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성자' 손정도 목사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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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기자
입력 2019-12-2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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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특별한 신념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독립운동을 펼쳤던 손정도 목사의 삶이 재조명됐다.

지난 24일 KBS 성탄특집 다큐멘터리 '걸레성자 손정도'가 방영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일제 모진 고문 후유증에도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독립운동 지원을 하다 49세 일기로 눈을 감은 손정도 목사의 지난했던 삶이 그려졌다. 

손정도 목사는 1982년 지금의 북한인 평안남도 강서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관리직 임용을 위해 준비를 하던 와중 교회와 연이 닿아 집에서 의절을 당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손 목사는 모금과 강연, 설교와 노동 등을 통해 자력으로 비용을 마련해 이층예배당을 헌당했으며 한국인을 위한 공동묘지까지 마련하는 열정으로 교회를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해외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교회가 한인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어가자 하얼빈 일본총영사관과 조선총독부의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결국 1912년 7월 하얼빈에서 이른바 '가쓰라 다로 암살모의사건'의 주모자라는 혐의로 일본영사관 경찰에 체포됐다. 3개월간 취조를 받는 과정에서 고문과 악형을 받았고, 전남 진도로 유배 되었다가 1년만에 석방됐다.

손 목사는 평생의 신념으로 걸레철학을 주창했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의 현장에서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남들이 마다하는 궂은일을 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았다.

손 목사는 일제 치하의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으나 과로가 계속되며 1931년 베이징 지인의 집에서 식사 도중 각혈을 하며 사망에 이르게 된다.

손 목사의 동생인 손경도가 1960년대 중국 미산(密山)에 마련한 묘소로 시신을 이장했고, 이후 조카 손원진이 묘소를 관리해 왔다. 1996년 한국으로 유해가 봉환되어 9월 12일 국립 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사진=KBS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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