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안 당신의 삶과 일상을 가장 많이 바꾼 기술, 첨단제품은 무엇입니까?”
10년 단위를 기준으로 지난 10년, 오는 10년이 서로 만난 이번 연말연시 지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2010~2019년 지난 10년, 새로운 천년(밀레니엄) 이후 두 번째 보낸 10년(decade)이다. 인공지능(AI),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바이오테크 같은 어지러운 용어들이 등장했고 관련 기업과 뉴스들이 국내외 미디어, 주식시장에서 화려한 ‘행진’을 했다.
이 중 정작 당신의 삶은 바꾼 건 무엇인가. 다 아니었다. 스마트폰이 공통된 답이었다. 내 몸 반경 1m 밖에 두면 불안한 스마트폰으로 갖가지 편리한 앱을 사용하고 사진·동영상을 손쉽게 촬영하는 일상의 변화를 들었다.
그러나 세계 대다수 미래학자들이 오는 10년, 2020년부터 2029년은 지난 10년과 다른 어마어마한 변화를 예측한다. 위에 열거한 4차산업혁명 용어들이 일상화되면서 “우리 일상과 생활, 삶이 많이 달라질 거”라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판데믹’과 미래 먹거리
에볼라, 사스, 메르스, 아프리카 돼지열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쓰는 최악의 단계를 판데믹(pandemic)이라고 한다. 최근 넷플릭스는 <판데믹-인플루엔자와의 전쟁>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때맞춰 공개했다. 이 다큐는 의료인, 자원봉사자들이 치명적인 독감의 대유행을 막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사투를 벌이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많은 전문가들이 밝히는 신종 바이러스 출현의 원인은 동물을 산 채로 죽이기 때문이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중국 우한에서 살아있는 박쥐를 도살했을 때 바이러스가 외부로 나왔고 닭 등 다른 여러 숙주동물을 거쳐 사람에게까지 전염됐다고 본다.
앞으로 10년 우리 먹거리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바로 이 판데믹과 연결돼 있다. 이 판데믹과 먹거리를 설명하기 위해선 채식주의자들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들이 채식을 하는 이유
채식주의자(vegetarian)는 ‘풀만 먹는 사람’이 아니다. 육고기만 안먹고 생선, 달걀 등 다른 모든 식품을 즐기는 페스코(pesco) 베지테리언도 있고 식물의 열매만 먹는 프루테리언(fruitarian)도 있다. 비건(vegan)은 동물과 관련된 모든 걸 거부한다. 육류와 생선은 물론 달걀과 유제품, 꿀 등 동물에게서 얻은 식품을 전면 거부한다.
이들이 육식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명 존중, 동물 윤리, 지구 온난화 문제 같은 개인의 신념(개인의 취향 포함)에 있다. 여기에 가축 도살 과정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판데믹’이 더해졌다. 1초에 돼지 47 마리, 매년 560억 마리의 가축과 가금류가 도살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동물 생명권 문제는 더 설명이 필요 없다.
현재 재래식 축산업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유엔식량기구(FAO) 등 다수의 유엔 기구들이 분석한 내용은 차고 넘친다.
이들 기관들의 분석에 따르면 축산업은 인류가 배출하는 전체 온실가스의 대략 15%를 차지한다. 그중 절반이 전 세계 사육 소 15억 마리에서 나온다. 소를 포함한 반추동물들이 내뱉는 메탄가스는 석탄발전소, 자동차 등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보다 20배나 더 독하다.
나아가 지구상에서 소비되는 물의 70%, 사용되는 토지의 40%가 목축과 양계에서 사용된다. 동물을 사육하는데 들어가는 사료를 얻기 위해 매년 아마존 밀림 크기의 땅이 희생된다. 효율도 매우 낮아서 10㎏의 사료를 먹여야 겨우 고기 500g 정도를 얻는다.
이제 더욱 심각한 건 '판데믹', 재래식 축산업이 인간의 생명 위기에 바로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살아 있는 가축을 도살하거나 공장식 집단사육을 통해 발생하는 미지의 공포 바이러스가 언제 어디서 출몰할지 모른다. 도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판데믹’의 위험성은 예상하기도 힘들다.
판데믹은 우리 인류가 처한 ‘항생제 내성 위기’와도 직결된다. 많은 의학·공중보건 전문가들이 “전체 항생제의 80% 가량이 농장에서 사육되는 동물에게 투여되고 있다. 이 육류를 섭취한 사람에게 그 항생제가 고스란히 쌓이고 있다”고 말한다. 대재앙은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는 데서 비롯된다.
◆새로운 고기의 등장…식물성 고기, 달걀
육식을 거부하는 이들은 이런 이유로 ‘식물성 고기’를 만들었다. 사실 씹히는 식감을 고기와 비슷하게 만든 ‘콩고기’가 나온지는 매우 오래됐다. 하지만 정말 육고기와 비슷한 맛과 식감을 내는 식물성 고기는 불과 10년 안팎이다.
