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문 대통령 말대로 검찰 개혁은 정말로 완수된 것인가? 이제 검찰은 과거와 다른 새로운 검찰이 될 것인가.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검찰 개혁의 본질은 검찰을 정권의 시녀, 정권의 충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권 눈치 보지 않는 독립적 수사기관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 이상의 검찰 개혁이 없다. 그러나 현 정권은 검찰을 독립적 수사 기관으로 만들기는커녕 정권의 시녀와 충견 노릇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검찰 스스로의 노력마저 뭉개버렸다.
◆수사 관행 개선·권한 분산에 치중
현 정권이 추진해온 검찰 개혁에는 긍정적인 부분도 물론 있다. 검찰의 수사 관행 개선이 그 하나다. 주요 내용을 보면 이렇다. ①공개 소환 금지, ②피의사실 공표 금지, ③심야 조사(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금지, ④1회 조사 12시간 초과 금지, ⑤한 번 조사 뒤 8시간 연속 휴식 보장, ⑥전화나 이메일 조사 활용 등으로 소환 조사 최소화, ⑦소환 뒤 불필요한 대기 금지, ⑧지나치게 반복적인 출석 요구 제한, ⑨부당한 별건 수사 제한, ⑩수사 장기화 제한, ⑪사건 관계인에 대한 친절·경청·배려 및 모멸감 주는 언행 금지.
이 가운데 국회의원, 장·차관, 청와대 비서관 같은 고위 공직자나 재벌 기업인, 흉악 범죄자 같은 사회적 관심 대상 인물에 대해서까지 공개 소환이나 피의 사실 공표를 금지하는 것은 문제이긴 하다. 국민의 알 권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1회 조사 12시간 초과 금지나 한 번 조사 뒤 8시간 연속 휴식 보장도 너무 경직되게 하지 말고 수사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게 할 필요도 있다. 이런 점들을 제외한다면 전반적으론 옳은 방향이다. 잘못된 수사 관행은 인권 보장 측면에서 당연히 고쳐야 한다.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공수처로 일부 분산한 것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고위 공직자 범죄에 대해 지금까지는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었다. 앞으로는 공수처가 우선적 수사권을 갖는다. 공수처는 사건 내용에 따라 자체 수사하거나 검찰에 넘길 수 있다. 검찰은 공수처가 넘긴 사건만 수사하게 된다. 반면 검찰은 공수처가 수사한 사건이든 검찰이 수사한 사건이든 기소권을 갖는다. 공수처는 우선적 수사권, 검찰은 2차적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방식으로 검찰 권한을 분산한 것이다. 공수처는 예외적으로 판·검사에 대해선 수사권 외에 기소권도 갖는다. 이에 따라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는 불가능해졌다. 물론 공수처에도 근본적 한계는 있다. 처장을 정권 입맛대로 임명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그것이다. 공수처가 정권의 충견 노릇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논외로 치고 넘어가자. 검·경 수사권을 조정해 경찰에 수사 종결권을 주고 검찰의 경찰 수사 지휘권을 폐지한 것도 검찰 권한 분산 조치다.
이상과 같은 개혁들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런 개혁이 진짜 이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검찰 개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진짜 검찰 개혁은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개혁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검찰, 지나간 권력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더 엄정한 검찰이다. 많은 국민들은 검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과 권한 집중도 문제라고 보지만, 더 본질적이고 큰 문제는 권력에 ‘알아서 기는’ 행태라고 여긴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 윤석열 때리기로 덮어
실제 검찰 역사가 그랬다. 정권마다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 청와대 비서관이나 여당 고위 간부 등 권력 실세들이 뇌물, 이권 개입 등으로 수사 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이들의 비리를 그 정권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때 수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대통령 임기 말이 돼서 정권의 힘이 빠질 대로 빠진 뒤에야, 그것도 언론 보도와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수사에 나섰다. 그때마다 은폐·축소 수사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정권 실세들의 비리가 저질러지고 있을지 모른다. 정말로 부정부패를 막으려면 정권이 살아 있을 때 그 실세들의 비리를 찾아내 대통령 눈치 보지 않고 낱낱이 파헤쳐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국민들은 그런 검찰을 원하고 그런 검찰을 만드는 것이 진짜 검찰 개혁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현 정권은 어떻게 했나. 그 반대로 했다.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려고 하자 검찰을 압박하고 공격했다. 조국 사건 수사에 대해 “인사 청문회 직전 수사에 나서 대통령 인사권을 훼손했다”, “검찰 개혁에 저항하려고 정치 수사, 과잉 수사를 한다”고 했다. 그런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 권력 수사라는 대의를 덮을 만큼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검찰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김기현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과 유재수 부산시 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사건을 수사하자 집권세력의 검찰 비난과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마침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8일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반부패부장과 공공수사부장 등 현 정권 수사를 지휘한 검찰 고위 간부들을 쫓아냈다. ‘검찰총장 의견을 들어’ 하라는 법 규정까지 무시해가며 인사권을 휘둘러 현 정권 수사팀을 해체했다. 그 자리는 모두 친 정권 인물들로 채웠다. 그것도 모자라 검찰총장이 특별 수사단을 구성하려면 법무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했다. 검찰의 손발을 꽁꽁 묶어 놓은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이 일자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의 인사권은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인사권이 검찰을 길들이는 방편으로 악용돼선 안 된다. 문 대통령도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과 청와대가 검찰 수사와 인사에 관여했던 악습을 완전히 뜯어고치겠다. 대통령에게 주어졌던 검찰총장 임명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한 바 있다. 현 정권 수사가 한창인데, 그 수사팀을 해체하고 특별 수사단 구성까지 막은 것은 인사와 수사에 관여한 악습의 되풀이가 아닌가.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수사는 검찰이 하지 특정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며 누가 그 자리에 가도 연속성을 갖고 할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럴까. 수사에는 흐름과 맥이라는 게 있다. 중간에 수사 검사가 바뀌면 이 흐름과 맥을 파악하고 이어나가기가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수사팀 교체가 주는 메시지다. 현 정권 수사팀을 모조리 한직으로 쫓아낸 것은 출세하려면 정권에 덤비지 말고 충성하라는 경고다. 그 경고의 효과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새로 부임한 대검 반부패부장이 조국 전 장관을 무혐의 처리하자고 주장한 게 대표적 사례다. 법원이 조국 구속영장을 기각은 하면서도 “죄질이 나쁘다”고까지 했는데 무혐의로 몰고 가려 한 것이다. 오죽하면 부하 검사가 “당신이 검사냐, 조국 변호인이냐”고 공개 비판을 했겠는가.
