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여론조사에서 줄곧 1, 2위를 달리는 잠재적 유력후보 두 사람이 한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맞붙게 된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상징성이나 선거에 미칠 파급효과가 클 터여서 관심이 우선 고조될 건 분명하다. 투표율을 끌어올려 참여 민주주의의 확산에 기여했다는 얘기도 나올 수 있겠다. 무엇보다 관전하는 재미가 배가될 것 같다. 언론은 이미 ‘빅 매치’로 명명했다. 허나, 그게 다일까. 선거는 재미있겠지만 지역대표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의 본령을 혹여 훼손하는 건 아닐까? 두 사람 다 종로와는 직접 연고가 없는 외지인이다.
‘험지’라는 말도 듣기 거북하다. 이번 선거에선 여야 가릴 것 없이 유달리 험지 타령이다. 특정 지역구의 정서가 자신의 당에 유리하지 않다는 뜻에서 쓰는 말이겠지만 험지는 곧 하향식 공천과 동의어다. 비민주적 정치의 대표적 적폐로 꼽히는 게 위에서 후보를 내리꽂는 하향식 공천이다. 험지라는 이유로 중앙에서 특정인을 내려 보내거나, 험지에 나간다는 이유로 스스로 희생양을 자처하는 풍토는 지양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험지를 계속 험지로 내버려둘 생각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상향식 공천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빅 매치’를 내심 기다리게 만든 것도 정치다. 정치가 허구한 날 국민의 짜증만 돋우고, 편이나 갈라 싸우게만 하니, 뭐 좀 재미있고 시원한 일은 없을까 하는 마음이 빅 매치를 불러냈다. 여기에 누가 더 센지 즉각 봐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사회 특유의 조급증도 가세했다. 이런 복합적 집단심리가 빅 매치의 성사를 사실상 ‘종용’하고 있다. 냉정하게 따지면 빅 매치의 결과가 두 사람의 정치적 운명과 반드시 직결되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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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쪽에서도 황 대표의 종로 출마가 과연 최선책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공천관리위원인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종로는 황 대표라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지만,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한 원외 인사는 “이럴 때일수록 누구도 예상 못한 정치신인을 내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거물에는 거물로 맞서기보다 신인을 내세워 허를 찌르는 건 우리 선거판에서 더러 있었던 일이다. ‘황 대표 보호론’도 설득력이 없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보수 쪽에 인물이 없는데 황 대표란 카드를 그런 식으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 총리가 이미 링에 올라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인데 이를 과연 피해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차라리 맞붙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빅 매치’가 성사된다면 우리는 두 사람에 관해 조기 검증을 해볼 수 있다. 그간의 평판을 종합해보면 역시 안정감이 이들의 공통된 강점으로 꼽힌다. 문재인 정권 아래서 정치가 워낙 요동을 친 탓에 돋보인 면도 있지만 둘 다 보기 드물게 안정감을 주는 지도자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한 사람은 선출직 엘리트로서, 다른 한 사람은 비선출직 엘리트로서 대체로 상궤를 벗어나지 않는 반듯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안정감은 상대적으로 정제된 언행을 낳기에, 선거전이 벌어지면 우리는 한 차원 다른 품격 있는 논전(論戰)을 보게 될 듯싶다. 일부 튀는 정치인들의 저질 막말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됐으면 한다.
안정감으로 무장된 지도자는 그러나 검증이 쉽지 않다. 여간해선 실수도 하지 않고 속내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흔한 말로 “한국정치에서 선거란 ‘누가, 누가 잘하나’ 게임이 아니라, ‘누가, 누가 못하나’ 게임”이라고 한다. 상대보다 잘해서 이기는 게 아니라, 상대보다 실수를 덜 해야 이긴다는 얘기다. 종로 ‘빅 매치’는 두 사람의 안정감 이면의 흠결을 찾아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실수보다 실수에 대처하는 태도와 능력을 더 중하게 치는 유권자들도 많다.
이 전 총리에 이어 황 대표도 한국당, 또는 통합신당(한국당+새보수당)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두 사람은 국가적 담론 경쟁을 선도할 걸로 보인다. 중앙당 차원의 선거 전략을 세우고, 전국을 돌며 지원유세를 하는 과정에서 잠재적 대권주자로서의 정책과 비전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 ‘빅 매치’가 주는 이점이라면 이점이다.
이 전 총리는 재임 중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국정철학과 핵심과제를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동맹은 지키되 냉전은 극복해야 하고(외교) △성장과 포용을 동시 추구하되 성장의 페달을 멈춰서는 안 되며(성장) △바닥을 보장해 줌으로써 격차를 해소하는 포용으로 가야 하고(포용)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태도는 과격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안정)는 것이다(2019년 10월 9일 한겨레, 12월 14일 경향신문). 중도 보수, 또는 진보적 보수 냄새가 물씬 난다. 표(票)의 확장성을 그의 강점으로 꼽는 이유를 알 만하다.
황 대표는 이보다 앞서 바람직한 정부라면 △미래의 꿈을 갖고 계속 발전하는 정부(미래 정부) △매사 국민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일하는 정부(국민 정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부(맞춤형 정부) △성장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정부(따뜻한 정부)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4대 정부론’을 제시했다(‘황교안의 답-황교안, 청년을 만나다’, 2018년 9월). 황 대표는 지난 22일 신년 기자회견에선 “한국당의 혁신과 자유 민주세력의 대통합을 반드시 이뤄내 나라를 회생시키겠다”면서 “문재인 정권의 심판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두 사람의 국정철학과 비전은 총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구체화되고 정교해지겠지만 야당은 아무래도 정권 심판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여당은 격렬하게 반발하게 돼 있다. 선거전이 상호 비방과 폭로전으로 변질돼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싸움판이 되는 이유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생긴 감정의 앙금이 선거가 끝난 후에도 그대로 남아 여야 간 타협과 협력을 원천봉쇄한다는 데 있다. 우리가 수십년 동안 익히 봐왔던 바다. 이래서는 문재인 정권 후반기에도 양극단의 이 잔인하고 살벌한 전쟁판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협치를 얘기해도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평소 좌우 양측이 접점을 찾아 조금이라도 수렴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공조도 협치도 논의가 가능하다. 적어도 선거 때라도 극단의 언어폭력과 인격살인 행위는 자제되어야 한다. 이 전 총리의 국정 방향이나 황 대표의 4대 정부론을 보면 중첩되는 부분도 적지 않다. 경제만 해도 큰 틀에선 성장과 포용이 함께 가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여기에 두 사람이 가진 안정감, 절제력, 중도 보수 성향의 이념 등에 기대어 달라진 선거판을 보고 싶다. 정치 1번지라는 종로가 그 선봉에 설 수는 없는 것일까. 두 사람 간 ‘빅 매치’는 그래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권력정치의 현실을 망각한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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