신굿 전수교육조교가 지난 13일 숨졌다.
유족과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 시행을 앞두고 더는 출강할 수 없다는 학교 측 통보를 받은 김 씨가 이를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동해안별신굿 악사이자 전수교육조교다. 전수교육조교는 국가무형문화재 바로 전 단계를 말한다. 김 씨는 어릴 때부터 악기 연주와 노래, 춤을 배워 악사로 성장했다. 전통예술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은 그는 1998년 한예종 전통예술원이 설립된 직후부터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그러나 올해 8월 대학 측이 강사임용규정을 재정비하면서 '석사 학위 이상을 소지한 강사를 다시 뽑겠다'는 입장을 전해왔고, 김 씨는 20여년간 직장으로 삼았던 한예종 연희과에 더는 출강하지 못하게 됐다고 유족은 주장했다. 김 씨는 강사 자리를 잃으면서 전공생들을 대상으로 한 개인·단체레슨도 할 수 없게 됐다. 가장임에도 수개월간 공연 몇 건 외에는 달리 수입이 없어 심적 부담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변인이 전했다.
김 씨의 주변인은 "강사법의 취지는 인정하지만, 고인과 같은 사례가 대표적인 부작용이 아니겠느냐"며 "전통예술 분야에 유연성 있게 제도가 적용되지 않은 점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강사법 시행령에 따르면 해당 분야 경력자는 초빙교원이나 그에 준하는 다른 교원 직위로 얼마든지 채용할 수 있다"며 "(김 씨의 해고는) 학교 측의 채용 의지에 달린 것이지 강사법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강사를 위한 강사법? 강사를 내쫓는 강사법?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강사법은 2011년 12월 30일에 강사의 신분안정과 처우개선을 위해 의결됐다. 2010년에 지방에 소재한 한 사립대학의 강사가 열악한 처우와 부당한 대우에 대한 유서를 작성하고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강사의 신분안정과 처우개선이 절실하다는 많은 의견과 지적이 제기되면서 법안이 발의됐다.
이후 강사법이 강사의 신분보장과 처우개선에 대한 사항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에 국회는 2018년 11월 29일 이를 보완한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의결, 2019년 8월 1일부터 법률이 시행되고 있다. 대학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임용 기간을 1년 이상으로 하는 등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개정된 고등교육법 시행 이후 2019년 8월까지 강사의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2019년 2학기를 앞두고 강의가 축소돼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됐다는 주장 등 강사법을 두고 논란이 발생했다.
교육부는 2019년 6월 4일 강사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통한 강사제도의 정착을 위해 강사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강사법 시행에 따라 강사의 고용안정과 관련해 대학의 기본역량 진단과 재정지원사업에 강사의 고용안정 관련 지표를 반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등교육법이 강사의 신분안정을 위해 2011년 12월에 개정된 이래 실제로 2019년 8월에 법률이 시행되기까지 고등교육 기관에서 강사의 수가 매년 감소하고 있다.
대학과 전문대학 강사 수는 △2011년 11만 2000명 △2012년 10만9000명 △2013년 10만명 △2014년 9만1300명 2015년 8만9300명 △2016년 7만9200명 △2017년 7만6100명 2018년 7만5300명으로 매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특히 2011년 고등교육법의 개정으로 강사에 관한 규정이 시행될 예정이었던 2013년에는 전년 대비 강사의 수가 9천 104명이 감소했고, 이후 2014년은 2013년과 비교해 감소한 강사의 수는 9천262명, 2016년도 2015년과 비교해 감소한 강사의 수가 1만 109명으로 감소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9년 1학기 강사 고용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학기 강사로 재직한 인원은 4만6925명으로 2018년 1학기의 강사 인원 5만8500명과 비교해 1만1600명을 감소했다.
아울러 강사 감소로 강의가 축소되어 학생들은 졸업에 필요한 과목의 수강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소규모 강의가 폐강되고 수강하는 학생이 많은 대규모 강의가 늘어서 교육의 질이 하락한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19일 아주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당연히 강사법 영향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학령인구 감소나 등록금 동결 같은 상황적인 측면에서 교원 수 감소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본다"며 "비단 강사법의 영향만으로 한정 짓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강사법에 따라 강사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방학 기간에도 임금을 지급하는 규정이 법률에 신설됐지만, 정부와 대학이 관련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강사에게 방학 기간에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방학 기간에도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률에 규정했지만, 정부는 2019년 2학기에 강사의 방학 기간 임금으로 강의계획 수립 1주와 성적처리 1주 등 2주에 해당하는 기간에 대한 예산만 지원한다.
이에 대해 김용섭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교육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이 고등교육 부분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본다"며 "대한민국 대학의 86.5%가 사립학교인데 고등교육에 들어가는 예산이 교육부 전체 예산의 7분의 1밖에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등교육이 초중등 교육에 비하면 7분의 1 가치밖에 안 되는 건 아니지 않나"며 "그만큼 고등교육이 국가 발전의 하나 원동력이 되어야 하는데 그 다른 유럽 각국이나 이런 쪽에 비하면 너무 열악하다"고 밝혔다.