연초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신기술박람회인 CES에서 미국의 푸드테크기업 ‘임파서블 푸드’는 식물성 재료로 돼지고기의 식감과 맛을 낸 인조 돼지고기 ‘임파서블 포크’와 ‘임파서블 소시지’를 공개했다. 지난해 인공 소고기로 만든 ‘임파서블 버거’를 선보여 ‘가장 영향력 있는 제품(Most Impactful Product)’과 ‘최우수 제품(Best of best)’으로 뽑혀 전 세계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바로 그 회사다.
지난해 5월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 대박을 터트린 ‘비욘드 미트’ 역시 식물성 단백질로 고기를 만드는 회사다. 기존의 식물성 고기와는 달리 비욘드 미트의 햄버거 패티는 실제 소고기와 아주 비슷한 식감이라고 한다. 짙은 보라색 야채인 비트로 만든 붉은 액체와 코코넛 오일 등을 사용해 고기 육즙도 흉내냈다.
식물성 달걀도 있다. 미국 푸드테크 스타트업인 ‘저스트’는 자사 제품이 일반 달걀 요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물 사용량의 98%를 절약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94%, 콜레스테롤 100%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도축 없이 ‘키운’ 진짜 고기가 온다
아무리 고기라고 주장해도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고기는 진짜 고기가 아니라는 견해가 많다. 이런 가운데 동물성 단백질 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해 만든 동물성 고기가 곧 시장에 등장한다. 바로 ‘클린 미트’다.
클린 미트는 동물 세포를 배양해 증식한 뒤 얻은 고기이며 식물성 인공고기는 식물에서 추출한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고기를 말한다.
네델란드 마크 포스트 교수는 2013년 세계 최초로 소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햄버거용 패티를 공개했다. 햄버거에 들어간 얇은 고기 두 덩어리를 만드는데 들어간 비용은 무려 33만달러(약 3억9000만원)였다. 문제는 생산가격인데, 그 비용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2016년 ‘멤피스 미트’는 ‘단돈’ 1200달러에 배양 미트볼을 생산했고, 곧바로 닭고기와 오리고기도 선보였다. ‘모사 미트’는 햄버거 패티 가격을 11달러까지 떨어뜨렸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알레프팜스는 스테이크용 소고기를 내놓았고, 위에 나온 저스트는 닭의 깃털에서 채취한 세포를 배양해 치킨너겟에 사용되는 닭고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5년 뒤에는 닭 날개나, 닭 다리, 최고급 와규소고기도 생산 가능할 거라고 밝혔다.
또 다른 이스라엘 배양육업체 ‘퓨처 미트’는 배양기술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100g 기준 2600원 정도 가격으로 소고기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 가격이면 돼지고기 삼겹살 수준이다.
퓨처 미트는 진짜로 삼겹살을 내놓을 계획이다. 세포 증식을 통해 지방을 만드는 건데, 고기의 진짜 맛을 내는 지방을 배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양참치 대량 생산도 눈 앞이다. 세포배양 생선생산업체인 미국의 ‘핀레스 푸드’는 참치 세포를 배양해 최고급 참치를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랍스터와 대게 대량생산도 목표로 하고 있다.
◆낙농·축산업의 종말?
미국의 리서치기관인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대체육류(식물성 고기+클린 미트)시장 규모는 지난 2018년 46억 달러에 달했는데, 연 평균 6% 성장해 오는 2023년까지 63억달러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이 기관은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대체육류 시장은 연평균 8% 이상의 고속성장을 할 것으로 예측했다. 대체육류 시장이 커질수록 재래식 축산업은 위기에 처하는 건 당연지사.
최근 글로벌 컨설팅업체 AT커니가 내놓은 보고서는 2040년이 되면 생산된 육류 중 연구소에서 만든 클린 미트가 35%, 식물성 인공 고기가 25%를 차지할 것으로 봤다. 기존 재래식 육류생산은 불과 40%대다. AT커니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식물성 인공고기보다 배양육이 더 인기를 끌 것”이라며 “배양육이 전통적인 육류에 가장 가깝기에 결국은 시장을 장악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매년, 10년 단위로 미래예측 보고서를 내는 ‘밀레니엄 프로젝트’가 펴낸 <세계미래보고서 2020> 역시 2020년 주목해야 할 기술로 농축산업의 소멸을 불러올 신(新)식품기술을 꼽았다. 결론적으로 이 보고서는 2030년 축산농가의 소멸을 예측한다.
미래예측 싱크탱크인 ‘리싱크X’가 지난해 말 발표한 <식품과 농업을 다시 생각한다 2020~2030> 보고서는 더욱 생생하다. 식물성 고기든 세포농업으로 키운 배양육이든 육류를 대체하는 기술이 가격경쟁력을 가지면서 축산업과 낙농업이 붕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30년까지 미국의 젖소 수가 50% 감소하고, 소고기 시장 규모는 70%, 유제품 시장은 거의 90% 감소할 거라고 전망한다.
