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역시 이 점을 알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국회 국방위의 사전검토 요구에도 침묵을 지켰던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국회 국방위 관계자는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국방부가 국제법 위반 소지가 매우 높은 작전임에도 국제관습법을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며 "이미 국방부 국제정책과에 지난해 검토를 요구했으나 담당 실무 부서인 법무관리관실에서는 관련 업무 지시를 전혀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국방부 관계자는 "국제정책과에서 국제법 관련해 법무관리관실에 지시한 것이 있는지 알아봤는데 없다고 한다"고 답변했다.
국제해협에 관해 유효한 조약은 '영해와 접속수역에 관한 협약(1958년)'과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협약(1982년)'이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영해와 접속수역에 관한 협약'과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협약' 상의 국제해협의 정의를 모두 충족한다.
미국과 이란은 각자 자국의 이해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의 국제적 지위를 달리 해석해 왔다. 미국은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협약'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을 국제해협으로 보고 외국 군함도 통과통항권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연안국은 외국 군함의 통과통항권을 방해할 수 없으며, 함부로 외국 군함의 통과통항을 정지시킬 수 없다.
반면 이란은 '영해와 접속수역에 관한 협약'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은 원칙적으로 자국의 영해라고 보고 있다. 다만 폭이 좁고 통항이 많은 국제수로인 만큼 외국 군함은 무해통항권을 가질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란의 주장대로라면 연안국은 외국 군함이 자국의 법령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 퇴거를 요구할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절차가 국제협약은 없다. 두 나라가 해양법과 관련해 가입한 조약도 각각 다르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외국 군함의 통항권 문제는 '영해와 접속수역에 관한 협약'도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협약'도 아닌 국제관습법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상황에 따라 국제관습법 논란이 거세지면서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활동이 사실상 어려워질 수도 있다. 파병 명분으로 내건 '자국민 보호'가 유명무실해지는 셈. 하지만 국방부는 논란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실무부서에 법적 검토조차 지시하지 않은 채 수개월을 허송세월했다.
국회 국방위 관계자는 "군함이 호위한다는 것은 군사작전이다. 이란이 '영해와 접속수역에 관한 협약'을 근거로 퇴거를 요구할 경우 미국만 믿고 있다가 국제관습법 논란으로 인해 파병을 가더라도 실질적인 자국민 보호라는 목적 달성을 못할 수도 있다"며 "이 같은 문제점을 수개월 전에 지적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밝혔다.
호르무즈는 좁은 해협이라 선박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한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해협을 통과하는 배들은 TSS라는 시스템에 따라 운항하는데, 이는 충돌을 막기 위해 들어오는 배와 나가는 배들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해로는 총 10㎞ 폭인데, 들어오는 쪽 3㎞, 나가는 쪽 3㎞, 중앙분리대 역할을 하는 중앙의 여유 지대 3㎞로 이루어져 있다.
가뜩이나 좁은 해협인데다가 수심도 얕아서 대형 유조선이 항해할 수 있는 구역이 한정돼 있다. 문제는 이 수로가 해협의 이란 영해를 지나간다는 것이다. 해협의 북쪽 절반은 이란, 남쪽은 오만과 아랍 에미리트의 영해로 돼있는데, 대형유조선의 항해는 이란 쪽 영해의 수로를 주로 이용한다. 우리나라 상선과 유조선 등도 마찬가지다.
국방부는 파병될 군함을 호르무즈 해협 입구에 대기하도록 하거나, 중간 수로를 통과하는 것으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국방위 관계자는 "입구에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 상선이 보호를 요청하면 투입을 하겠다는 것인데 상황이 벌어지고 난 뒤 투입되면 자국민 보호가 아닌 맞대응의 성격인 보복행위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에게 '2020년 국방부 업무보고'를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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