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의 파르헤지아]이란 지도자 '참수사태'에 김정은 지금 무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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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20-01-1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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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과 핵군축 협상으로 '전파 방지' 대가자금 꿈꾸던 그에게 생긴, 뜻밖의 차질

북한, '당 전원회의 관철' 궐기대회 (서울=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궐기대회가 평안남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자강도 등지에서 9일 진행됐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0일 보도했다. 2020.1.10 [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북한은 지금 ‘당 전원회의 과업 관철 궐기대회’로 전지역이 시끌시끌하다. 노동신문은 10일 평안남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자강도에서 궐기대회가 대대적으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북미 교착 상황으로 인해 전대미문의 도전을 받고 있으나 경제와 핵무력의 병진 노선으로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궐기대회는 더욱 혹독해질 시련이 예고되는 가운데 자력갱생을 다짐하는 내부의 ‘불만 단속’에 가깝다.

김정은에게 요즘, 북미 관계의 ‘파탄’보다 더 큰 발등의 불이 된 것은, 이란발(發) 리스크일 것이다. 미국과 이란의 위기일발 상황이 일시적으로 누그러지는 분위기는 있지만, 북한으로서는 이 문제가 켕기지 않을 수 없는 속사정이 상당하다. 북미관계 난항에 이란사태까지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는 지금 김정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궁리를 하고 있을까.

작년말 당 전원회의와 ‘올 신년사 생략’ 사건

김정은은 집권 이후 매년 1월1일 발표해온 신년사를 2020년 올해는 내놓지 않았다. 대신에 지난해 12월28일부터 31일까지 나흘간 진행된 ‘조선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관련 보도를 1월1일 내보냈다. 신년사를 전원회의 발언으로 대치한 것에는, ‘크리스마스 선물(미사일 발사)’과 관련한 북미의 긴장감이 한몫 했을 것이다.

전원회의 보도문은 200자 원고지 100매 분량으로, 작년 4월 제4차 전원회의 때 내놓은 분량의 두 배가 넘었다. 왜 이렇게 할 말이 많았을까. 작년 2019년은 김정은으로서도 고민이 깊었던 한 해였다. 2월에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이 있었고 이후 당의 노선과 조직을 대폭 정비했다. 5차 전원회의에선 다시 무망(無望)해진 북미회담과 현 북한상황에 대한 엄중한 상황 인식이 담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정은의 전원회의 발언’에는 북미회담과 관련한 그의 심경이 담겨있다.

“조선로동당 위원장동지께서는 우리가 조미 사이의 신뢰구축을 위하여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케트(로켓)시험발사를 중지하고 핵시험장을 페기하는 선제적인 중대조치들을 취한 지난 2년사이에만도 미국은 이에 응당한 조치로 화답하기는커녕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크고작은 합동군사연습들을 수십차례나 벌려(여)놓고 첨단전쟁장비들을 남조선에 반입하여 우리를 군사적으로 위협하였으며 십여차례의 단독제재조치들을 취하는것으로써 우리 제도를 압살하려는 야망에는 변함이 없다는것을 다시금 세계 앞에 증명해 보이었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은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핵군축과 전파방지에 북한이 노력했다?

그런데 이 말의 끝부분에서 김정은은 의미심장한 그의 복심(腹心)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지켜주는 대방(對方, 상대방의 북한말)도 없는 공약에 우리가 더이상 일방적으로 매여있을 근거가 없어졌으며 이것은 세계적인 핵군축과 전파방지를 위한 우리의 노력에도 찬물을 끼얹고있다는데 대하여 언급하시었다.”

그는 이례적으로 핵군축과 전파방지란 말을 슬쩍 흘렸다. 핵군축이란 말은 2018년 북미 비핵화 협상이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해준 것이다. 핵군축은 합법적인 핵보유국이 핵을 줄이는 노력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의 전제는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핵군축 협상에 나선 것

5개의 합법적 핵보유국이 현재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있으니 북한도 그런 점을 감안해 추가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정도의 협상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미국과 러시아의 핵군축 협상처럼 핵무기는 보유하되 일부 핵자산을 줄이는 정도의 감축을 고려하고 있었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김정은은 처음부터 북한의 핵을 완전 제거하는 비핵화는 염두에 두지 않았으며, 북미협상은 핵군축협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런 전략에 따라, 2018년 5월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으며 2년간 핵실험을 중지했다. 트럼프를 만나, 북한의 핵자산 중에서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하겠다는 의사도 밝힌 바 있다. 김정은은 이런 핵군축 협상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또 그는 전파방지라는 말을 썼다. 전파방지는 원래 '핵 전파방지'로 쓰는 말에서 '핵'을 빼서 다소 애매하게 표현한 것이다. 핵이 아니라 미사일일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김정은은 왜 전파방지를 위한 노력을 중단할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일까.
 

