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이유로 법정 증언을 거부한 경우에도 해당 증인의 검찰 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1월 21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염 모(48)씨의 상고심에서 이 같은 판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증인이 정당하게 증언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우에도 피고인이 증인의 증언거부 상황을 초래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형사소송법 제314조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수사기관에서 그 증인의 진술을 기재한 서류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012년 ‘증언거부가 정당한 경우’에만 검찰조서 등을 증거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번 판결로 증언거부의 경우 정당한지 여부와 상관없이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배척하게 됐다.
수사기관의 증거보다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 중점을 둔 판결로 평가된다.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한 이번 판결로 향후 수사와 재판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주목된다.
◆ 안희정 전 충남지사 3년 6개월 실형 선고...‘성인지 감수성’ 강조
대법원 형사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9월 9일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 법원이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판단했고 대법원이 원심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인정여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다. ‘성인지 감수성’ 개념을 재판에서 얼마나 적용했느냐에 따라 진술의 신빙성 인정여부가 달라졌다.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앞으로 관련 재판에서 이 개념이 적극적으로 인정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양상은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법원은 피해자가 처한 상황과 사건의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성범죄를 엄단할 것으로 보인다.
◆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66년 만에 벗어난 굴레
1953년 형법 개정 후 처벌되어 온 낙태가 66년 만에 범죄의 굴레를 벗었다.
헌법재판소는 4월 11일 형법 제269조 1항(동의낙태죄)과 제270조 1항(자기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4(헌법불합치), 3(단순위헌), 2(합헌)의 의견이었다.
헌재는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도록 정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단순하게 우선하는 방식의 논리는 사실상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 내지 박탈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2012년 합헌 결정을 내렸던 헌재가 7년 만에 판단을 바꾼 것이다.
이번 소송은 2017년 2월 임부의 요청에 따라 낙태한 자를 처벌하는 형법 제270조 1항으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가 낸 헌법소원심판 청구로 시작됐다. 7명의 여성 변호사들로 이뤄진 낙태죄 위헌 헌법소원 공동대리인단이 꾸려졌고, 여성단체와 시민들은 수차례 시위를 열기도 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개선 입법시한은 2020년 12월 31일까지이다.
◆ 육체노동 가동연한 30년 만에 '60→65세' 연장
대법원이 일반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상향했다. 1989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가동연한을 55세에서 60세로 올린 지 30년 만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월 21일 수영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박 모군(당시 4세)의 가족들이 수영장 관리업체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박군의 가동연한을 60세로 판단해 일실수입을 계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노동가동연한을 60세로 올린 1989년 선고 이후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구조와 생활여건이 급속하게 향상·발전하고 법제도가 정비·개선됐다"며 "육체노동의 경험칙상 가동연한을 만 60세로 보아온 견해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고, 이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만 60세를 넘어 만 65세까지도 가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합당하다"고 판시했다.
그동안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에 대해 하급심별로 판단이 엇갈려 혼선을 빚었다. 이번 판결로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만65세로 선언함으로써 보험제도와 연금제도의 운용은 물론 일반 산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판결의 파급효가 클 것으로 보인다.
◆ “타인 정자로 인공수정해 낳은 자녀도 친자”...대법 전원합의체 기존 판례 유지
대법원이 혼인기간 중 출생한 자녀는 남편과 혈연관계가 없어도 원칙적으로 친생추정을 받는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0월 23일 A씨가 두 자녀를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친생추정 규정은 문언상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만 정하고 있을 뿐이어서 혈연관계의 존부를 기준으로 그 적용 여부를 달리하지 않는다"며 며 “아내가 혼인 중 남편 동의를 받아 제3자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으로 자녀를 낳은 경우 민법상 남편 친자식으로 추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A씨 부부는 A씨의 무정자증으로 아이가 생기지 않자 1993년 타인의 정자를 받아 시험관시술로 첫 아이를 낳았다. 이후 1997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A씨는 무정자증이 나은 것으로 착각해 첫째와 마찬가지로 친자식으로 출생신고했다.
그러나 2013년 협의이혼 신청을 밝으며 A씨는 두 자녀를 상대로 친생자 관계가 없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민법상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남편 친자식으로 추정되고, 이를 부인할 유일한 방법은 제척기간(2년) 안에 친생부인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1심은 소송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2심은 1심 판단을 유지했지만 새로운 법리를 내놨다. 첫째 아이는 타인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에 A씨가 동의했으니 친자식으로 추정되고, 둘째는 유전자형이 배치돼 친자식으로 추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