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림동 쪽방촌에 살면서 20년간 돈을 모은 A씨는 결국 사장의 지원으로 독립에 성공했고, 입소문이 나면서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한국에서 보낸 돈으로 15년 전 단둥에 사뒀던 집값도 10배나 올랐고, 7년 전 서울 마포구에 사둔 아파트 가격도 최근 배 단위로 뛰었다. 그는 곧 결혼할 아들에게 성동구에 있는 신축 아파트를 사주기 위해 최근 재테크 모임에 가입했다.
1990년대 한국에 정착한 중국인 1세대들이 중산층 진입에 성공하면서 차이나머니가 대림동을 찍고 마포, 종로 등 서울 중심지역으로 진출하고 있다. 대림동은 서울 외곽의 낡고 노후화된 도시로 '쪽방촌, 달동네' 이미지가 강했지만, 최근 언급되는 지역들은 서울 중심지역이라는 점에서 중국인 진출이 갖는 의미가 다르다.
마포는 공항철도와 지하철, 마포대로를 축으로 여의도 업무지구와 공항, 서울 주요 명소들과 통한다. 곳곳에 대기업, 언론사, 금융기관의 본사가 있으며 법원, 검찰, 경찰 등 주요 관공서들이 몰려 있는 중심지기도 하다. 최근 차이나머니의 유입은 '중궈다마(중국판 복부인)'의 영향도 있지만 A씨처럼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중국인 1세대들의 약진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KB금융지주 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중국인이 보유한 국내 토지 규모는 2만208필지(2조5000억원) 규모로 2011년(3448필지, 8000억원)과 비교해 486%(공시지가 231%)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 일본 등보다 20~25배 높은 수치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한국 부동산은 우수한 자녀교육 여건, 주거의 안전성, 안정적인 성장세 등의 요인이 있어 중국인들에 매력적이라고 설명한다. 차이나머니의 부동산 투자는 중국인들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전통적으로 조선족들이 몰려 살던 대림동에 이어 집단 거주촌이 형성되고 있는 연남동, 상수동, 명동, 자양동, 삼전동 등은 이미 2~3년 전부터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주요 투자처가 됐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대림동·연남동·망원동 외에 명동이나 북촌 한옥마을이 있는 종로구 등은 중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으로, 본토 중국인들이 보기에 매우 안정적인 투자처"라며 "이들은 외국인인 한국인을 타깃으로 하기보다 자국인을 겨냥해 공격적으로 투자한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연고지 중심 투자 성향을 보인다"면서 "서울은 임대수익률이 2%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에 투자목적이라기보다는 정착·실거주 측면의 목적이 강하고, 투자라면 아주 장기 투자 목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로 집단 거주촌이나 근무지 주변, 살기 좋은 동네 등으로 뻗어나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중국인들의 공격적인 투자로 후유증이 큰 만큼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대림동의 경우 중국인이 늘어날수록 한국인 건물주들이 동네를 떠나는 현상인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났다. 대림동 상가소유주 가운데는 건물을 팔고 아예 그곳을 뜬 터줏대감들이 많다.
대림동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이 동네 토박이 김모씨(65)는 "중국인들이 모여들면서 한국인 건물주들이 직접 가게를 열기도, 세를 받기도 힘든 측면이 있다"며 "불합리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움직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중국인 세입자를 다루기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건물주들이 빠져나간 사이에 중궈다마들이 아예 건물을 통째로 쇼핑하는 사례도 있다. 김씨는 "외부에서는 대림동이 거지 같은 조선족만 사는 동네라고 비웃지만 이 동네에서는 오히려 조선족이 건물주"라며 "큰 사거리에 있는 주유소, 1층에 마트가 있는 미니빌딩은 최근에 중국인 주인으로 손바뀜됐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우선 중국인 건물주로 바뀌면 협력업체부터 알바생까지 전부 중국인으로 바뀌기 때문에 한국인 이탈이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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