[김정일]



전파 방지는 ‘핵무기 기술 이전을 않는 댓가’라는 의미

이 맥락을 읽으려면, 1998년의 북한이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기억을 살펴야 한다. 그해 8월31일 북한은 대포동1호(광명성1호)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확보했음을 세계에 알린 사건이었다. 이후 미사일 기술에 목말라 있던 이란과 이집트, 시리아, 파키스탄, 리비아에서 기술 이전 요청이 들어왔다.

그런데 북한이 이들에게 미사일 기술을 이전할 경우, 미국이 대북 중유지원과 식량지원을 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미국은 1994년 제네바 핵합의 이후 매년 50만톤의 중유를 북한에 지원했고, 또 세계식량계획의 주도국가로서 식량 대북지원도 하고 있었다. 미사일 기술 이전으로 돈을 벌고는 싶지만 ,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은 이듬해인 1999년 1월 스웨덴에서 이스라엘과 미사일 협상을 한다. 북한은 현금 10억 달러를 달라고 했다. 현금이 아니면, 현금을 줄 수 있는 다른 곳에 팔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협의를 한 뒤, 현금은 줄 수 없으며 물자로는 줄 수 있다고 했다. 당시 김정일은 단호히 거부했다. 식량난으로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었던 상황인데도 식량으로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이스라엘과의 협상은 결렬됐다.

북, ‘전파방지’ 협상 덕에 한국의 현금 5억달러의 맛을 봤다

그런데 한국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현금 5억 달러를 지원했다. 미국이 이 현금지원을 허용한 까닭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북한이 이스라엘이 현금을 안 줄 경우 다른 곳(요청이 들어온 이슬람국가들)과 현금거래를 하겠다고 위협한 것이 먹혔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위험을 부를 이슬람권 거래를 않는 대신, 한국의 현금 지원을 눈감아 주기로 했을 수 있다. 한국은 그 현금 지원을 한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월척을 건진다.

이것이 북한이 말하는 '핵기술 전파방지' 거래 사건이다. 김정은은 30년전 김정일이 협상했던 '핵 기술 전파'를 슬쩍 꺼낸 것이다. 단순히 슬쩍 꺼낸 것이 아니라, 북미협상에서 트럼프에게 제안했던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은 '전파방지'라는 말 속에, 이란과 같은 '미국에게 위험한 고객'에게 ICBM 기술을 전파할 수 있다는 위협을 담은 것이었다. 북미협상이 교착에 빠진 상황에서, 미국에게 남북경협을 해도 좋다는 승인을 남측에 내리도록 하는 압박으로 볼 수 있다.

이란 실세 핀셋타격과 대북 참수작전 공포

그런데, 한달도 지나지 않아 김정은이 기겁할 사건이 발생한다. 1월 8일 닌자폭탄을 장착한 드론이 이란의 군부실세를 핀셋처럼 골라내 타격한 것이다. 우선, 미국의 놀라운 첨단기술력이 표적 인물을 게임하듯 제거하는 현장을 목격한 만큼, 자신의 목 뒤도 뻣뻣해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김정은을 답답하게 한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바로 '전파 방지'다. 지난해 말 직접 '핵 혹은 미사일 기술전파'를 호언했던 김정은은, 현재로선 가장 중요한 핵고객인 이란에 중대한 유고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미국에 압박카드로 쓰려고 했던 것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북한은 이란과 수십년에 걸친 군사협력을 유지해오고 있었고, 그 상대는 혁명수비대 쿠드스군이었다. 카셈 솔레이마니는 북한과 밀거래 주역이었을 수도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사일 거래의 핵심축과 협상파트너의 ‘상실’

이번 전쟁 위기로, 김정은은 주요 미사일거래의 축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도 협상가능한 상대라고 기대를 걸었던 트럼프에게서, 심각하고도 치명적인 한 방을 맞은 셈이다. 핵기술 전파 카드로 막힌 돈줄을 풀어 경제난 해결에 쓰려고 했던 생각도 재고해야할 판이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지금껏 호기로울 수 있었던 김정은은 다시 백지 상태에서 계획을 짜야하는 곤경에 처한 것이다. 거기에 백악관에 앉아 김정은을 급습할 수 있다는 '핀셋 참수설'이 그를 자극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지금 김정은이 기획하고 있을 '이란사태 이후의 타개책'에 대한 시나리오를 수립하고, 국민을 안전하게 하면서 상황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갈 대응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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