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테르는 그의 여인 샤롯데에 대한 사랑에 있어 정열 그 자체였다. 정열이 하나의 총체로 나타날 때 그 회사는 발전한다. 뜨거운 정열을 갖고 업무에 임해달라.”
19일 향년 99세로 별세한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은 인생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정열을 잃지 않았다. 그는 사랑받는 기업이 되자는 목표로, 베르테르의 정열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이름 ‘롯데’를 짓고, 사업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청년 사업가 신격호는 일본에서 껌 사업에 뛰어들었다. 서구문명의 상징인 껌에 일본 성인들은 비난을 퍼부었지만, 신 명예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일본에서 껌의 핵심 타깃은 바로 어린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고안한 기발한 마케팅으로 소비자 마음도 끌어당겼다. 껌 포장 안에 추첨권을 놓고 당첨된 사람에게 1000만엔을 준다는 광고를 내놓기도 했다. 롯데 껌을 사기 위해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상점 앞에 길게 줄을 서게 만들었다.
이처럼 신 명예회장은 한번 확신을 가지면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그의 열정은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잠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백화점, 호텔 1번가, 롯데마트, 테마파크를 아우르는 거대한 콤플렉스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신 명예회장은 직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간부들은 가타부타 자신 있게 대답을 못했다. 될 것 같기도 하고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판단이 서질 않았기 때문이다.
간부들이 확신을 갖지 못하자 신 명예회장은 “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개장하고 1년만 지나면 교통 체증이 생길 정도로 상권이 발달할거야“라고 중얼거렸다.
간부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상권은 창조하는 것’이라는 신 명예회장의 생각은 적중했다. 그의 예상대로 잠실 사거리는 교통체증을 유발할 정도로 상권이 발달했다.
그의 열정 덕분에 롯데그룹에는 국내 최초, 최대란 타이틀이 붙은 사업들이 많다.
롯데리아는 1979년 국내 최초로 서양 외식 문화인 ‘햄버거’를 국내에 도입한 사례다. 롯데리아의 설립은 하나의 사회문화적 사건이었다. 1978년 당시 국민소득은 1400달러, 가구당 연간 외식비는 5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신 명예회장은 앞으로 외국 유명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할 것을 예상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만의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롯데리아는 현재 점포 수 약 1350개 매장을 운영하며,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마천루. 1973년 당시 동양 최대의 초특급 호텔로 장장 6년간의 공사 끝에 문을 연 롯데호텔에 붙여진 찬사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신 명예회장과 롯데그룹이 대단한 모험을 감행한 셈이다.
국내 1위 백화점도 롯데에서 탄생했다.
1970년대 후반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비 욕구와 구매 패턴이 다양해졌지만, 유통업을 대표하는 백화점의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미흡했다. 신 명예회장은 국가 경제발전과 유통업 근대화에 앞장서겠다며, 백화점 사업에 도전했다.
롯데쇼핑센터(現 롯데백화점 본점) 건립공사는 1976년 시작해 1979년 12월에 완료됐다. 규모는 연면적 2만7438㎡, 영업면적 1만9835㎡에 지하1층, 지상 7층에 이르렀다. 기존 백화점에 비해 2~3배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신 명예회장은 30년에 걸친 숙원사업 ‘제2롯데월드’ 건립도 이뤄냈다.
1982년 제2롯데월드사업 추진 및 운영 주체로 ‘롯데물산’을 설립했다. 1988년 1월 서울시로부터 사업 이행에 필요한 부지 8만6000여㎡를 매입했다. 2011년 마침내 건축 허가가 최종 승인됐다.
93세가 되던 2015년 장남 신동주와 차남 신동빈 간에 벌어진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면서, ‘정신건강 이상설’이 제기되는 등 불명예스러운 말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제2롯데월드 완공에 대한 집념만은 잃지 않았다. 측근들에게 수시로 공사 진행 상황을 물을 정도였다.
2017년 4월 3일 롯데 창립 50주년을 축하하며 초고층빌딩을 포함한 롯데월드타워가 정식 개장했다. 같은 해 5월 그는 건강 악화로 휠체어를 타고도 롯데월드타워를 직접 방문해 30년 결실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신 명예회장은 1948년 롯데를 창립해 2015년 이사직에서 해임될 때까지 67년간 한·일 롯데를 진두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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