◆"특정 세력에 충성 강요하는 가짜 검찰 개혁"
정희도 대검 감찰2과장(부장검사)은 검찰 내부 온라인 게시판에 “특정 사건 관련 수사 담당자를 찍어내는 등의 불공정 인사를 한다면 검찰개혁이라는 것이 ‘검찰을 특정 세력에게만 충성’하게 만드는 ‘가짜 검찰 개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불공정한 인사는 ‘정치검사 시즌 2’를 양산하고 시곗바늘을 되돌려 다시 검찰을 정권의 시녀로 만들 수 있다”고 썼다. 상식적 판단이다. 일반 국민들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제 정권에만 충성하는 '정치 검사'가 판을 치게 될 것이다.
그럼 진짜 검찰 개혁을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 답은 이미 문 대통령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도 엄정히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말 그대로 대통령부터 윤석열 검찰을 높이 평가하고 힘을 실어줬으면 어땠을까. “지금 윤 총장은 대통령 당부대로 하고 있다. 그런 윤 총장을 깊이 신뢰한다”고 말이다. 그랬더라면 ‘검찰 개혁론’이 친 정부 세력 대 반 정부 세력 간 편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초법적 권력과 권한 행사”, “선택적 수사”라는 표현을 써 가며 윤 총장을 질타했다. 그리고는 “국민이 그렇게 느끼기에 검찰 개혁이 요구되는 것”이라고 다시 검찰 개혁론을 언급했다.
사실 ‘검찰 개혁’은 국민 대부분이 공감하는 문제라 이걸 두고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져 싸울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검찰 개혁이 친 정부와 반 정부의 진영 싸움 대상이 된 이유는 검찰 개혁을 ‘정치화’했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정권의 유불리를 따져 정치적 문제로 만든 게 정치화다. 여기에는 집권세력의 책임이 크다. 집권세력은 ‘산 권력 제대로 수사하게 만들기’는 외면한 채 ‘검찰 힘 빼기’만이 진짜 검찰 개혁인 듯 몰아갔다. 당연히 야당 등 반대 세력은 현 정권 비리 수사를 막기 위한 책략이라고 반발했다. 이 바람에 검찰 개혁이 진영 싸움의 대상이 돼 버린 것이다. 만약 문 대통령이 ‘검찰의 힘도 빼야 하고,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게 해야 한다’며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검찰 개혁이 그토록 격렬한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검찰 수사와 인사에 관여했던 악습을 완전히 뜯어고치고, 대통령에게 주어졌던 검찰총장 임명권을 국민에게 돌려 드려겠다”는 그 말대로 했다면 말이다. 예를 들면 검찰총장에게 실질적인 검찰 인사권을 준다든지, 검찰인사위원회를 독립적 기구로 만들어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을 실질적으로 견제하게 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정권의 검찰 인사·수사 개입 막는 제도 도입했어야
검찰총장 임명권은 더욱 중요하다. 현재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얼마든지 임명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렇게 임명된 검찰총장은 대통령과 정권에 충성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총장처럼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인물이 검찰총장에 임명되는 것은 우연이고 예외일 뿐이다. 이런 우연과 예외에 기댈 수는 없다. 검찰총장이 정권 눈치를 볼 필요가 없도록 임명 제도를 바꿔야 한다. 검찰총장 임명에 국회 동의를 받게 한다든지, 검찰총장 후보 추천에 야당의 거부권을 인정한다든지 하는 게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게 문 대통령 언약대로 ‘검찰총장 임명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는’ 것이다.
정치는 현실이라고 한다. 정권 입장에서 권력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문제다. 그러나 동시에 이상(理想)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일 것이다. 검찰 개혁론에서 ‘검찰 힘 빼기’가 권력을 지키기 위한 현실의 문제라면, ‘산 권력 제대로 수사하게 만들기’는 권력의 부정 부패를 막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현실에 멈추지 않고 이상을 실천에 옮기겠다는 결단을 내린 뒤 정권 지지세력이 반발하면 설득해 나가는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어땠을까. 검찰 개혁론이 정치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고 진짜 검찰 개혁도 이뤄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정권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나라의 앞날을 생각한 진정한 정치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까 한다. 문 대통령은 이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