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공수처, 야당에 처장 추천권 줘야 제 역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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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논설고문
입력 2020-01-0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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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는 범 여권 추천 후보 중 대통령이 입맛대로 임명 가능

  • 이대로 가면 '살아 있는 권력' 비리 독립적 수사는 불가능

  • 판·검사 기소권 무기로 정권의 법원· 검찰 장악 수단만 될 우려


말도 많던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공수처)가 마침내 생겨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공수처법 공포안을 의결했다.  7월이면 공수처가 출범하게 된다. 공수처는 과연 어떤 기관이 될 것인가. 당초 설립 취지대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독립적인 권력 비리 수사기관이자 검찰을 견제하는 기관이 될 것인가, 독립적 권력 비리 수사는 허울뿐이고 정권에 밉보인 판검사를 사찰하는 기관이 되고 말 것인가.

어떤 제도든 실상과 허상이 있다. 실상은 최대한 살려 나가고 허상은 최대한 고쳐 나가야 설립 취지를 살릴 수 있다. 공수처도 마찬가지다. 그러자면 공수처의 허와 실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수처가 검찰 견제 기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일정한 정도 실상에 가깝다. 그러나 독립적 권력 비리 수사기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거의 허상에 불과하다. 독립적 수사란 윤석열 검찰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정면으로 수사하듯 대통령 측근들과 정권 실세들을 대통령 눈치 보지 않고 법대로 수사하는 것을 말한다. 공수처법에는 그런 독립성을 뒷받침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없다. 우선 공수처의 검찰 견제 문제부터 보자.

①공수처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막을 수 있다

검사 비리는 일반 검찰이 아니라 공수처가 수사도 하고 기소도 한다. 공수처는 다른 고위 공직자에 대해선 수사권만 갖지만, 검사와 판사, 경무관 이상 경찰 간부에 대해선 기소권까지 갖고 있다. 검찰이나 경찰이 검사나 판사 비리를 발견하면 공수처로 넘겨야 한다. 일반 검찰은 판검사 비리를 수사도, 기소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검찰의 고질병으로 비판 받아온 제 식구 감싸기는 이제 불가능해졌다.

②검찰은 공수처의 제 식구 감싸기를 막을 수 있다

공수처 검사의 범죄는 일반 검찰만이 수사와 기소권을 갖는다. 공수처장은 공수처 검사의 범죄 혐의가 발견되면 대검찰청에 통보해야 한다. 공수처는 검사 범죄, 검찰은 공수처 검사 범죄의 수사와 기소를 전담함으로써 이 문제에 관한 한 공수처와 검찰이 상호 견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③공수처는 검찰 기소권을 간접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 범죄 사건 수사를 마치면 공수처가 기소권을 갖는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 간부 사건을 제외한 모든 사건을 검찰에 넘기게 된다. 검찰은 공수처 수사 결과를 검토해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이때 검찰이 불기소해도 공수처는 어쩔 수 없다. 다만 불기소가 부당하다고 여기면 공수처는 법원에 불기소의 타당성 여부를 심사해 달라는 재정신청을 할 수 있다.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이면 그 사건은 자동 기소된다. 공수처가 검찰 기소권을 직접 견제할 수는 없고 재정신청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견제할 수 있는 것이다.

④공수처는 판·검사 사찰 기관이 될 수도 있다

공수처가 수사할 수 있는 고위 공직자 범죄 중에는 직권 남용, 직무 유기, 피의사실 공표, 공무상 비밀 누설죄가 있다. 직권 남용,직무 유기, 공무상 비밀 누설죄는 명확한 기준을 잡기 어려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멋대로 기소가 이뤄진다는 비판이 많았다. 피의 사실 공표는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조국 사건 수사 때 줄기차게 제기해온 문제다. 조국 사건 수사 검사들을 피의사실 공표죄로 수사하라고도 주장했다.

공수처는 판검사에 대해선 기소권까지 갖고 있다. 앞으로 공수처가 판검사의 직권 남용, 직무 유기, 피의 사실 공표, 공무상 비밀 누설 행위를 집중 수사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 정권에 밉보인 사람을 표적으로 삼을 수도 있다. 이 경우 공수처는 사실상 판검사 사찰 기관이 되는 것이다. 이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관 2명,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재판 받고 있다. 판사 10여명은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나 직권 남용 혐의로 재판 받고 있다.

다음은 공수처가 독립적 수사기관이 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검찰이 정권 시녀 노릇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이 원하는 인물을 얼마든지 검찰총장으로 임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소권을 견제할 수 있는 검찰 내부의 장치가 없다는 점도 한 요인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점들이 공수처에서도 그대로인 것이다.

①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을 공수처장에 앉힐 수 있다

공수처장은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을 지휘 감독할 권한을 갖고 있다. 검찰총장과 똑같은 역할을 한다.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여부는 공수처장에게 달려 있다. 따라서 어떤 인물이 공수처장이 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윤석열 총장처럼 정권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수사할 사람이 되느냐 아니냐다. 그런데 공수처장 임명 절차를 보면 정권 눈치 안 보고 수사할 사람이 공수처장으로 임명되길 기대하기 어렵게 돼 있다.