반면 교육부는 "전임 교원이랑 강사는 분명 다르기 때문에 전체 방학 기간 지원하기보다는 학기 외에 시간에도 분명 강사가 노동하는데 그 임금이 없다는 지적에 따라서 도입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방학 중 임금 부문 예산을 확보했지만, 임금수준이나 기간에 관한 부분은 법적으로 개별 대학이 결정하게 되어있다"고 밝혔다.
◆강사 제도 개선을 위한 과제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강사법(개정「고등교육법」) 시행에 따른 쟁점과 개선과제' 보고서는 대학의 임무는 학생의 교육과 연구이며 대학은 학생의 교육을 위해 강사를 임용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강의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대학이 재정난을 이유로 강사의 수를 줄이는 방안을 우선 고려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교육에 필요한 교원의 수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강사의 신분안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학령인구 감소라는 것은 벌써 20년도 더 된 얘기다. 이를 근거로 강사 수를 줄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2011년부터 평균 7000~9000명 정도 감소하고 있다. 대학들이 정규직 교수들을 뽑지 않고 비전임 교수, 비정년 강사보다는 낫지만 정규직 교수보다는 처우가 못한 그런 교수 제도를 활용한 고용 형태로 채용한 강사가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강사제도 정착을 위해 강사의 처우개선을 위해 방학 기간에 임금을 지급하는 기간과 임금의 규모에 따라서 최대 3392억원에서 최소 1139억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한다.
전(前)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인 임순광 전(前)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강사는 자신의 논문 '교수노동시장의 변화와 강사법'에서 "대학은 '재정위기설' '학력인구감소론' 등의 이유로 강사법의 시행에 따라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개정 강사법의 항으로 새 학기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대학의 전체 재정에서 1% 내외"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는 정부도 강사제도의 정착에 대한 예산의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교육부는 2020년 예산안에 강사 지원과 관련해 방학기간 4주 임금 577억 원, 퇴직금 지급 232억 원,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강사의 강의 지원과 관련해 49억원,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사업에 540억원 등 총 1398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정부가 2020년 예산안에 강사 지원과 관련해 편성한 예산 1398억원에서 실질적으로 강사 처우개선에 편성된 예산은 방학 기간 임금과 퇴직금 등 총 809억원으로 강사의 처우개선에 필요한 재원으로 추정된 규모(3000억원 내외)와 비교해 부족한 실정으로 지원 규모의 적정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김 위원장은 "국가의 고등교육 부문에 대한 GDP 대비 예산이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재정 확대가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방학 기간 2주 간 임금을 지원해주는 정책이 올해 8월부터 시행됐는데,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라 생각한다"며 "궁극적으로 시간강사 제도라는 이름의 착취 구조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점차 방학 전 기간에 대한 지급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교육부는 향후 대학 강사 처우 개선과 관련해 "정책을 진행할 때 대학 대표들, 강사 대표들이 함께 참여한 협의체에서 합의를 통해서 지원하고 있다"라며 "앞으로 방학 임금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면 내년에도 협의체를 통해 지원 방안을 모색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 OECD 평균 수준으로 가야...국회 입법 동향
현재 국회에는 서영교·안민석(이상 민주당)·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 3건이 계류 중이다. 세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고등교육재정교부금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국내총생산 대비 1.1% 수준으로 높이자는 것이 공통된 주요 골자다.
윤 의원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등교육의 정부 재정부담률은 2013년 기준 0.9% 수준으로 OECD 평균 1.1%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에 비해 민간의 고등교육 재정부담률은 1.3%로 OECD 평균 0.5%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고등교육 재원확보를 위한 방안으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해 학생·학부모의 등록금 부담 경감, 전임교원확보, 시간강사 처우개선 사업 등의 고등교육 사업을 통해 고등교육의 공공성 확대 및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안 의원의 법안에는 "고등교육기관에 교부하는 교부금은 보통 교부금과 목적교부금으로 구분하고, 교부금의 재원은 해당 연도의 내국세 총액의 일정 비율(교부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하되,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고등교육 재정 규모 평균 수준과 국가 재정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5년마다 교부율을 정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은 소관위인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계류중이다. 법안의 20대 국회 내 통과 전망은 밝지 않다. 국가 재정 부담 증가와 더불어 재정교부금 확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것이 그 배경이다.
교육위 수석전문위원의 법안 검토보고서는 "개정안에 따른 향후 5년 간 연평균 11조 2,947억원 수준의 고등교육재정 증가는 동일 규모의 타 국정분야 세출조정 또는 국가 채무누적의 초래가 불가피하다"며 "고등교육재정교부금을 통한 고등교육재정 확충은 전체 국가재정 운용방향의 변경에 대한 사항으로서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 및 국민적 합의가 요구되고, 그 필요성과 우려되는 부작용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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