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차 총회, 이른바 다보스포럼에서 유럽연합(EU)을 상대로 자동차관세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그는 미국과 EU가 무역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EU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EU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이 공정하다면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와의 협상 시한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조만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무역협상을 마무리짓지 못한 유럽을 겨냥해 압박을 본격화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5일 미·중 1단계 무역합의에 서명했다. 이튿날엔 기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하는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수정안 상원 비준을 받았다. 한국, 일본과도 기존 무역협정을 재개정한 상태다. 사실상 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 가운데 협상을 남겨둔 건 EU뿐인 셈이다.
하루 전 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디지털세를 제도화한 프랑스가 미국과 올해 말까지 휴전을 선언하면서 디지털세 갈등이 한풀 꺾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이번 휴전으로 프랑스는 디지털세 부과를 유예하고 미국은 보복관세를 철회하기로 했다. 미국은 당초 프랑스 디지털세에 맞대응해 프랑스산 와인과 명품 핸드백 등에 최고 100%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었다.
므누신 장관은 이날 프랑스가 미국과 해법을 찾는 동안 연말까지 디지털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미국은 영국이나 이탈리아와도 디지털세에 관해 협의한다는 방침이다. 프랑스와 합의한 것처럼 영국과 이탈리아의 세금 부과를 막겠다는 것이다.
WSJ은 이날 나온 트럼프 행정부의 '기습적인 공격'은 무역협상이나 디지털세를 둘러싼 대서양 통상갈등이 앞으로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계속될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안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방위비,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 이란 핵협상 등을 두고 삐걱거린 대서양 동맹이 다시 고비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7월 EU와 무역협상을 시작했지만 난항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EU와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EU에 미국산 농산물 구입을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은 미국의 요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미국이 자동차관세를 부과할 경우 맞불 관세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디지털세를 둘러싼 기싸움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에서 디지털세를 대체할 세금 마련이 논의되고 있지만 미국은 반대를 시사해왔다.
디지털세는 구글, 페이스북 같은 IT 공룡들을 상대로 매출이 발생하는 지역에서 수입의 일정 부분에 매기는 세금을 말한다. 구글(G), 아마존(A), 페이스북(F), 애플(A)을 주요 타깃으로 한다는 뜻에서 이들의 앞글자를 따 'GAFA세'라고 불린다.
이들 기업은 아일랜드나 룩셈부르크 등 우호적인 조세 환경을 갖춘 곳에 본사를 두고 세금을 회피해왔다. 과세 규정을 바꾸지 않는 한 유럽 주요국가들은 법인세 수입이 감소할 위험에 놓인 셈이다.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보복을 불사하고 디지털세를 추진해 온 배경이다.
OECD는 2월 22~23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 앞서 다음 주에 관련 논의를 업데이트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종국에 이 논의가 성공적으로 끝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고 WSJ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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