공수처장은 처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추천위원 7명 중 6명의 동의로 후보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 중 1명을 지명한 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다. 추천위원 7명은 법무부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협회장, 여당 추천 2명, 야당 추천 2명이다. 야당 추천 위원이 2명 있지만 현 정당 구도로 보면 자유한국당 몫 1명과 기타 범여권 야당 몫 1명이 될 게 확실하다. 이 경우 자유한국당 추천 위원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6명이 찬성하면 범 여권 지지를 받는 사람 2명이 후보가 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이 지지하는 후보 1명과 범여권 지지 후보 1명이 추천된다고 해도 대통령은 범여권 지지 후보를 선택할 게 뻔하다. 이래저래 범여권 지지 후보가 공수처장으로 임명될 수밖에 없다. 확고한 정치적 중립의 신념을 가진  인물이 공수처장이 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물론 범여권 지지로 임명된 공수처장이라도 윤석열 총장처럼 소신에 따라 수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검찰총장이 있었지만 윤 총장 같은 사람은 없었다. 앞으로도 거의 그럴 것이다. 공수처장이라고 다를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②공수처장 임명에 국회 동의 절차도 없다

대통령이 범여권 지지 후보자를 공수처장으로 지명한다고 해도 국회 동의 절차를 밟는다면 그마나 정치적으로 편향된 인물이 임명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다. 그러나 공수처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만 거칠 뿐 동의는 받지 않는다. 검찰총장 임명 과정과 똑같다. 당초 패스트트랙에 올라온 공수처법안에는 국회 동의를 밟는 내용이 있었으나 민주당과 범여권 야당의 ‘4+1’협의 과정에서 국회 동의 절차를 없앴다.

그래서 야당이 반대해도 공수처장으로 임명할 수 있다. 현 정부는 이미 장관급 23명을 야당이 반대해 인사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는데도 임명했다. 국회 임명 동의는 무기명 투표로 하기 때문에 범여권 진영에서도 이탈표가 나올 수 있다. 공수처장 임명이 청와대와 여당의 뜻대로만 되기 어려운 것이다. 민주당이 국회 동의 절차를 없앤 것은 이때문일 것이다.

③청와대 개입 금지 규정만으로 정치적 중립을 담보할 수 없다.

공수처법에는 대통령이나 대통령 비서실 공무원이 공수처 사무에 관해 업무 보고나 자료 제출 요구, 지시, 의견 제시, 협의, 기타 공수처 직무수행에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이 있다고 청와대의 관여가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규정에 걸리지 않으면서 청와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국 사건이나 유재수, 김기현 사건에서 청와대는 언론에 관련자들의 혐의 내용이 보도되면 즉각 이를 부인하곤 했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수사 관여가 아니라 정확한 사실을 알려 언론의 오보나 왜곡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앞으로 공수처가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도 이런 대응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통령이 공수처나 검찰은 거명하지 않은 채 언론에 보도되는 특정 사건을 지적하며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 접대 의혹 사건이나 사법 농단 의혹 사건에 대해 이같이 말한 바 있다. 뒤이어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됐다. 공수처도 대통령이 무슨 사건을 언급하면 본격 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청와대는 공수처 관여 금지 규정을 피해가며 공수처 수사에 관여할 수 있게 된다. 청와대가 공수처 관여 금지 규정을 어겼다고 해서 처벌하는 규정도 없다. 어차피 이 규정은 ‘장식용’에 불과하다.

④공수처 내부의 기소권 견제 장치도 없다

패스트트랙 법안에는 공수처 기소심의위원회가 있었다. 공수처 검사는 기소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기소 여부를 결정하게 했다. 기소권에는 항상 오남용의 위험이 따른다. 공수처 검사가 정권 입맛에 맞게 기소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기소심의원회는 그 기소권 행사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범여권 야당과 협의하면서 기소심의위원회를 없앴다.

기소심의위원회가 있다고 해도 ‘들러리’ 역할만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수처 검사는 위원회 심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기소 여부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의 대배심(기소 배심)도 검사가 기소를 원하는 사건은 대부분 기소 결정을 내려 ‘고무 도장’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대배심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검사가 자신 없는 기소는 스스로 자제하게 만들어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수처 기소심의위원회는 심의위원들을 누가 어떻게 선정하고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서는 들러리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상당한 견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를 없애 공수처를 검찰처럼 아무런 내부 견제 장치가 없는 조직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상에서 보듯 공수처는 검찰을 견제하는 데는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독립적 수사기관이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공수처 수사를 지휘 감독하는 공수처장 임명 과정이다. 대통령이 범여권 지지를 받는 사람을 공수처장으로 지명하고 국회 동의 없이 임명하는 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 공수처가 검찰과 다른 기관이 되기 어렵다. 검찰과 다를 게 없는 조직을 만들어 놓고선 검찰과 다르게 독립적 수사기관이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검찰과 다를 게 없는 기관이라면 굳이 공수처를 만들 필요도 없다.

그럼 어떤 대안이 있을까. 공수처장 후보 추천권을 야당에 주는 방법이 있다. 야당이 추천한 후보자 중에서 공수처장을 임명하면 그는 정권 눈치를 덜 보게 될 것이다. 야당을 더 의식하게 될 것이다. ‘어쩌다가’ 윤석열 같은 사람이 나오길 기대할 게 아니라, 정권 눈치를 보지 않을 사람이 공수처장이 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작년 11월 8일 ‘공정 사회를 향한 반부패 정책 협의회’에서 “이제부터의 과제는 윤석열 총장이 아닌 다른 어느 누가 검찰총장이 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공정한 반부패 시스템을 만들어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핵심을 지적한 말이다. ‘사람’이 아니라 ‘제도’로 공수처를 독립적 수사기관으로 만드는 게 바로 문 대통령이 말하는 ‘시스템의 정착’, 즉 제도화다. 야당에 공수처장 후보 추천권을 주는 것은 그 제도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언젠가 야당이 될 것이다. 그때를 생각한다면 못할 일도 아니다. 이대로 가면 공수처는 독립적인 권력 비리 수사 기구는 말뿐이고 실제로는 판사, 검사, 경찰 간부 기소권을 무기로 법원, 검찰, 경찰을 정권 손아귀에 넣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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