이 보고서 공동저자인 캐서린 터브, 토니 세바 스탠퍼드대학 교수는 “축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크고 가장 비효율적인 식품 생산 시스템 중 하나”라며 “정밀발효(PF)를 통해 생산할 수 있는 동물성 단백질 비용이 2000년에는 1kg 당 100만 달러에서 현재 100 달러로 떨어졌다. 2030년까지 이 동물성 단백질이 기존 동물성 단백질보다 5배 저렴하고 2035년에는 10배 저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12월 열린 ‘2019 미래축산포럼 정책토론회’에서 우리나라 전문가들도 일제히 의견을 같이 했다. 이학교 전북대학교 동물생명공학과 교수는 “배양육이 예상보다 빨리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축산업이 지속 가능하기 힘들 수 있다”고 밝혔다.
김민경 건국대학교 식품유통공학과 교수 역시 “대체육 가운데 배양육의 식감이 고기와 가장 비슷하다. 배양육 생산비용이 하락하고 있어 더 위협적이기 때문에 국내 축산업계는 이런 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로드맵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뒤쫓는 중국,일본…‘걸음마’ 단계 한국
중국에도 배양육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고 있다. 인공고기 시장이 무려 1000억 위안(한화 약 17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지난해 11월 18일 난징(南京)농업대 식품과학대학원은 돼지 근육으로 줄기세포 배양육을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5g의 배양육을 만드는 데 불과 20일 걸렸다는 발표에 중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고, 이후 순식간에 배양육 스타트업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셀미트'라는 스타트업이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해 투자유치를 받는 단계다. 박길준 셀미트 대표는 현재 배양 중인 닭 근육세포 사진을 최초로 제공하며 “현재 닭에서 채취한 근육세포를 배양하는 단계”라며 해외 선진업체에 비해 6~7년 뒤처져있음을 인정했다. 그는 “단순히 줄기세포를 배양해 내는 기술만으로는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부위의 육질이나 마블링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며 “소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배양해 등심, 안심 같은 고급 부위의 질감과 맛을 내고 건강에도 좋은 고기를 생산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미 온 미래에 우리는 무엇을 대비하고 있나
클린 미트가 몇 년 안에 우리 식탁에 오르고 우리가 그 고기를 즐기는 게 바로 ‘이미 온 미래’의 먹거리다. 그런데 이게 다일까? 국립축산과학원 공식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 축산농가 수는 102만1000가구, 농가인구는 231만5000명에 달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축산업의 몰락을 예언하고 있다. 이들과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불행히도 어느 누구도 한국 육류시장에서 클린 미트 시장이 어느 정도 점유율을 차지할지에 대한 예상조차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대응, 대비, 계획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강원도 횡성에서 비육우를 키우는 축산인, 국내 최대 양돈단지인 충남 보령의 양돈 농장주, 양계장이 밀집한 경기도 포천의 양계업자, 서울 마장동 축산시장 유통업자, 참치업계 종사자 등 농축수산 및 낙농업 관계자 최소 수백만 명의 생계가 앞으로 10년 안에 판가름 날 수 있다.
신기술 승차공유업계와 택시업계 간 갈등이 빚어진 ‘타다 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기술-기존업계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클린 미트가 폭발적으로 시장을 잠식할 경우 기존 농축수산업계에 막대한 국민의 세금, ‘보조금’이 투입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상정할 수 있다. 남의 일이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고된 미래를 제대로 준비 못한 대가를 우리 지갑에서 꺼내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있다. ‘이미 온 미래’를 면밀히 파악하고 곧 닥쳐올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 없어질 일자리와 새로 창출하는 일자리를 '스와핑'(교환)하는 등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 시작해야 파국을 막을 수 있다.
19세기 말, 1898년 미국 뉴욕시에는 17만5000 마리의 말이 달리고 있었다. 매월 5만톤에 달하는 말똥으로 뉴욕은 10년 안에 멸망할 거라고 했다. 그러나 정확히 10년 뒤인 1908년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모델 T’를 팔기 시작했고, 1922년까지 1500만 여대를 팔아 치웠다.
말똥으로 멸망할 거라는 뉴욕은 세계 최대의 도시가 됐고, 뉴욕의 말과 마차는 관광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멸종했다.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좋은음식연구소(Good Food Institute) 브루스 프리드리히 대표는 지난해 4월 TED 강연에서 “육류업계는 100년 전 미국 뉴욕이 겪었던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뉴욕의 말과 마차는 기존의 축산업, 모델 T는 클린 미트와 같다는 말이다.
도축된 소고기와 클린 미트 소고기 중 소비자들은 무엇을 선택할까? 똑같은 맛, 친환경 생산, 식중독 걱정 없는 착한 가격의 고기를 안 사고 배길 수 있을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